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간부로 근무하다 경쟁회사를 옮기면서 전 회사 영업비밀이 담긴 파일을 유출했다면 전 회사에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돼 처벌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LG화학에서 근무하던 K(42)씨는 2008년 9월 퇴사하면서 '회사 영업비밀 유출 금지 관련 퇴직자 서약서'에 서명했으면서도, 경쟁사인 금호석유화학으로 이직하면서 LG화학의 중장기 전략보고, 신제품 개발계획 등 영업비밀로 관리하던 경영자료 파일을 유출했다.
이에 검찰은 "영업비밀 반출로 LG화학에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했고,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염기창 판사는 지난해 4월 K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K씨가 "이직하기 전에 파일을 삭제해 LG화학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며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한정규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K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쟁업체인 금호석유화학에 입사신청을 하고 LG화학에서 퇴사한 후 같은 달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파일들을 외부로 반출할 당시 향후 LG화학과 무관하게 이 파일들을 사용할 의사가 있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해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영업비밀인 이 사건 파일들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으로 반출했다면 그 반출 시에 업무상배임죄가 성립된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사건은 K씨의 상고(2010도9652)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이직하며 영업비밀이 담긴 파일을 빼돌린 혐의(업무상배임)로 기소된 K(42)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업무상배임죄에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LG화학의 영업비밀 파일들을 무단으로 반출했고, 이런 행위는 LG화학에게 현실적으로 손해를 가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