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이 중 한 명이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로, '우리나라 인권변호의 새 장을 열었'던 탁월한 인권변호사로 그는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해 살다 갔다.
비록 그의 생은 43년에 불과했지만,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상에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났다. 조영래가 남긴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이다. 지인들이 조영래의 1주기를 맞아 엮어낸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희망과 좌절의 시기
이 책은 조영래의 폭넓은 관심사를 반영하듯 다양한 주제의 글로 묶여 있다. 그가 담당했던 중요 사건에 대한 변론문과 표현의 자유, 교도소 내 인권유린 등을 법리적으로 바라보는 논설, 칼럼 등 공적인 글은 물론이고 사적인 편지와 일기, 시까지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글을 통해 인권변호사 조영래, 인간 조영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은 무게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표현의 자유와 사회질서」라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표현의 자유'는 그토록 무력한 것인가? '사회질서'란 그토록 고요한 것,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 죽음에 가까운 것인가? 그같은 침묵의 '질서'가 옹호됨으로써 민주주의는 옹호되는 것인가, 아니면 파괴되는 것인가?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111p
그러나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을 꼽으라면, 그것은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격랑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5공의 폭압 아래 억눌려 있던 민심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했고,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 결과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러나 6월 항쟁은 절반의 승리였다. 양 김은 분열했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새 시대'에 대한 기대는 좌절됐다. 5공이 만들어낸 양심수들은 6공 치하에서도 그들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도 여전했다.
무엇보다도 5공청산이 실패했다. 전두환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겠다"며 백담사에서의 수도생활을 마치고 5공청문회에 나왔지만, 청문회는 오히려 그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
전두환씨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5공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숙명적'인 것이었다. 잘못된 것은 우리 국민들뿐이다. 그토록 국가발전을 위한 일념만으로 '군인의 길'도 희생하고 어려운 시대를 떠맡아 헌신한 전두환 씨의 진심도 몰라주고 온갖 '유언비어'로 모함까지 하면서 그를 1년 동안이나 백담사에서 고생을 하게 한 우리가 잘못이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무슨 더 '청산'할 것이 있다고 전직 국가원수를 국회 증언대 앞에까지 끌어내어 곤욕을 치르게 한 우리 국민들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던 것이다. 회개하여야 할 것은 우리 국민들이다. 바로 이것이 이날 청문회의 결론이었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258p
그래서 조영래는 5공청문회를 희대의 사기극이라 규정하고, 5공청산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강간당한 기분이다. 이것으로 5공청산이 종결된다고 한다면 이 나라는 법도 없고 경우도 없고 도대체 존립하여야 할 도덕적 가치가 전혀 없는 나라가 된다. 우리는 '5공청산 종결'에 결코 합의하지 않았다. '5공청산'은 종결되지 않았다. 종결되기는커녕 이제부터야말로 '국민의 손에 의한 5공청산'의 엄정한 역사적 과제가 일정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청산작업에는 '5공'만이 아니라 '6공'까지도 청산대상으로 포함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둔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259p
그러나 그는 끝내 5공청산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조영래의 글에서 좌절된 5공청산에 대한 분노보다 좌절을 읽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갑제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 중 하나는 과거 조갑제의 모습이었다. 오늘날의 조갑제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 혹은 극우주의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회사 몰래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다 해직되기도 했고, "김대중씨에게는 저 노벨상도 부족하다"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긍정하기도 했다.
특히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기자정신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사형집행 전에 오휘웅이 남긴 유언, 자신은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그 한 마디에 조갑제는 3년 동안 방대한 수사기록을 뒤지고 관계자를 만나며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무서울 정도의 집념으로 사건을 파고들어 오휘웅은 결백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무고한 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사법제도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래서 조영래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사법제도에 대한 이같은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드물게 보는 공개도전장'이라 평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의 서평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눈을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쓰인 이 절절한 기록-「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결코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259p
이 책의 4부는 조영래에게 바치는 추모의 글인데 조갑제 역시 추모의 글을 남겼다. 조영래 변호사를 친근하게 '조변'이라 부르는 그 글은 적어도 내 눈에는 진심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조변'은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는 이였다. 그는 연탄공장 주변의 진폐증환자, 스물다섯살에 정년퇴직해야 했던 여자, 분신자살한 젊은 노동자-이런 작은 이들의 문제 속에서 이 역사와 이 사회를 울리는 큰 의미를 뽑아냈다. 상처받은 권양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자상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준 이야기는 오영수의 단편소설감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영래는 억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가 바로 '법을 배운 전태일'이었다.
'조변'은 꽉찬 80년대를 살았지만 결국 못다 핀 꽃이었다. 이것이 원통하고 억울한 것이다. 그는 10년 정도를 담을 그런 그릇이 아니었다. 짧았던 43년보다 몇배나 더 오래 이어질 아쉬움, 추억담, 그리고 긴 여운을 우리 가슴속에 남기고 그는 표표히 떠났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362p
이 글에서 조영래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조갑제의 지금 모습을 생각하면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세월이란 그토록 힘이 센 것일까.
희망의 증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조영래의 빈자리가 새삼 느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가 떠나고 세상은 과연 얼마나 좋아졌는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조영래가 세상을 떠난 것이 1990년이니 벌써 그 후로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가 바랐던 5공 청산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두환은 여전히 연희동 자택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가 "국가 안보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기도 했다. 조영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들은 아직도 우리를 '강간'하고 있다.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들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건만 구시대에 맞서 싸웠던 사람 중 일부는 변절했다. 소위 뉴라이트의 지도부가 운동권 출신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사법제도에 대한 이같은 맹목적인 신앙'에 도전했던 기자 조갑제는 좌파에 대한 날선 증오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박정희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극우주의자가 됐다.
최장집의 문제적 저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과연 조영래의 시대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얼마나 좋아진 것일까.
조금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책장을 넘기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다. 조영래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미국의 인권단체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가 낙태의 자유, 동성애자들의 인권 같은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뭔가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한다.
태아의 권리-생명의 존엄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이런 반문이 가능한 문제가 되면, 선악이 선명하게 구별되는(것처럼 느껴지는) 가운데서 선을 위해 투쟁한다는 메시아적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오는 데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뭔가 맥이 빠지는 기분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그러나 어쨌든 미국 사람들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애국자'들 이상으로 진지한 것같이 보이는데, 차차 시간을 두고 내 생각을 재검토하고 새로 정리를 해보아야 할 것 같이 느껴집니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282p
조영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권에 대해 깨인 의식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도 낙태에 대한 논쟁을 들으며 '심사가 매우 착잡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낙태에 대해 토론하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만큼은 한국 사회가 발전한 것이 아닐까.
본디 세상의 진보란 그토록 더디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짧은 시각에서 보면 6월 항쟁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도 세상을 크게 바꾸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전두환을 비롯한 구시대의 인물들이 건재한 것처럼.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희망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만이 그나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조영래는 5공의 민주주의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던 5공 말기에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모두가 갑갑해하고 있지만 먼 훗날에는 이 시대를 아름답게 추억할 겁니다.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고매한 이상을 주제로 하여 나라 전체가 토론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 아닙니까?"
그의 말처럼 지나고 보면 우리도 지금을 아름다운 시기로 기억할지 모른다. 문득 책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희망 역시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만 묶어 둘 수는 없다. 우리가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희망은 희망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다. 이 길고도 두서없는 글의 마무리는 하종강의 책 제목으로 대신하고 싶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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