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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 잔뜩 긴장했습니다. 아슬아슬 첫 걸음을 뗍니다. 용케 잘 달립니다.
▲ 첫 걸음 잔뜩 긴장했습니다. 아슬아슬 첫 걸음을 뗍니다. 용케 잘 달립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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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보조바퀴 떼 주세요."

지난 12일 오후입니다. 퇴근을 서두르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한손에 가방 들고 전화를 받자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불편한(?) 전화를 받았더니 뜻밖에 우렁찬 큰애 목소리가 들립니다.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꿉니다.

"아빠! 우리 이제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 잘 타요. 그러니까 바퀴 떼 주세요. 알았죠."

큰애가 두 번이나 다짐을 놓습니다. 애들이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를 탔나 봅니다. 앞뒤 사정을 자세히 물으려다 집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두 녀석이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를 탔다니 갑자기 걸음마 떼던 큰애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빠를 향해 두 팔 벌리고 엉거주춤 걸어오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녀석들이 두 바퀴 자전거를 타려나 봅니다.

꼬마 자전거 큰 애 자전거입니다. 보조바퀴를 뗀 날렵한 모습입니다.
▲ 꼬마 자전거 큰 애 자전거입니다. 보조바퀴를 뗀 날렵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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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자전거 2 둘째 녀석 자전거입니다.
▲ 꼬마 자전거 2 둘째 녀석 자전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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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넘어진다. 끝없이 발을 굴려야 한다. 인생처럼...

아내와 저는 종종 저녁 먹은 후 아파트 뒤 마을로 온 가족을 이끌고 산책을 나섭니다. 그럴 때면 두 녀석은 네 바퀴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며 조릅니다. 아내는 경사 심한 곳이 많아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두 녀석은 엄마 주위에서 멀어지지 않고 또 천천히 가겠다며 통사정을 합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아내는 마지못해 허락을 하면서 꼭 아빠, 엄마 뒤에 따라와야 한다는 엄한 약속을 받습니다. 일단,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데 성공한 두 녀석은 처음엔 아내 뒤를 따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눈치를 살피다 페달에 힘을 줘 앞쪽으로 치고 나갑니다.

그 모습 본 아내는 곧 불호령을 냅니다. 말 듣지 않으면 집으로 되돌아간다며 엄포를 놓습니다. 두 녀석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 뒤쪽에서 천천히 따라옵니다. 또다시 기회를 엿보면서 말이죠.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두발 자전거를 탄답니다. 녀석들이 조금씩 커가고 있습니다. 두발 자전거는 네발 자전거처럼 마냥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멈추면 넘어집니다. 끝없이 발을 굴려야 합니다. 인생처럼...

꼬마 자전거3 보조바퀴 자전거 옆모습입니다.
▲ 꼬마 자전거3 보조바퀴 자전거 옆모습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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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두 녀석이 달려옵니다.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는 형에게 배웠답니다. 이제 자신들도 잘 탈 수 있으니 보조바퀴 떼 달랍니다.

날은 어둡고 보조바퀴 뗄 장비도 없습니다. 핑계를 대며 내일 바퀴를 떼자고 달랬습니다. 두 녀석 실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설렘을 달래기 힘든 가 봅니다. 또, 내친김에 그날 배운 자전거 실력도 뽐내고 기술을 더 연마할 생각이었겠지요.

흥분한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이 됐습니다. 두 녀석이 눈뜨기 바쁘게 제게 달려옵니다. 보조바퀴 떼러 자전거 수리점에 가잡니다. 장비가 없다고 하니 간밤에 두 녀석이 끙끙대며 생각해낸 결론입니다.

보조바퀴 그동안 두 녀석 안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아슬아슬한 인생의 참 맛을 느끼겠지요. 너무 심술 궂나요?
▲ 보조바퀴 그동안 두 녀석 안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아슬아슬한 인생의 참 맛을 느끼겠지요. 너무 심술 궂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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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자전거 정말 탈 수 있을까?

그 소리 듣고 아내가 오늘은 다른 곳에 놀러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언제 수리점에 갈 거냐며 따지듯 저를 쳐다봅니다. 놀러갔다 돌아오면 가자고 겨우 두 녀석을 달랬습니다.

두 녀석은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아내와 함께 마지못해 집을 나섰습니다. 막내는 곤히 잠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이 조용합니다. 자전거 수리점에 가자면 꼬마 자전거 두 대를 한꺼번에 차에 실어야 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해서 집에 있는 도구로 우선 큰애 자전거 보조바퀴를 뗐습니다. 떼 낸 보조바퀴를 바라보며 애들이 정말 잘 탈 수 있을까 의심이 갑니다. 아내와 함께 외출했다 돌아온 두 녀석이 곧바로 자전거를 바라봅니다.

큰애는 보조바퀴가 없어진 자전거를 보며 신이 나서 말합니다. 곧장 주차장으로 가잡니다. 반면, 둘째는 아직 보조바퀴가 달린 자신의 자전거를 바라보며 시큰둥합니다.

홀로서기 발끝이 겨우 땅에 닿네요. 혼자서 모든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출발을 준비합니다.
▲ 홀로서기 발끝이 겨우 땅에 닿네요. 혼자서 모든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출발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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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비 못 넘으면 자전거 영영 못 탄다

그러거나 말거나 큰애는 시범을 보이겠다며 제 손을 이끕니다. 주차장에서 보란 듯이 두발 자전거를 탑니다. 처음엔 엉거주춤 넘어질듯 하더니 이내 안정된 자세로 달립니다. 그런데 꼭 어느 지점에만 가면 세워진 자동차로 돌진합니다.

몇 차례 그런 모습을 보니 제가 더 답답합니다. 신나게 두 바퀴로 달리는 큰애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자동차로 돌진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잘 모르겠답니다. 그곳에만 가면 자석이 빨아 당기듯 끌려간답니다.

자세히 살피니 그곳은 직각으로 꺾이는 지형입니다. 큰애는 직선으로 달릴 때는 자신 있다가도 핸들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당황합니다. 그러면 몸이 굳고 자전거는 어김없이 자동차로 돌진합니다. 자전거 처음 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몇 번을 자동차와 부딪쳤습니다. 잠시 생각하니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큰애는 두발 자전거 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더 심각해지면 다시는 자전거를 영영 못 탈 수도 있겠지요.

큰 애에게 그곳에선 좀 더 크게 돌도록 신경 쓰라고 다그쳤습니다. 다행히 몇 차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는 이내 방향을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렇게 광복절 낀 연휴를 애들 자전거 홀로 타는 훈련하며 보냈습니다.

질주 저 멀리 큰애가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행여 넘어질까 뒤쪽에서 자전거를 잡고 달리니 그만 손 떼라네요. 그말 듣고 섭섭했습니다.
▲ 질주 저 멀리 큰애가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행여 넘어질까 뒤쪽에서 자전거를 잡고 달리니 그만 손 떼라네요. 그말 듣고 섭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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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구석이 휑하다... 어른이 겪는 사춘기일까?

돌이켜 생각하니 산책길에서 멀리 달아났다 아내 불호령에 재빨리 곁으로 다가와 자전거 위에서 핀잔 듣던 아이들 모습은 과거가 됐습니다. 적어도 주변을 뱅뱅 맴돌며 핀잔을 듣겠지요.

그리고 곧 또 다른 걸 깨닫겠지요. 부모 손에서 떨어져 스스로 한 몸 일으켜 세우며 끝없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주변을 맴돌며 제 손길을 기다리던 두 녀석은 없어졌습니다.

녀석들은 아직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 타기가 서툽니다. 처음 자전거를 움직일 때 잠시 제 손길을 의지하지요. 그러나 곧 속도 붙으면 그마저도 필요없다 소리 지릅니다.

꼬마 자전거를 힘껏 밀다 손을 떼면 아이들은 저 멀리 달아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휑한 이유는 뭘까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겪는 저의 사춘기일까요?

이제 두 녀석 몸 씻기는 일도 그만 두렵니다. 며칠 전 보니 알아서 잘 하더군요. 서로 씻겨주기도 하고 마른 수건으로 몸도 잘 닦고 나옵니다. 옷도 번듯이 챙겨 입습니다. 아빠 손길이 점점 줄어듭니다. 못내 시원섭섭합니다.

광복절, 저는 아이들이 홀로 서려는 몸부림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자전거#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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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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