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오세훈에 관한 단상 하나.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나는 여당 새천년민주당의 특보단장이었다. 특보단장으로서의 내 역할은 16대 총선에 공천할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는 일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에게 장차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찾도록 지시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법조, 시민사회, 학계 등 이름만 대면 뜨르르 하던 사람들을 거의 다 만나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변호사 오세훈이었다.
당시 오세훈 변호사는 환경단체에서도 제법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젊고 촉망 받는 변호사였다. 훤칠하고 인물이 좋아 첫 눈에 호감이 갔다. 사근사근한 말투며 단정한 매너까지 좋은 정치인이 될 재목이었다. 나를 비롯한 영입단이 꽤나 공을 들였다. 오세훈 변호사 역시 정치에 관심이 적지 않아 결국 공을 들인 만큼 어렵게 의기투합했다. 오세훈 변호사가 민주당 입당에 동의한 것이다.
그 때는 일 주일 단위로 영입한 각 분야의 인사를 언론에 발표했다. 오세훈 변호사는 영입 발표만 남겨 둔 상태였다. 그런데 발표 며칠을 앞두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입당을 굳게 약속했던 오세훈 변호사가 한나라당으로 입당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정당의 선택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발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당정치의 근본은 이념이며 이념은 바로 정치인의 정체성이다. 이 당도 되고, 저 당도 상관없는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근본인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다. 선거철만 되면 숱하게 나타나는 정치 철새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당선을 위해서 정당이 그 도구로 전락한다면 정치는 국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다. 며칠 전의 굳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사라져버린 젊은 정치 지망생 오세훈이 걱정스러웠다.
정치의 시작부터서 출세를 위해 신념과 약속을 저버린 정치철새의 흉내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입당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치선배로서 정치를 지망하는 신인이 자신의 약속을 너무도 쉽게 져버리는 모습이 불안했다.
정치는 무릇 신의와 도의이다. 국민과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실천하는 신뢰. 실천하지 않는 정치인의 말은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믿음을 상실한 정치인의 말은 공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 선배로서 정치 지망생 오세훈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커주길 빌었다. 그 후 오세훈은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내 눈썰미가 그리 틀린 것 같지 않아 그런 그가 대견스럽고 보기 좋았다. 그러나 훌륭한 정치인과 인기 있는 정치인은 다르다. 정치는 팬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이 못내 가슴에 걸렸다.
서울시장 오세훈에 관한 단상 둘
2011년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과문해서 그런지 아이들 밥 먹이자는 데 눈물까지 흘리며 반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포퓰리즘이니, 선별적 복지니를 떠나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자는 것에 나라가 절단 날 망국병처럼 호들갑을 떠는지 그 이유를 도시 알지 못하겠다. 세빛둥둥섬이 시민의 혈세와 빚으로 둥둥 떠다니는 마당에 말이다.
보릿고개를 겪어 본 사람으로서 배고픈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도시락을 못 싸와 밥을 굶는 그 힘든 시절에도 가난한 아이들은 물로 배를 채울지언정 결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다. 가난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못 사는 사람만 밥을 주자는 발상은 배부른 사람들의 배부른 발상이다. 차별의 아픔과 서러움을 아는 사람은 그 독살스러운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한다.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제도는 악법이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은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악법을 위해 눈물까지 흘리며 시장직을 걸겠단다. 우선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불쾌하다. 내가 그를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그는 투표를 통해 서울시장에 선출되었다. 서울시민은 오세훈 시장이 4년 동안 충실하게 서울시를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는 힘겹게 당선되었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로 그것도 개인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시민과의 약속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렸다. 10여 년 전 정치신인 오세훈과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오세훈 시장은 시장으로서 지켜야 할 천만 서울시민과 약속을 저버린 채 오히려 서울시민을 겁박하고 있다. 정치 도박은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지 서울시의 행정 책임자 오세훈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세훈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천만 시민의 행정과 삶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한 편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오세훈 시장을 비판하지만 정치인 오세훈으로서 그의 선택을 이해한다. 나 역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 오세훈의 선택에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 그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정치인 오세훈이 결코 정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정치적으로 약속하고 국민에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 오세훈은 서울시장이라는 버팀목에 숨어서 '서울시장 오세훈'을 정치에 악용하고 있다.
설명하자면 시장직을 거는 따위의 모습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장직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직은 이미 주민투표실시와 함께 한 묶음으로 패키지화되어 버렸다. 전 시민을 상대로 주민투표를 내건 시장이 주민투표에 실패한다면 사퇴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당연한 일이다. 시장이 시민을 상대로 주민투표를 감행하는 모험수를 던졌는데 주민투표의 실패와 반대는 바로 시장에 대한 불신임과 탄핵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 오세훈이 걸어야 할 것은 서울시장직이 아니라 바로 정치 은퇴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알며 정치적 소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정치인 오세훈, 당당하게 행동하라. 서울시장이라는 제어판에 숨지 말고 정치판에 떳떳하게 나서라. 정치인 오세훈이 걸어야 할 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서울시장직이 아니라 오세훈 정치은퇴이다. 그것이 당당한 정치인의 태도이며 큰 정치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다.
정치는 무릇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이다. 그 약속이 국민을 위한 민복이며 복지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서울시장이 아닌 정치인 오세훈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똑똑히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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