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된 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경에 끌려가 학살을 당했다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또 남편 없이 22살 젊은 나이에 홀로 4살 된 딸과 막 돌이 지난 아들을 키우게 된 여인의 마음은 어떨까?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이름조차 맘 놓고 불러보지 못한다면 그 심정 또 오죽할까.
이 사연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가운데서도 '청도군 보도연맹유족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이진훈(63)씨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라 함은 지난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로 정부에 의해 무작위로 학살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학살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였다. 이들의 사연 뒤엔 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다고 외치는 정부가 있었기에, 이토록 억울한 사연도 가능했다.
이제야 겨우 말하는 60년 전의 억울함한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지금껏 아버지의 사건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던 그가 61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이 또한 지난 2006년 10월에 제기된 울산보도연맹사건을 조사한 과거사위원회가 지난 2008년 7월 17일 '보도연맹 사건 조사 결과 국가의 잘못'임을 인정하면서 가능했다.
그가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난 6월 19일, 그토록 고대하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향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한 모친이 계시기에 더욱 가슴 아팠다.
그의 모친은 꽃보다 아름다울 나이 18살에 시집와 4년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시부모님이 우여곡절 끝에 데려 온 남편의 시신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겨울 정도로 비참했고, 결국 이 여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야 말았다.
이는 시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지극히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장남이, 그것도 한창 젊은 25살 된 나이에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눈앞에 누워 있는데, 시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렸을 터.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식의, 남편의 죽음을 하소연할 길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랬다간 돌연 '빨갱이(좌파)'로 오인돼 더 큰 화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모친은 남편의 죽음을 가슴에다 묻고 두 눈과 두 귀를 막은 채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며 험난한 인생을 억척스레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6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녀와 그의 자식들이 60년 동안 어떠한 마음으로 어찌 살아왔을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영문도 모르고 가입한 보도연맹, 집단 학살의 시작이런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은 현재 전국에 수백 수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로 소중한 가족의 일원을 잃은 유족들이다. 당시 국가가 이들에게 씌운 죄목은 "보도연맹에 가입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1949~50년 조직된 '국민 보도연맹'은 좌익인사 전향을 목적으로 정부가 조직한 단체로 많은 이들이 강제로 가입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 발발 후 보도연맹 인사들을 집단학살했다. 이런 사실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 밝혀졌다.
2006년 10월 울산보도연맹 사건을 계기로 이런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가 법적 소송을 준비, 그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 6월 30일, 일찍이 같은 사건으로 울산보도연맹유족회가 대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청도보도연명유족회' 또한 재심 소송 중이다. 청도군보도연맹유족회는 지난 2009년 1차례 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한 결과 패소했다.
한편, 이들의 소송 과정에서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이들 국민보도연맹유족회 대부분은 고령층인 60~80대가 대부분. 이진훈씨가 밝힌 사실에 따르면, 청도군 보도연맹유족회 또한 처음에 107명으로 출발했지만, 지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10명이 고령의 나이와 금전적인 투자에 힘이 부쳐 소송을 포기했다고 한다. 현재 청도군 보도연맹유족회원은 97명. 이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 보도연맹유족회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소송 과정에서 고령의 나이와 금전 문제 등으로 소송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들이 정부의 오랜 외면에 지치기 전에 정부가 하루빨리 과거사를 인정하고 이들에게 보상 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청도군보도연맹유족회를 포함 전국 곳곳에 결성된 유족회 대부분이 고령자 층이 대부분이라 국가를 상대로 손배를 신청하는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 누가됐든 이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 지원 또한 바라는 바다.
한편, 울산 및 청도, 창녕 등 보도연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는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연락처는 02-567-6477이며, 청도군보도연맹유족회 사건은 김형태 변호사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