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반대하는 주민투표가 발의되어 8월 24일 서울에서 최초의 주민투표가 이루어진다. 오세훈 시장과 찬성측은 복지포퓰리즘을 추방해서 나라를 구하자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대권놀음에 눈먼 오세훈 시장이 정착단계에 있는 친환경무상급식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측에서 주민투표를 진단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3-4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
인도 타밀 나두 주의 한 외딴 지역에서 소를 돌보던 한 아이가 어떻게 인도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까?
인도에서 실시되는 학교무상급식을 소개하는 문건 하나는 그 시작을 이렇게 하고 있다. 전직 주지사였던 K. 카라마즈는 이 아이를 보고 물었다. "여기서 소들과 뭐하고 있니? 학교는 안 가니?" 아이는 심퉁하게 쏘아 붙였다. "내가 학교가면 먹을 것을 줄래요? 먹어야 공부를 하죠."
1억2천만 명의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실시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는 인도의 학교급식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린 배를 가지고는 공부할 수가 없으니 모든 아이들에게 밥부터 먹이고 공부를 시키자라는 운동이 벌써 50년 전의 타밀 나두 주를 기점으로 인도 전역에 확산되었던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477달러(세계은행발표)다. 20,757달러로 그의 14배에 달하는 우리나라가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주민투표까지 치르며 치졸한 정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미 반세기를 넘어서고 있는 인도의 점심제공프로그램(Mid-Day Meal Scheme)은 부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인도의 선진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도의 대법원은 2001년 11월 28일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무상의 학교급식은 즉시 인도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사정의 여의치 못한 일부 지방의 경우에도 3개월 정도의 말미를 두고 완전한 무상급식체제를 갖추어 실시하라고 명령하였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무상의 점심식사는 더 이상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복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가지는 당연한 권리의 대상이며 국가는 이러한 무상의 학교급식을 제공하여야 할 헌법과 인권법상의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 결정문의 일부분을 인용해 보자.
우리(연방대법원)는, 주정부나 직할주에 대하여 각 정부가 설립한 초등학교 혹은 그 정부의 지원을 받는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모든 학생들에게 하루 최소 300칼로리와 8-12그램의 단백질을 포함하는 조리된 점심식사(mid day meal)를 제공하여야 하며 이는 연간 200일 이상 실시하여야 한다고 명령한다. 조리된 음식 대신 가공되지 않은 식량을 배급하고 있는 주정부들은 관할지역의 절반 이상에 대하여(빈곤순으로 정함) 정부가 설립한 초등학교 혹은 그 정부의 지원을 받는 초등학교 모두에 대하여 향후 3개월 안에 조리된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하여야 하며, 그 후 3개월 안에 나머지 지역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대해 조리된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하여야 한다.(People's Union for Civil Liberties v. Union of India & Ors, Writ Petition (c) No.196 of 2001)이 대법원의 결정은 무상의 학교급식이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시민단체들이 공익법소송의 형태로 제기한 청구에 대한 대법원의 응답이었다. 당시 주정부는 곡식을 각 가정에 배급했는데 상당히 많은 가정들에서 이 곡식을 시장에 내다파는 바람에 아이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고, 배고프기에 학교에 입학하거나 입학하더라도 등교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 대법원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 해법을 무상의 학교급식에서 찾았다. 무상의 학교급식은 먹거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food)의 중요한 내용이며 이 권리는 세계보편적인 인권기준에 의해 보장되는 것임을 사법부가 재확인한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 공세 뒤엎는 인도 대법원 판결
엄청난 혈세를 낭비하면서까지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무상급식을 저지하고 그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우리 정치꾼들의 행태는 이런 사법판단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는 정치의 문제도 경제의 문제도 아니며 오로지 헌법과 인권의 문제며 아이들 교육의 문제며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발전의 문제임을 선언하는 인도 대법원의 판결은 "복지 포퓰리즘"이니 "부자급식"이니 하면서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진 주장들을 한 순간에 뒤집어 엎어 버린다.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이라고 반대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언급 속에 "부자감세"의 속셈을 숨기고 있는, 그 천박하고도 조악한 정치술수를 정면에서 되짚어보게 하는 것이다.
사실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쪽에서는 우리의 현재의 경제수준에서 무상급식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국민소득 2만불 수준에서 국민소득 5만불을 넘어서는 핀란드나 스웨덴과 같은 무상급식은 가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핀란드에서 무상급식이 실시된 것은 20세기초부터이며,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한 것도 1948년부터라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늦게 시작한 스웨덴의 경우조차 1993년부터이다).
국민소득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냐라는 정의와 인권의 문제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실제 구매력기준 국민소득을 따지면 우리나라가 29,000불 수준이고 이들 나라는 36,000불 수준이다. 경제력 차이도 그렇게 크지 않다).
혹은 이 정치꾼들은 국민들의 세금부담률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거두기에 그런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거두면서도 한강르네상스와 같은 전시성 토건사업은 벌이지 않는다는 말로 무시해 버릴 수 있다. 세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정책 1순위에 놓여야 하며 무엇이 그 다음으로 밀려야 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하시라가장 답답하고도 숨통 터지는 억지는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의 예를 들면서 무상급식이 이들보다 '못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점심식사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식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학생들도 집에 돌아와 두 시간에 걸친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프랑스는 식문화 자체가 우리와 다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우리도 프랑스처럼 이렇게 한다면 아마도 학교교육이 무너진다고 야단일 것이다. 대입시용 무한경쟁교육을 하느라 야자시간도 모자란다고 야단인 판에 점심을 두 시간동안 그것도 학교에서 벗어나 집에 가서 먹다니!)
영국이나 미국의 학교급식은 우리처럼 학교급식법이라는 국가법률에 의한 엄격한 통제를 받는 교육과정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식당에서 똑같이 제공하는 체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칸틴과 같은 학교매점에 가서 사 먹는 체제다. 만약 영국과 미국의 예를 들어 우리 학교급식을 언급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학교급식법을 폐지하라는 주장이다. 궁금해 하는 사람을 위해 조문 몇 개만 소개한다.
제3조(국가·지방자치단체의 임무)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양질의 학교급식이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하며, 영양교육을 통한 학생의 올바른 식생활 관리능력 배양과 전통 식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제13조(식생활 지도 등) 학교의 장은 올바른 식생활습관의 형성, 식량생산 및 소비에 관한 이해 증진 및 전통 식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학생에게 식생활 관련 지도를 하며, 보호자에게는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제14조(영양상담) 학교의 장은 식생활에서 기인하는 영양불균형을 시정하고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저체중 및 성장부진, 빈혈, 과체중 및 비만학생 등을 대상으로 영양상담과 필요한 지도를 실시한다.제3조에서 말하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이란 "지원"과 더불어 행정청의 "감시·감독"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급식의 중요한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다 "영양교육"과 "전통 식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교육행위와 교육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학교급식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영양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학생들의 "식생활 관리능력 배양"을 도모하고자 하는 교육행위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전통 식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국가목표까지 삽입된다.
제13조와 제14조에 학교장에게 "식생활 관련 지도"를 하며 영양상담과 "필요한 지도"를 하도록 의무지우고 있음은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한마디로, 학교급식은 학교교육의 한 분야로서 마련되고 또 제공되는 것이다. 이 점이 영국과 미국의 학교급식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학교급식이 가지는 제도적 특징이다. 점심식사는 사적·개인적 활동으로 보고 개인적 구매력을 중심으로 학교급식제도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과 섣불리 비교해서는 아니되는, 우리나라만의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무상급식, '복지' 아닌 학교 교육과정의 하나
다시 확인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학교급식은 그 반대론자들이 무작정 떠들어대듯 "복지포퓰리즘"의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인권이다. 그것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학생들이 당연히 그리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학생의 권리다. 혹은 우리나라의 학교급식은 점심거리를 사고 파는 매매행위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 생물학적 영양공급행위도 아니다. 그것은 학교장의 지도하에 준엄하게 실시되는 학교 교육과정의 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국영수를 배우고 문예체를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정규의 교육과정인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무상의 학교급식이 이루어져야 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학교급식은 교육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무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의무교육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자라고 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등록금과 수업료를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자라고 해서 이 의무교육체제에서 식생활교육을 돈 내고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금에 벌어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사태는 그 자체 무수한 불법과 위법을 안고 있는 것이라 무효의 것일 뿐 아니라, 이런 관점에서도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법치적이다. 사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너무 높아 그 부작용이 국가적 걱정거리가 될 정도다.
그런 판국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문제를 이리저리 말을 비틀고 뜻을 바꾸어가며 투표의 대상을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주민투표의 문안은 다의적이고 모호하여 우리를 혼란케 하지만, 실제 정확한 주민투표의 대상은 이것이다:
"서울시 예산을 아이들 학교급식에 먼저 쓰고 그 남은 돈을 한강르네상스 사업에다 쓸까요, 아니면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먼저 쓰고 남은 것이 있으면 아이들의 학교급식에 쓸까요?" 주민투표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1안이든 2안이든 어디에 찍어도 우리의 의사는 왜곡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것, 그것만이 올바른 의사의 표현수단이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인 한상희 교수는 건국대 로스쿨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