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에서는 지금 축제가 한창이다. 밤마다 에든버러 캐슬에선 올해로 61회를 맞는 군악대 축제인 에든버러 타투 공연이 펼쳐지고, 에든버러 캐슬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에 이르는 구시가지 중심인 로열마일 거리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연극, 음악, 퍼포먼스 등 프린지(Fringe) 페스티벌의 축제 분위기로 온거리가 활기에 차 있다. 바로 여기 에든버러에 8월 24일 서울시향이 왔다.
서울시향은 8월 19일부터 27일까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등 유럽 4개국 도시를 순회공연중이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부문에 아시아 오케스트라로는 유일하게 초청되었다. 서울시향은 이번 유럽 순회공연에서 빈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트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로열 콘서트헤보우와는 암스테르담, 그라페테크, 브레멘 등 세 번의 페스티벌 무대를 함께 한다.
그동안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무대에는 한국 공연단체들이 종종 참가해 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세 개의 한국 공연단체가 함께 초대받는 경우는 드물다. 안은미 무용단의 "Princess Bari",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의 "The Tempest", 그리고 한국 오케스트라로선 처음으로 서울시향이 초대를 받은 것이다.
8월 24일 에든버러의 어셔홀(Usher Hall)에서 연주된 서울시향의 프로그램은 메시앙의 '잊혀진 제물(Les offrandes oubliees)', 진은숙의 생황협주곡 '슈(Xiu)',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었다. 어셔홀에서 공연하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교할 때, 서울시향의 이번 선곡은 대중적인 비창교향곡을 후반곡으로 선정하면서도, 진은숙과 메시앙의 현대음악을 전반부에 함께 배치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필할 의도가 보였다.
이번 유럽 투어의 다른 음악제에서는 라벨의 라 발스(La Valse), 드뷔시의 바다(La mer),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의 곡을 프로그램한 것에 비하여 에든버러에서는 정통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조화를 통하여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겨냥한 선곡으로 보인다.
의도는 적중하였다. 첫 번째 곡인 메시앙의 '잊혀진 제물(Les offrandes oubliees)'은 비단같은 엷은 음향이 선적으로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하다가 중반부에 강렬한 폭발과 운동성을 보여준다. 마침내는 다시 엷고 정적인 음향이 잔잔하게 종결한다.
관객들 박수세례에 두 번의 앵콜곡으로 화답
숨죽이며 듣고 있던 청중은 이내 두 번째 곡인 생황 협주곡 '슈(Xiu)'에서 생황의 미묘하고도 끌어당기는 가녀린 음향에 매료된다. 메시앙에서도 느꼈던 가녀린 음향의 긴장감 속에서 꿈틀꿈틀 생동하는 생황의 선율은 연주자 우웨이의 집중어린 모습과 연주에서 듣는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었다. 서울시향 위촉작곡가 진은숙이 지난해 아르스노바(Ars Nova) 때 동양악기인 생황을 독주악기로 하여 작곡한 '슈(Xiu)'는 이번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대될 때 진은숙의 이 곡을 프로그램에 포함한다는 조건으로 초대되었다는 후문이다.
'슈(Xiu)'는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일반적인 독주악기가 아닌 희귀악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생황을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도록 한 의도가 참신하다. 한국 전통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이 아니라 동양 전체를 아우르며 그 음빛깔이 특이한 생황을 내세워 연주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한 '전략'이 통하는 대목이다. 이번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주제가 '아시아'이고, 무용, 연극, 오페라, 미술 등 주제가 동양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미리 대비해 둔 서울시향의 해외진출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은 비극적 슬픔에 전율할 수 있고, 두텁고 애절한 음색에 처연하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연주였다. 유럽 투어 전 한 인터뷰에서 '전람회의 그림'과 '비창' 등의 정통 클래식곡 선곡에 대하여 '유명곡일수록 연주단체별로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서울시향의 특성과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라며 자신감을 표현한 정명훈 상임 예술감독의 선견지명이 통하였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앵콜을 외쳤고, 이에 무대에서는 생황연주자 우웨이가 전통음악을 앵콜곡으로 연주하였고, 또 한 번의 박수세례에 전단원이 마지막 앵콜곡인 헝가리 무곡으로 화답하며 무대를 내렸다.
이제 한국 오케스트라도 브랜드화가 필요하다. 그 출발로 서울시향은 지난해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정식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였다. 정명훈 상임지휘자의 영입과 Ars Nova의 진은숙 위촉작곡가의 체제로 국내에서는 이미 '서울시향'으로 브랜드화 된 듯 하다. 지난해 유럽투어에서의 현지 언론의 호평이 시작이었다면 올해의 투어는 확실한 자리매김임을 의심하지 않는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의 포부에서도 보듯 이번 서울시향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연은 한국 오케스트라가 세계무대에서 우리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드러내는 또 한번의 성공작이었다. 오는 28일 독일 브레멘 음악 페스티벌의 서막무대를 맡으며 유럽 투어를 마치는 서울시향이 계속해서 독특한 색채를 가지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자리에 당당히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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