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에 가장 협조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던 남아무개씨가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한신건영 임원을 지냈던 남씨는 22일 열린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세히 모르지만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들은 것"이라며 "(한신건영의 경리부장이었던) 정아무개씨가 그 얘기를 하길래 그걸 믿은 것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나는 (한 전 총리에게 건네진 돈이) 5억 원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판장이 "5억 원 얘기를 소문으로 들었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언제 처음 들은 것이냐"고 묻자, 남씨는 "깊은 내용은 잘 모르지만 '돈이 한 전 총리에게 갔는데 한 전 총리쪽에서 2억 원을 돌려줘서 급여로 썼다'는 얘기 정도는 들었다"고 답변했다.
핵심 증인 "소문으로 들은 것"... 공소사실 신빙성에 타격초기 검찰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남씨가 "소문으로 들은 것"이라고 증언함에 따라 검찰의 핵심 공소사실인 '9억 원 수수'의 신빙성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남씨는 한신건영이 지난 2008년 3월 부도처리되자 채권회수를 위해 영입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경리부장이던 정아무개씨의 협조를 받아 채권회수목록을 작성했다. 이렇게 작성된 채권회수목록은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하는 '핵심 증거'가 됐다.
하지만 그동안 20여 차례 진행된 재판을 통해 채권회수목록은 원자료를 가공해 임의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그 증거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게다가 검찰도 이 '원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남씨는 "(채권회수목록의 원자료를) CD로 받았다"며 "일산 사무실이나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지금 찾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검찰이 압수수색했을 때 원자료를 확보하지 않았냐"고 추궁했고, 남씨는 "검찰에서 확보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신건영에 근무한 전직 고위임원 A씨는 지난해 12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법정에 증거로 제시된 회사의 채권회수목록은 한 전 총리 사건을 제보한 남아무개씨 등이 짜고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검찰은 왜 다른 임원 제쳐두고 남씨를 제일 먼저 불렀나?이날 재판에서는 남씨와 검찰의 '수상한 관계'를 보여주는 단서도 포착됐다. 한 전 총리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처음으로 부른 사람이 남씨였던 것이다.
남씨는 "처음으로 검찰에 간 것은 (2008년) 4월 2일이었지만 가기 전에 여러 차례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며 "그날 저녁 6~7시에 강남 메리어트호텔 커피숍에서 검사 1명과 계장 1명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갑자기) 채권 채무와 관련된 일을 수습하기 위해 한신건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한신건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고 한 총리에게 돈이 건네졌다는 시기와도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왜 검찰이 다른 한신건영 임직원보다 앞서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냐?"고 따져 물었다.
남씨는 "모르겠다"며 "나도 안 만난다고 피했다가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와서 4월 2일 만난 것"이라고 답변했다.
특히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남씨가 '검찰에 최초로 제보한 인물'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이 한신건영의 다른 임직원들을 제쳐두고 남씨를 가장 먼저 조사한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씨는 한신건영이 부도처리된 2008년 3월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지목한 '2007년'과도 거리가 멀다. '2007년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남씨는 "그날(4월 2일) 검찰에 가서 감이 잡혀서 '한명숙 총리 건이냐'고 물었더니 검사가 '그렇다'고 했다"며 "그래서 내심 한만호 대표의 가석방을 돕기 위해 그날 그를 만났다"고 말했다.
남씨는 "한만호 대표한테 '검찰에 협조하면 선처가 있을지 모른다'는 취지로 말했지 한만호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한 것처럼 큰 소리를 친 게 아니었다"며 "내심 가석방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검찰에 협조하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만호 전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지난 2008년 3월 말 통영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가 4월 2일 남씨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사실에서 처음 만났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남씨가 교도관에게 나가라고 하는 등 큰소리를 쳤고, 채권회수목록을 보여주면서 '이게 검찰에 다 들어갔으니 한 전 총리에게 돈 준 사실을 인정하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버티던 한 전 대표는 최초 진술을 바꿔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