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 D-1. 좋은 싫든 모두가 뛰어든 오세훈 전쟁'. 23일 <중앙일보> 1면의 사이드 톱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은 이어 2-3면에 '무상급식 주민투표 오해와 진실'이라는 친절한 '계몽기사'를 실었다. 유익한 내용이니 일부 소개한다.

오세훈 이기면 무상급식 중단? 아니다. 이미 예산이 반영돼 집행중이기 때문에 올해는 무상급식 범위에 변화가 없다. (오세훈이) 지면 중학교도 전면급식? 아니다. 중학교는 내년부터 한 학년씩 무상급식이 확대된다.

그렇다. 오세훈 서울시장 안은 '단계적 무상급식'이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안은 '전면적 무상급식'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단계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왜, 별 것도 아닌 일에 182억 원을 써서 이 난리 브루스를 춰가며 갈등을 부추기는 것일까? 

복기(復棋)하면 이런 답이 나온다. '오세훈의 전쟁'은 보수의 나팔수인 '조중동'의 대리전이다. 왜 그런지, 찬찬이 톺아보자.

'시민소통위원회'는 쇼?...여소야대로 바뀌자 시의회 출석 거부한 '꼴통'

큰사진보기

오세훈은 2006년 서울시장 취임 때부터 시민소통위원회를 만들고 소통기획관 자리를 신설하는 등 소통을 강조해왔다. 그는 2010년 6월 간발의 표 차이(0.6%p)로 재선에 성공한 뒤 발표한 당선소감문에서도 "더욱 열심히 듣고 소통하겠습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 비전의 정치, 반드시 이루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여소야대 시정을 헤쳐 나갈 복안을 물었을 때도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무슨 지름길이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꾸준하고 계속된 대화, 또 대화, 그리고 인내심이 해법이지,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한껏 자세를 낮추던 그였다.(관련 기사 : "대화 또 대화, 인내심이 여소야대 돌파 해법/시장 임기 채울 것... 3선 도전 생각해봐야")

그러나 소통과 대화 그리고 인내심 말고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던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가 서울지역 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도록 규정한 조례를 의결하자마자 180도 달라졌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한다"면서 "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를 철회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시정 협의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통' 말고는 방법이 없다던 그가 '어떠한 시정 협의도 없을 것'이라고 소통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다. 인구 천 만의 거대한 서울시의 수만 가지 정책이슈 중의 하나일 뿐인 무상급식이란 하나 때문에. 서울시 예산의 1%도 안되는 695억 원(0.35%)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 세금 50조 원, 엉뚱하게 기득권-토건사업에 쓰는 50조를 생각하면 정말 작은 사업"(선대인 전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일 뿐인데.

실제로 그는 그후 6개월간이나 시의회 출석을 거부했다. 마치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의 법안 통과에 반발해 국회 출석을 거부한 꼴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정치를 내놓고 거부하는 것이니 대통령이라면 탄핵감이고 자치단체장이라면 주민소환감이다. 그러고도 보수단체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제안하더니 '불경죄'를 무릅쓰면서까지 '쥐덫 위의 공짜 치즈론'을 제기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조중동 "오세훈은 박근혜-손학규보다 대한민국 발전사에 더 의미있는 인물"

큰사진보기

그는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서울시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청구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자회견을 자청해 보수세력을 향해 '무상급식 내가 막겠습니다'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잔뜩 쌓아놓은 주민투표 청구용 서명지 상자를 등에 업고서. 그중 30% 이상은 나중에 '가짜'로 드러났지만. 조중동은 '엄호사격'으로 그의 출사표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타석에 한나라당 팀 간판급 타자 중 하나인 오세훈이 들어섰다. 오 선수는 이번 타석에서 안타를 반드시 쳐서 타율 3할3푼3리를 넘겨야 올스타전에 나갈 수 있다. 민주당 코치진은 오 선수가 안타를 못 치도록 고의 사구로 걸러 보낼 생각이다. 그런데 야당 응원단에서 열성 팬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왜 비겁하게 피해. 스트라이크로 정면승부해'…."([김창균 칼럼] '오세훈 승부수'의 갈림길 278만표, 조선일보, 6월 22일)

"위기에서 인간의 내공(內功)이 드러나듯, 포퓰리즘 광풍(狂風) 속에서 지도자라는 나무가 드러난다. 어떤 나무는 바람에 춤추다 결국 꺾여버린다. 어떤 나무는 바람이 사라진 곳에 우뚝 서있다.…(중략)…오세훈은 서울시 민주당의 비(非)이성에 굴하지 않고 민중의 이성을 묻는 길을 택했다. 포퓰리즘에 맞서는 의로운 투쟁이다. 민중이 잘못된 선택을 해도 그는 잠시 죽을 뿐 오래 살 것이다. 반대라면 그는 민중과 함께 흥하는 것이다."([김진의 시시각각] 오세훈의 포퓰리즘 전쟁, 중앙일보, 6월 20일)

"지금 여권은 박근혜, 야권은 손학규가 대표주자다. 박근혜는 예선 통과 가능성이 크고 본선 승부가 관심이다. 손학규는 예선에서 성공한다면 그 과정에서 맷집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손학규보다 오세훈이 승자로서건 패자로서건 대한민국 발전사에 더 의미 있는 인물로 남지 않을까."([배인준 칼럼] 복지 소수파 오세훈이 초지(初志) 지킨다면, 동아일보, 6월 22일)

오세훈의 출사표가 "한나라당 간판급 타자"의 "의로운 투쟁"을 넘어 "박근혜-손학규보다 대한민국 발전사에 더 의미 있는 인물"이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설령 "민중이 잘못된 선택을 해도 그는 잠시 죽을 뿐 오래 살 것"이고 "박근혜-손학규보다 오세훈이 승자로서건 패자로서건 대한민국 발전사에 더 의미 있는 인물로 남지 않을까"라는데, 오세훈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보는 오세훈의 '승부사 기질'

큰사진보기

오세훈은 21일 무상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다섯 번이나 울었다(어떤 보수신문은 여섯 번이라고 하고 어떤 진보신문은 네 번이라고 해서 그 중간인 다섯 번으로 했다. 어차피 그의 별칭도 '5세 훈이'니까). 마지막에는 무릎까지 꿇었다. 100년만의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우면산 기슭에서만 18명의 시민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던 그였다. 아니 오히려 이날을 위해 눈물을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울고 이날도 울면 눈물의 값어치가 떨어질 테니까.

오세훈은 변호사 개업 이후, 방송 시사프로그램 진행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는 한편으로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시민사회에 '클린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 강남구에 출마해 정계 입문했다. 시민환경단체의 기대에 걸맞게 의정활동도 모범적이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

오세훈은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를 '무기'로 나중에 '오세훈법'으로 불린 정치개혁 관련 3법(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2보 전진(서울시장 출마)을 위한 1보 후퇴(의원 불출마)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서울시장 출마가능성을 부인했다. 심지어 "(불출마 선언으로) 호감을 얻었지만 이를 밑천으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만큼 미련치 않다"고도 했고, "서울시장은 경륜이 필요한데 나는 충분치 않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강금실 후보의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자 그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마해 240만 9736표를 얻어 같은 당 김문수 경기지사당선자(218만1677표)를 누르고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까지 안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신촌 유세중 괴한으로부터 당한 '면도칼 테러'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나서 그 많은 표를 얻은 줄 알았다.

그래서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주민투표 강행을 '승부사적 기질'로 풀이한다. 고 박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보는 승부사적 기질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2006년에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를 누렸던 그가 4년 뒤에 간신히 당선되어 여소야대에 포위당하자 정면돌파의 수단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택했다는 것이다.

대권 야심 실현하려는 '오세훈의 전투적 프레임 전략'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상급식 논란의 진원지는 서울시가 아니라 경기도라는 사실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지난 2009년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걸고 경기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경기도의회는 그가 제출한 초등학교 무상급식예산안을 전액 삭감해 버렸고, 김문수 지사도 일률적 무상급식을 반대했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는 여소야대가 되었다. 오세훈과 달리 김문수는 '무상급식' 문제를 '친환경급식 지원'으로 풀어버렸다. 서울시와 상황(여소야대)은 같은데 단체장의 해결 방식은 달랐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에서 역설한 '프레임' 개념을 빌려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행을 대권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오세훈의 전투적 프레임 전략'으로 해석한다.

"오세훈에겐 이슈의 정당성 문제를 떠나 정치 전략·전술적 측면에서도 나름의 노림수가 있다. 대권에 대한 야심이다. 그 야심을 위해선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확고한 브랜드를 갖기 위해 확실하게 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중략)…민주당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오세훈표 프레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무리를 하는 것도 불사해야 하리라. 오세훈은 그 목적을 위해 박근혜에게 딴죽을 걸고 이명박도 넘어서고자 한다."(강준만, <강남좌파>, 363~365쪽)

그러나 이게 어디 튀어서 될 일인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강준만의 논점을 빌리면, 그는 2004년 1월 5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듯 늘 갈등만 했던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런 그는 의원직(불출마)을 버려서 2년 뒤에 시장직을 얻었다.

이제 그는 시장직을 버려서 '박근혜 이후'를 얻으려 한다. 그가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초등학생 눈에도 보이는 뻔한 수다. 그런데 대권 야심에 어두워 침침한 눈에는 다른 게 뵐 리 없는 것일까?

그는 지금 갈등을 유발하는 주민투표를 전쟁하듯 강행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이란 정치적 오명을 남기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를 승부게임으로만 간주하는 정치인에게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어리석은 국민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