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번의 봄을 재촉하는지,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6일 토요일 저녁. 멜번 시내를 가로지르는 야라 강변을 따라 멜번 대학교 보트 클럽 건물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저절로 바빠졌다. 지난 7월 30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의 조정경기장에서 대한조정협회 주관으로 열린 STX컵코리아오픈 레가타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한 멜번 대학교 조정 팀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무한도전 제친 멜번대학 조정팀, 직접 만났다그들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첫째는 그들이 우승 팀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대회에 바로 '무한도전' 팀이 출전했다니 그 뒷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어쩌면 두 번째 그 '사심 어린'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약속 시간 2분 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야라 강을 내려다보며 멜번대학교 보트 클럽 건물 앞에 서 있는데 누군가 베란다에서 말을 붙인다.
"여기 오신 거죠? 올라오세요. 어서 들어 오세요." 마침 문 앞에 도착한 자그마한 체구의 여학생 한 명도 반색을 하며 같이 들어 가자고 권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무한도전' 조정 연습 방송을 통해 제법 친숙(?)해진 운동기구 열 몇 대가 늘어서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쉬워 보이지만, 내리자마자 근육이뭉치지 않도록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해야 하는 바로 그 기구다. 정말 그렇게 힘든지 한 번 해 보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훈남' 느낌이 확 다가오는 첫 번째 선수와 인사를 나눴다.
스튜어트 알렉산더. 멜번대학교 팀 7번 자리에 앉았던 선수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그는 기분 좋아지는 미소를 가득 담고 말을 건넸다.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이 그렇게 유명한가요? 우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조정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관중이 바라봐주는 경험, 처음이었죠. 여기 와서 유튜브 등을 통해 봤는데 너무 단편적이어서 한 번 제대로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져요. 아시죠? 여기 풋볼 할 때 많이 모였다고 해도 2만 명 정도잖아요. 그런데 조정 경기 하던 날 3만5000명이 모였어요. 정말 대단했죠."
유일한 여성 멤버로 콕스를 맡아 인상적인 '파이팅' 제스처를 한국 팬들에게 남긴 프랭키 라카드. 그는 경기가 끝난 후 무한도전 팀들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손을 들어보였다. 지난 2일 귀국한 이들은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학교로 돌아가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6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축 파티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
'스트록' 포지션인 찰리 하몬드, 6번 자리의 윌리암 해너먼, 5번 자리를 지킨 러셀 조지, 2번 닉 버마드, 그리고 가장 끝 자리를 지켰던 윌 스미버트. 부득이 함께 자리할 수 없었던 3번 조단 스미스를 빼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했더니 '이때다'라는 미소를 가득 띄우며 자랑스럽게 위층에 '곱게 모셔 두었던' 우승컵을 가져왔다. 'NOVIS 대회 우승' 대한 조정 협회… 한글이 쓰인 커다란 우승컵이다. '알고는 있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들을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의미를 가르쳐 주다 보니 갑자기 '한글 교실'이 열렸다. 선수들은 다시 한 번 기쁨에 흥분을 숨기지 않으며 단체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해 줬다.
조정 보트들과 노가 쌓여 있는 방 옆은 운동기구로 가득하고 그 옆 계단을 오르니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이 있다. 그 방에서 비로소 '진짜 조정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최대 경력 10년차... "무한도전 대단했다"
스튜어트가 4학년으로 가장 선배고 스트록을 맡았던 찰리는 이제 대학 2년차. 대학에서는 회계학, 상업 등 각각 서로 다른 과목을 전공하고 있다. 모두 고만고만하게 아직 앳된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가장 적게는 6년부터 많게는 10년 동안 조정을 해왔다. 그런데 경력 10년이라고?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시작했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한 건 6학년부터였어"라고 새삼스럽게 서로의 경력을 회상한다.
하지만 그만한 경력이 있어도 자신들이 조정을 전문으로 하지 않을 확률이 크단다. 실지로 전문직이 되는 사람들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그래도 파트타임 일은 잡게 될 거라고 한다. 바로 자신들의 출신 고등학교 등에서 조정을 가르쳐 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멜번 대학 조정팀은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오랜 경력과 피나는 연습으로 호흡을 맞춰 왔다. 그들은 불과 5~6개월 연습하고 국제 규모에 출전해, 1등을 한 자신들과 무려 2분 차이를 내며 들어온 무한도전 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마침 무한도전 팀 출전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기사가 나온 직후여서 이들 선수 당사자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이러저러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고 얘기했더니, 스튜어트의 동그란 눈이 더 크게 동그래진다.
"왜요?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정 경기라는 것이 아직 그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진 않아요. 그런데 조정 경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또 하면 더 좋겠다는 흥미를 갖게 만든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나요?" 찰리 역시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조정 경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으며 할 수 있구나 싶어 정말 좋았답니다. 그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우승을 했을 때 커다란 박수를 받았고...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덧붙인다. 2번 자리를 지켰던 닉 역시 "관중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봐 줬고, 무한도전 팀이 진로를 방해한 것도 없었죠. 좋았어요. 경기에 그런 셀리브리티가 있으면 더 흥미롭죠"라고 말했다. 프랭키와 러셀은 "그 팀은 정말 잘한 거예요. 이게 사실 오랫동안 체력을 쌓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수 있는데 완주했잖아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러셀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매일 서너 시간씩 꾸준히 연습을 했어요. 호흡을 완벽하게 맞추는 연습은 수도 없이 했죠. 그 땀들을 모아서 단 6분에 모두 다 소진해 버리는 거죠. 조정 경기가 그냥 느긋하게 보트를 몰고 가는 것 같지만 우린 6분에 정말 가진 힘을 다 쏟아낸 거예요. 거기에 바로 조정 경기의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찰리는 "조정 올림픽 대회에서는 1등에서 6등까지 2초 차이가 나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1등과 2등이 0.00 몇 초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그만큼 짜릿한 운동이랍니다"라고 말한다.
조정과 축구의 다른 점... "한 명이라도 박자가 틀리면"
조정 경기가 심리적인 트레이닝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 '협조'가 좋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튜어트의 답이다.
"축구도 팀 스포츠죠? 조정 경기도 그렇고요. 그런데 축구에서는 열한 명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심지어는 퇴장을 당해도 게임을 계속할 수 있죠. 그런데 조정은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아홉 명이 함께 이기거나 함께 지는 거죠. 단 한 명도 빠지지 못하고, 단 한 명도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팀 스포츠예요." 조정 경기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기도 하지만 '비싼 운동'이라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에는 "아,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조정 보트를 개인 개인이 사는 건 아니죠. 그게 소용 없는 일이고요"고 답했다. 호주의 경우 후원을 확실히 받는 조정 팀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조정은 한 시간 배우면 80%를, 1주 배우면 90%를 그리고 1년이면 95%, 2년이면 99%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99% 한계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처음엔 재미있어 보이고 그러다 너무 힘들다는 쇼크와 마주하게 되죠. 그걸 이기면 그 다음에 팀 스포츠로 마음을 맞춰 가는 것, 자신의 체력을 늘려 가는 것 등,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에 빠지게 된답니다." 5일 일정으로 다녀온 이번 한국 대회 출전에서 이들은 우승의 기쁨을 안고, 나머지 몇 날은관광을 했다.
"'홍대' 알아요?" "이태원 알아요?" "서울 한 곳에 몇 천 년 역사를 지닌 왕궁도 그대로 있고, 모던테크놀로지도 있고, 여기 멜번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클럽도 있던데요?" 초롱초롱한 눈빛, 전혀 거침 없으면서 맑은 표정, 모든 질문과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열심히 대답을 하던 '올바른' 청년들은 역시 또 그 나이답게 자신들이 방문한 한국의 클럽 문화를 신나게 떠든다.
조정 연습도 열심히 하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해서 꼭 다시 한국에 가보겠다는 그들. "경기날 오셨던 여성 관중들이 얘한테 '저스틴 비버'라고 했어요.." 찰리를 가리키며 유쾌하게 웃는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 정말 좋았어요. 우리가 팬이 되었지요. 여기서도 관심 있게 한국의 모든 것을 지켜볼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약간의 수정을 거쳐 멜번저널에 중복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