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된 다음 날인 19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 유모차 한 대가 나타났다. 유모차에는 어린아이가 아닌 '만 60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사진이 실렸다.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혔다.
공개수배 조남호 '애'를 태우다. 이름 : 조남호(만 60세)거주지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특징 :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뺀질거린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2007년, 2010년 정리 해고 안 한다는 노사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놓고, 2011년 정리해고는 당연하다고 이야기함). 습관적 해외도피.*정리해고로 인한 또 다른 피해자가 없기를 바랍니다.조남호 회장을 유모차에 태운 이들은 지난 16일부터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소금꽃 공동투쟁단'. 한진중, 쌍용차, 재능교육, 콜트콜택, 발레오공조 등 해고노동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고동민씨는 "어제 청문회를 보면서 60살이나 먹은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철이 안 들었나 싶더라"며 퍼포먼스를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애들도 '너 몇 살이니'라고 물으면 '세 살, 네 살'이라고 답하는데 조남호 회장은 '우리 아빠 집에 없는데요'라는 식으로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가 죽여 놓고 죽인 사람들을 모른다니..."
전날(18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된 청문회를 지켜본 공동투쟁단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19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사람들이 청문회를 기다리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길 간절하게 기다렸지만 청문회의 결과는 '정리해고 철회 못한다'는 것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 부위원장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 129일 동안 크레인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맨 김주익 지회장과 이어 몸은 던진 곽재규 조합원을 조 회장이 모른다고 한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비통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전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인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 부대표 역시 "혹시나 조남호 회장이 반성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며 착잡해했다. 김 부대표는 "특히 김주익과 곽재규를 모른다고 했을 때 기가 막혔다, 자신(조남호 회장)이 죽여놓고 죽인 사람들을 모른다고 한다"고 조 회장을 규탄했다.
정리해고 이후 수많은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쌍용차 조합원들의 심경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은 "어제 청문회를 보면서 마음이 찢어졌다"면서 "쌍용차 문제와 한진중 문제는 다르지 않다, 한진중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쌍용차 해고자들이 겪었던 일들이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남호 회장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우리도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마이크를 든 이혜선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어제 열린 청문회는 시작일 뿐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문회는 답을 주지 않는다. 한진중 최고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물어본 것에 불과하다. 이제 남은 것은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해서 한진중 해고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반드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이를 위해 "하반기 노동법 재개정 투쟁을 해야한다"면서 "정리해고 남용 규제법을 만들고,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상한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