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 하면 누구나 선입견이 별로 좋지를 않을 것이다. 우선 징그러운 생김새가 그렇고, 다음으로는 맹독이 있어 물리면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다보면 지네와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밤나무가 많은 곳, 대밭이 있는 근처, 담쟁이덩굴이 멋지게 우거진 돌담장 집…. 이런 곳에는 의례 지네란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낭만처럼 멋진 풍광 속에는 숨어있는 고충이 있게 마련이다. 허지만 지네나 파충류가 살지 못하는 곳은 그만큼 오염된 곳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담쟁이덩굴이 운치를 더해주는 돌담이 있는 집이지만 지네가 또한 서식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마을 주변엔 밤나무밭과 대나무가 빙 둘러쳐져 있으니 말이다. 무더운 여름철, 지네 이야기로 더위를 잊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서울에 병원외래 등 일을 보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채송화가 너무나 화사하게 피어 있다. 아내와 나는 넋을 잃고 채송화를 바라보았다. "역시 우린 시골에서 살아야 해요!" 아내의 감탄사를 뒤로 하고 화장실로 들어가니 변기에 약 15cm 정도 되는 지네가 떡 버티고 있다. 변기 색깔이 하얀색깔이라 지네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이 너무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보인다.
내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으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아내가 먼저 들어가 녀석의 무시무시한 꼴을 보았더라면 어찌할 뻔 했을까? 아마 기절초풍을 넘어서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을 것이다. 지네 사진은 혐오감이 있어 싣지 않기로 한다.
녀석을 어떻게 처리하지? 변기에 물을 내린다 해도 녀석이 다시 기어 올라올 수도 있다. 일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금년부터 나는 지네를 죽이지 않고 잡아서 방생(?)을 하고 있다. 생각 끝에 비닐봉지와 집게를 찾아들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변기가 워낙 미끄러운지라 녀석은 도망을 가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아마 변기를 기어오르다가 헛발을 디뎌 변기 안으로 떨어지고 만 모양이다. 그 많은 발로 어찌하다가 헛딛었을까? 쯔쯔쯔… 너도 발만 많지 별거 아니로구나.
녀석들은 보통 몸뚱이가 15~25마디로 되어 있는데, 마디마다 쌍으로 발이 달려 있으니 30~50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네에 따라 마디가 다 다르다. 가장 많은 다리를 가진 녀석은 무려 177쌍에 354개의 다리를 가진 녀석들도 있다고 하니. 따라서 지네의 다리는 홀수가 없다. 만약에 홀수가 있다면 부부싸움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세력다툼을 하다가 다리를 부러뜨려버린 녀석일 게다. 하여간... 그 많은 발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기어 다니는 지네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으음…. 나는 녀석을 집게로 조심스럽게 집어냈다. 순간 녀석은 꿈틀거리며 머리와 꼬리로 집게를 마구 물어뜯는다. 물어 봐야 강철로 된 집게이니 녀석의 이빨이 부러졌지 않았을까? 나는 꿈틀거리는 녀석을 비닐봉지에 넣고 일단 입구를 묶었다. 전에 한 번 집게로 들고 가다가 녀석을 놓친 적이 있어 비닐봉지나 망사에 넣어서 방생을 하기로 했던 것. 녀석은 비닐봉지 안에서 한동안 몸부림을 치더니 똬리를 틀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태도는 지네가 기회를 보아서 도망을 치려거나 여차하면 공격을 하려는 수작이다.
나는 녀석을 들고 냇가로 나갔다. 집안 텃밭에 버리면 필시 녀석이 다시 들어 올 것이므로 흐르는 물에 방생을 해주면 될 것 같아서이다. 물속에 넣으면 흐르는 물을 타고 하류로 멀리 여행을 떠나겠지. 그러나 사실 이 방법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비닐봉지 마개를 열고 지네를 털어 내려고 하는데 순간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비닐봉지가 날아가 버렸다. 비닐봉지는 개울물에 떨어지더니 물위에 둥둥 떠서 흘러내려 갔다.
"아차, 이를 어쩐담. 이런 실수가 다 있나? 녀석은 필시 비닐봉지 안에서 숨이 막혀 죽고 말 것인데…"
그렇다고 물속에 들어가 비닐봉지를 잡을 수도 없었다. 둥둥 떠내려가는 비닐봉지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쌍계사 불일암 노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불일폭포를 보러 갔다가 스님이 차를 한잔 하자고 하여 다담을 나누게 되었다. 스님은 공양주 보살도 없이 홀로 기도 정진을 하고 계셨다. 스님과 이야기 중에 우연히 지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님, 여긴 지네가 없나요?"
"왜 없겠어요. 날마다 녀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데."
"친구처럼요?"
"그럼, 녀석들은 심심하면 기어 나와 두리번 거리며 기어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물어 뜯기도 하지?"
"물어뜯은 녀석을 그냥 두세요?"
"같이 먹고 살자는데 어쩌나?"
"허지만 저는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와 처음에 지네를 발견 했을 때에는 등거리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놀라, 녀석을 파리채로 마구 두들겨 패서 죽이느라 진땀을 뺐어요."
"허허… 저런, 무고한 지네를 살생을 하다니…거사님이 무슨 권리로. 지네도 중생인데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지."
"네? 지네를 사랑하라고요?"
"그럼, 지네가 파리모기도 잡아먹고, 얼마나 이로운 동물인데. 건들지만 않으면 절대로 물지 않거든."
"허긴, 그렇기도 하네요. 그래서 저도 요즈음은 지네를 집게로 집어서 개울에 방생을 해주고 있습니다만."
"으음, 그도 좋은 생각인데, 냇물에 버리지 말고 이왕 살려주려면 망사에 집어넣었다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다 풀어 주세요. 지네란 놈도 다 생각이 있거든. 그렇게 해주면 녀석은 다음에 그 은공을 반드시 갚게 되어 있어요."
"아하, 지네도 다 생각이 있다 이거죠? 으음... 그럼 다음엔 그렇게 해보야겠군요."
"반드시 그렇게 해보세요."
그러면서 스님은 한국에서 서식하는 지네는 맹독이 없어 물려도 큰 문제는 없단다(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히려 몸에 적당한 내성을 길러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것. 지네로 술을 담아 마시거나, 지네를 먹은 닭을 먹으면 약이 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지않느냐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틀린 말씀은 아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망사에 넣어서 살려주어야 하는 건데. 비닐봉지에서 질식을 하게 했으니 낭패다. 망사를 얼른 찾지 못하여 비닐봉지에 넣었던 것이지만. 냇물에 떠내려가는 지네를 바라보다가 나는 망사와 집게를 찾아서 현관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여차하면 들고 와서 지네를 생포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나가 담벼락 순찰을 돈다. 망사와 집게를 들고, 야행성인 녀석들이 벽에 붙어 있으면 망사에 집어넣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날 광주에 살고 있는 처남 부부가 왔다. 그들은 피아골 계곡에 왔다가 집에 잠시 들리게 되었는데, 거실에서 차를 한 잔 하는 사이 처남 부인이 거실 바닥에 기어가는 지네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며 얼굴이 파래졌다. 녀석은 내가 미처 볼 새도 없이 응접실 소파 밑으로 스르륵 기어 들어가 버렸다.
미끄럽지 않은 바닥에서 지네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스물 몇 개나 되는 가는 발을 마치 요트 경기를 하듯 재빨리 저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만약에 지네가 다른 곤충들과 요트 경기를 하면 무조건 일등을 할 거다. 요트선수들이 지네의 발놀림을 잘 관찰하여 경기에 적용을 하면 속도가 엄청 빨라지지 않을까? 소파를 들어내고 파리채로 털어 냈지만 녀석의 정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지네는 부부가 항상 함께 다닌다고 하더니 어제 죽은 지네의 남편일까, 아니면 아내일까? 소파밑으로 기어들어간 지네를 보고 오늘 저녁에 잠은 다 잤다며 아내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루밤 쉬어 가라고 했지만 처남부부는 지네가 무서워서인지 내일 아침 일찍 일을 나가야 한다며 지레 겁을 먹고서는 부랴부랴 떠나갔다.
하기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지네가 무섭기도 하겠지. 처남 부부가 간 뒤로도 지네는 소파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닦달에 나는 에프킬러를 소파 밑에다가 무작위로 방사를 했다. 녀석이 숨이 막히면 기어 나오겠지 하고. 그런데도 지네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저녁을 먹는데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왔다. 지네 이야기를 했더니 장마철이 끝난 요즈음은 지네가 많이 출현을 할 때라고 했다. 습기 찬 곳에 있다가 녀석들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싶어서 슬슬 기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선 고실고실한 거실이나 안방으로 기어 들어오곤 한다.
녀석들이 좋아 하는 곳은 카펫이나 커튼, 이블, 옷 등이다. 그러므로 이불을 펼 때나 갤 때에도 앞 뒤로 털고, 옷을 입을 때에도 털털 털어본 다음 입어야 한다. 신발을 신을 때에도 엎어서 털어본 다음에 신어야 지네에 물리는 실수가 없다. 녀석들은 단 2mm의 틈새만 있어도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겠는가?
집안으로 들어오은 재주는 청개구리도 지네 못지않다. 녀석들도 언제 들어왔는지 수시로 방안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내 서재의 작업장 벽까지도 들어와서는 눈알을 두리번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벽에 붙어있다. 양서류나 파충류들은 틈새를 통해 들어오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청개구리는 하룻밤만 지나면 십중팔구 말라서 순교(?)하고 만다. 그러므로 녀석이 장렬한 순교를 하기 전에 나는 녀석들을 조심스럽게 망사에 잡아넣어 방생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혜경이 엄마랑 차를 한잔 하며 지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혜경이 엄마가 "저기 지네다!" 하면서 파리채를 들고 녀석을 탕탕탕 하며 난타를 했다. 순간에 난타를 당한 녀석은 이리저리 나동글다가 쭉 뻗어 버렸다. 오징어처럼 늘어진 지네를 그녀는 휴지로 집어서 화장실 변기에다 버리더니 물을 드르릉 내려서 수장을 시켰다.
"휴우~ 이젠 살 것 같네. 혜경이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어쩔 뻔 했어요. 혜경이 엄마 고마워요. 글쎄 저이는 지네를 죽이질 않고 집게로 집어서 방생을 시킨다고 법석을 떠는데 영 불안해서 내가 못살겠어요."
"왜 살려줘요. 집안에 들어온 지네는 무조건 죽여야 해요. 안 그러면 사람이 당하는데."
혜경이 엄마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네를 사랑하고 살려주라는 스님의 말씀과 사람을 해치는 지네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그녀의 말 중 과연 어떤 것이 옳을까? 거실에 들어온 지네를 처치하자 아내는 한숨을 돌리며 마음 놓고 TV를 시청했다. 녀석이 소파로 들어간 지네인지, 아니면 다른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그 날 밤중에 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 잠을 자다가 다리가 따끔하여 나는 잠을 깼다. 뭔가에 물린 자국이 막 쓰리고 아픈 것을 보면 필시 지네에게 물린 것 같았다. 모기나 개미에게 물리면 대체로 가려움증을 수반하는데 지네에게 물리면 쓰리고 후끈거리며 따끔따끔 아프다.
불을 켜고 이불을 털어냈다. 침대에 자고 있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놀라며 일어났다. 더운 여름철이라 아내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그냥 잔다. 내가 지네에게 물린 다리를 보여주자, "아이고, 다리가 벌겋게 부었어요. 빨리 약을 발라요."하며 버물리를 찾아준다.
그러나 약을 바르는 것보다 지네를 찾는 것이 더 급했다. 녀석을 잡지 않으면 다시 물릴 것은 뻔 하기 때문이다. 이불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털어냈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 밑으로 들어갔을까? 나는 지네에게 물린 자국에 버물리 약을 뿌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이불을 털어냈다. 맙소사! 한 3cm 정도 되는 작은 지네가 바닥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너무나 적어서 집게로 잡기도 어려웠다. 지금 바로 해치우지 않으면 녀석은 방구석 어디론가 숨고 말 것이다.
"여보, 뭘 해요. 이걸로 빨리 때려잡아요!"
아내가 소리를 치며 파리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다리를 물어뜯긴 나는 순간 분노가 일어났다. 파리채를 잡은 나는 힘을 주어 녀석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서너 차례 난타를 하자 녀석은 쭉 뻗어버리고 말았다. 녀석을 휴지로 집어서 혜경이 엄마가 했던 것처럼 화장실에 수장을 시켰지만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스님의 말씀처럼 녀석들과 공생 공존을 하 수는 없을까?
녀석들이 방안에 침입을 하지 않거나, 설령 들어오더라도 물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녀석은 가만히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물어뜯었다. 이웃집 오 씨네 아주머니는 지네가 귓속으로 들어가 귀를 물어뜯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 가고 난리를 친 적도 있었다. 어제와 오늘 죽인 지네들이 저 작은 자네의 부모일까? 그렇담 녀석은 부모를 잃은 분풀이로 나를 물어뜯었을까? 벌써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아내가 한 번 내가 두 번이나 지네에게 물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나는 녀석에게 물린 자국이 쓰리기도 하고, 지네를 살려 줘야한다,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지네에 대한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니 벼라별 이야기가 다 있다. 지네를 퇴치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닭을 키워라, 닭 뼈를 유리병에 넣어 땅속에 묻어 놓아라, 돌담을 허물고 담쟁이덩굴을 모두 잘라 버려라. 바퀴벌레 약을 주기적으로 방사를 하라. 백분을 틈새에 뿌려두라....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근본적인 퇴치법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지네에게 수난을 당하는데도 스님의 말씀처럼 망사에 지네를 넣어서 살려주어야 할까? 다음에 불일암에 가면 다시 한 번 스님에게 물어보아야 겠다. "스님, 사람을 물어 뜯은 지네도 살려 줘야 합니까?" 하고.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지네 유머 시리즈 하나를 소개하고 지네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지렁이와 지네
어느 숲에 지렁이가 살고 있었다. 그 지렁이는 나이가 스물이 넘도록 남친도 없고 쓸쓸히 혼자 지내고 있었다. 생김새는 연예인 뺨치는 정도인데... 사실, 다리가 없는 이 지렁이는 다리가 있는 상대를 찾고 있었다.
지렁이:아.. 다리가 있는 지렁이는 없는 걸까??
지렁이가 고민하던 중 바로 앞에 다리가 무지 많은 곤충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리가 너무 많은 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다리가 한개도 아니고 몇 십 개는 되어보였다. 그래서 지렁이는 바로 작업을 했다.
지렁이: 어디 좋은데 가서 이슬 한잔 어때요? 우훗~
지렁이의 타고난 작업으로 단 5초 만에 지네를 자기 남친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첫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2시까지 나오기로 한 지네가 약속 시간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기를 너무 싫어한 지렁이가 화나 나서 지네 집을 찾아갔다. 집에 도착한 지렁이가 말했다.
지렁이: 야!! 지네야!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첫 데이트부터 이렇게 늦어도 되는 거니?? 도대체 뭐하길레 이렇게 늦는 거야!!
지네: 신발 신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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