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이 KBS 기자의 민주당 당 대표실 도청 의혹에 대해 "심증만 있되 물증이 없다"며 "벽에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16일, 조 청장은 '도청사건에 대한 엄중 수사를 촉구'하며 청장실을 항의방문한 민주당 불법도청 진상조사위원회 위원들이 "KBS 기자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만으로도 사법 조치가 가능한데 지지부진한 이유가 뭐냐"고 쏘아붙이자 이같이 밝혔다.
조 청장은 "어떤 사건이든지 심증만 있되 물증 없는 사건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가 어렵다"며 "녹음기나 그걸 푼 작업을 한 노트북 등 물증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벽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증 확보 외에) 다른 쪽으로 접근해 여러 가지를 밝혀냈지만 검찰의 협조가 필요하고 법원에서 기각되면 어렵기 때문에 경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재윤 민주당 불법도청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은 "당 대표실 도청 사건이 발생한 지 꽤 지났지만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결과가 나오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도청 사건에 대해 청장이 수사를 조절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조현오 "경찰은 나름대로 수사 열심히 했다"
조 청장은 "경찰은 나름대로 수사를 열심히 했다"며 "결과를 언제 발표해야 하는지는 검사 추인을 받는 사안이고 법원에 영장 결정권이 있으니 그것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도 많다, 딱 잘라 사건을 언제 종결짓고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의 의지는 뚜렷하지만 '수사권이 독립되지 않아'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경찰은 더 이상 수사에서 나올 게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검찰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거냐, 어디서 막힌 거냐"며 "(우리에겐) 경찰이 다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조 청장은 "구체적으로 다른 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 드리기 곤란하다"며 "(사건 발표 시기는) 우리가 나름 예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우리 예상과 달리 검찰과 법원에서 다른 입장을 취하면 예상과 어긋나니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며 같은 입장을 되풀이 했다. 다만 그는 "사건의 추이를 볼 때 (결과 발표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찰도 도청 행위 자체에 대해서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생각하고 경찰의 역량 한도 내에서 정상적인 수사 절차를 밟고 있다"며 "(사건을 해결할) 길이 있음에도 회피한다는 식으로는 오해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윤 위원은 "경찰이 조금만 더 집중하면 녹취록을 푼 사람, 전달한 사람을 다 찾을 수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홍영표 위원은 "이번 사건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무능한 경찰'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 한선교 의원 소환 재추진
한편, 영등포 경찰서 관계자는 16일 "한선교 의원이 직접 경찰에 나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한 의원에 대한 소환을 재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소환 방법에 대해서는 출석을 종용할 지 출석 요구서를 재차 보낼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한 의원은 세 번에 걸친 경찰의 소환 요구를 모두 거부한 바 있다.
경찰은 지난 1일 한 의원의 보좌관 2명을 소환해 민주당 비공개 회의 날과 그 다음 날 KBS 기자와 수차례 통화한 경위 등을 물었지만 이들은 통화기록과 도청 의혹 사이의 상관관계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포 경찰서 관계자는 "보좌관에 대한 조사에서 수사에 영향을 줄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며 "도청에 관해서 보좌관에 대해 재소환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좌관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경찰은 당사자인 한 의원에 대한 재소환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에 대한 소환 방침이 알려지자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 국회 당대표실 불법도청사건에 관련한 사람 중에서 한 의원만이 유일하게 경찰조사에 불응하고 있다, 볼썽사나운 일"이라며 "한 의원은 지역유권자 보기 창피하지 않은가"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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