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더 없는 이념논쟁으로 시끄럽다. 아니 혼돈의 절정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때 아닌 주민투표 논란으로 좌우 이념 갈등이 불을 뿜고 있으며, 거기에 종교단체와 언론까지 가세해 자칫 마녀사냥으로 가는 분위기다. 자신의 몸을 태워 국민을 살리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명한 조크처럼 '정말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난세에 영웅난다'라는 말이 있듯, 이 기회를 틈타 어느 정치인은 정략적 계략과 권모술수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고, 또 어느 정치인은 올곧은 정치적 판단과 소신 있는 행동으로 착한 포퓰리즘의 영예를 얻어 입신앙명 할지로 모를 일이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참과 거짓, 진실과 허위, 진리와 위선 속에서 분명 하나의 명제는 반드시 선택받는다는 것이다.
'나물 뿌리를 씹는 이야기'라는 뜻의 <채근담>에는 바로 이런 위기의 시대에 지혜로운 대처방식을 알려주며 기회로 삼으라는 아포리즘(격언)이 담겨져 있다. 편찬자 홍응명(1573~1620) 또한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만든다면 나는 나의 도(道)를 형통시켜서 막힌 것을 뚫으리라"고 하였듯, 서양의 <탈무드>에 비견되는 일상의 지혜를 통해 지금의 난세를 극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권세에 빌붙는 자는 영원히 처량하다
속도와 효율, 아첨과 위선, 기만과 배신 등으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가는 속물근성의 현대 사회를 질타하며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채근담>의 교훈은 어쩌면 이미 옛날 성인의 사탕발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감성이나 순수 따위가 차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불평등의 분노가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책은 총 360가지의 금언을 열거해 놓는다. 그 금언을 경계하는 첫 번째 제목이 바로 '권세에 빌붙는 자는 영원히 처량하다'이다. 여기에서는 권세에 빌붙어 얻어낸 부귀영화는 끝내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접게 만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뜻이라 웃어넘길지 모르겠지만, 과연 오늘날의 사회가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세대일까 하는 것은 한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어 나오는 대주제로는 '봄바람처럼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 '고운 것은 일찍 시들고 담담한 것은 오래간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살짝 취하게 마셔라' 등으로 과한 것은 안 한 것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이밖에도 촌철살인의 창조적 파괴를 깨우쳐주고 있는 대표적 소주제로는 '아집은 사람을 해친다' ''홀로 행하는 것은 영원한 지조가 아니다'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라' '일을 논하려면 자신을 일의 밖에 두어라' '현상에 매달리지 말고 본질로 들어가라'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진다' '천하를 천하에 돌려주어라' 등이 작금의 세태에 짠한 심금을 울리고 있다.
대인배여, 소인을 미워하지 말라하루에 한 개씩, 성경구철처럼 읽어도 일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채근담> 격언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과서이자 생활법이다. 법구경의 한 구절을 보면, 인간의 평생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모든 번민의 고통이 온다고 쓰여 있듯, 피상적 고통에서 벗어나 정말 '아주 쓴 나물 뿌리를 씹는' 심경으로 이 책과 친구가 된다면 진정 자신의 본질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세태와 가장 어울리는 말일까 싶어 밑줄을 그어 본다. <채근담> 36절, '소인을 미워하지 말라'. 본문에 나와 있는 구절이 더욱 가관이다.
"쥐새끼 같은 소인배들은 어떤 대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갖은 수단으로 개인적 이익을 도모한다. 이런 소인배를 보면 증오심이 끓어올라 바로잡아 줄 수가 없다. 결국 소인배는 소인배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중략) 소인배는 갖은 수단으로 상대를 해치고 정력을 흩뜨려 마음 편히 일하고 생활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들을 아끼고 돕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불의에 빠지면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이익을 탐하고 의리를 저버리고 심지어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고 이용한다면, 이런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천년을 이어온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인생의 명언집 <채근담>이 2천년, 3천년까지도 퇴색되지 않고 사람들 마음속에 지혜의 향기를 뿌려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채근담이 일러주는 삶의 가르침| 동방문예 | 다산미디어(2006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