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감행한 '대선 불출마 선언'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16일 오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예상을 깨고 서울행정법원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수리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것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승부수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련의 과정에서 오 시장과 청와대가 교감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11일)에 이은 "복지포퓰리즘" 비판(15일) 등은 그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왜 MB는 연이어 '오세훈 지원' 발언 감행했나?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난 12일은 광복절을 포함한 '3일 연휴'를 앞둔 때였다. 시기만 놓고 본다면 오 시장에게 결코 유리할 것 없는 '택일'이었다. "정치인이 연휴에다 대통령의 8·15 담화문 발표를 앞두고 이런 중대한 발표를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비아냥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서울행정법원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최종 심의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서울시 안팎에서는 "가처분 신청 결정이 12일 아니면 16일에는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광범위하게 나돌았다. 강희용 민주당 서울시의원은 "가처분 신청을 심의하고 있는 판사가 '늦어도 16일까지 가처분 신청 심의를 끝내겠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이러한 법원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12일 기자회견을 전격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기자회견의 메시지가 '대선 불출마'보다는 '주민투표 성사'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런 맥락에서 "(주민투표의) 숭고한 의의 앞에 저의 대선 불출마는 하나의 개인적 결정에 불과하다"는 발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한 쪽은 오 시장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기 전날인 11일 "주민투표에서 여당이 서울시와 힘을 합쳐 어떻게든 이겨줬으면 하는 희망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주민투표 승리" 발언을 감행한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쪽에서는 "대통령이 법원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으로 국가 부도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느라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등 '복지포퓰리즘'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오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운동에 동원해온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결국 이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에 이은 "복지포퓰리즘" 비판은 오 시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정치행위'로 해석된다.
법원 결정문에 남은 '정치적 결정'의 흔적
특히 이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11일)은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12일)이 열리기 전날에 있었고, "복지 포퓰리즘" 비판(15일)은 서울행정법원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가처분 신청을 결정하기(16일) 전날에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 대통령과 오 시장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오 시장과 청와대가 서로 교감하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로도 읽힌다.
오 시장이 청와대와 의논한 상태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열었고, 청와대에서도 11일과 15일 연이어 이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간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운동을 지원했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시의 한 인사는 "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든 시장직 사퇴든 VIP(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지 않고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오 시장이 한나라당 안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이 당 안팎으로부터 여러 가지 비판이 쏟아질 것이 분명함에도 '오세훈 지원'에 나선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법원의 결정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문에는 '정치적 결정'으로 보이는 문구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본안소송의 승소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고 적시한 대목이다. 이를 두고 가처분 결정문의 내용 치고는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각 결정'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오세훈 논리'가 발견된다. 법원은 "(무상급식) 실시에 따른 주민들 부담이 적지 아니하므로, 주민투표 실시로 서울시민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상당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오 시장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민투표는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도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른 '주민투표 무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많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법원의 결정문은 이 대통령과 오 시장의 정치적 행위가 성공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