위의 사진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어머니 댁의 포도나무다. 나무가 사층까지 타고 올라가 옥상이 온통 포도나무 그늘인데 한 그루에서 대략 열 상자 이상이 소출된다. 열 상자면 뭐하고 백 상자면 뭐하겠는가?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고작 두서너 송이면 감지덕지이다. 어머니께서 이웃들하고 나눠 드시는 재미에 아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문안인사차 아침에 들렀더니 벌써 동네잔치를 벌이고 난 뒤였다. 그래도 제법 남은 게 있어 몇 송이 따달라고 했더니 달랑 세 송이 따주시고는 그만이다. 조금 더 따보시라고 했더니 골목 안 사람들 오며가며 한 송이씩 따 먹게 놔두라신다. 속으로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골목 안 사람들과 어머니의 재미를 위해서 참고 말았다.
워낙이 인정 많으시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성품도 있지만 특히나 골목 안 사람들을 끔찍이 여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몇 해 전인가 내가 동네 병원에서 손 쓸 수 없는 위암 말기라는 오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숨기느라고 숨겼는데 어떻게 그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뇌에 혈관이 터져 쓰러지셨다. 그때 골목 안 사람들이 발견하고 나에게 전화를 해주어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는데 의사선생 말이 1분 1초만 늦었어도 큰일 치를 뻔했단다. 결국 어머니는 동네 골목 안 아줌마들이 살리신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포도가 익어가거나 말거나 30분 거리에 있는 아들은 나 몰라라 하시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어머니 댁에 들를라치면, 아들도 제대로 안 챙겨주시는 포도를 얻어드시는 황송함이 있어 그런지 동네 아줌마들이 나보다 먼저 어머니 집으로 뛰어들어가 이 집 큰아들 온다며 더 반가워하시는 호사를 누리기에 참을 만하다.
그나저나 태풍이 불어온다니 골목 안 사람들 오며가며 한 송이씩 따먹게 놔두신다던 포도 송이가 온전하게 붙어있으려나 모르겠다. 지난번 옆집 아들이 놀러왔다가 한 번에 세 송이씩이나 따는 바람에 이웃 아줌마한테 '되알지게' 혼났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아무튼 어머니는 이 포도나무 한 그루로 인해서 골목대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는 듯했다.
* 골목 안쪽에 있는 포도나무 한 그루로 인해서 끈끈하게 맺어져 있는 어머니와 골목 안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흐뭇하기도 하고 어머니께 있어서 포도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 누릴 수 있는 재미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