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에 가려져 있던 가수 임재범은 문화방송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나가수)'에 출연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은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그가 윤복희의 '여러분'을 부른 무대는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노래의 마지막 절정에 도입하는 부분에서 임재범은 객석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마치 시를 읽는 듯 읊조렸다. "내가 외로울 땐 누가 날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이라고.
임재범은 노래를 통해 자신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세워주고 응원해준 팬들에게 최고의 헌사를 바쳤고, 관객들은 그의 헌사에 모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그의 무대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 마을회장 참 딱한 사람"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이 지난 24일 저녁 경찰에 연행된 후, 두 명의 연행자와 함께 구속 수감되었다. 그를 구속하는 과정에서 정부당국은 검찰, 경찰청, 국정원, 국군기무사령부 등의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하기까지 했다.
공안이란 '공공의 안녕'의 줄임말인데, 강동균 마을회장이 공공의 안녕을 해칠 만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시 그가 한 행동이란 공사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확인하고 공사를 시행하라고 요구하며 크레인에 잠시 오른 것뿐인데 말이다.
난 오래 전부터 강동균 마을회장을 지켜봤고, 마을 주민들과 그의 친구들의 입을 통해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회장이 연행되던 날, 팔순이 가까운 마을 어르신이 나에게 "우리 마을회장 참 딱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어르신은 "마을회장의 선친이 학교 교사였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어머니 밑에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며 그의 회한 많은 삶을 전했다.
얼마 전 강정마을에 오키나와 평화 운동가들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강회장이 그들과 일본어로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이는 그가 10여 년 전 일본에서 노무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강회장은 재산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농사를 짓다가 빚이 늘자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서 노무자 생활을 했고, 손에 현금이 조금 모이니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모아 온 돈도 집안에 일이 있어서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고향에서 사는 동안에도 과수원을 임대받아 귤농사를 지었고, 아내와 함께 틈나는 대로 일용직 노동을 했다. 그러는 사이 두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여 직장을 잡았고, 가정도 안정이 되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문제가 거론되기 이전까지 얘기다.
그런데 마을이 해군기지 논란에 휩싸였다. 2007년 8월에 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유치 청원서를 제출한 윤아무개 마을회장을 해임하였다. 그러고 나자, 마을에는 후임 마을회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도 마을회장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마을 원로들이 강동균씨를 찾아가 후임 회장을 맡아 줄 것을 당부했는데, 강회장의 부인이 한사코 눈물을 흘리며 반대했다. "가진 재산도 없고, 노동을 안 하면 생활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맡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다.
그런데도 마을 주민들은 설득에 설득을 반복했고 마을이 처한 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지라 강회장이 이를 수락했다. 그리고 임시총회에서 그는 새로운 마을회장으로 선임됐다. 마을 회장이 된 후 그는 항상 해군기지 싸움의 최전선에 섰다.
아들 집을 밤새 오간 노모, "단식 당장 그만 두라"
2008년 가을, 강회장은 제주도청 앞에서 천막을 설치하고 단식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그의 노모를 처음으로 뵈었다.
"단식 당장 그만 두라."노모가 마을회장인 아들에게 다짜고짜 당장 단식을 중단하라고 설득한 이유는 아들에게 당뇨병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회장의 어머니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아들을 가리키며) 이사람 당뇨 있는 사람이니 잘 챙겨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당시 강회장의 단식이 10여 일간 지속되면서, 그가 집을 비우는 날이 길어졌다. 그러자 노모는 집에서 혼자 잠을 자는 며느리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집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시는데도, 어머니는 밤새도록 며느리 홀로 자고 있는 아들집과 당신의 집을 오가며 며느리의 안위를 살폈다. 어머니는 "해군기지 유치에 환장난 놈들이 우리 며느리에게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알아"라고 했다.
이후 해군기지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강회장은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석방되기를 수 도 없이 반복했다. 지난 24일 강회장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날, 강회장의 오랜 친구에게 이번이 몇 번째 경찰 조사인지 물었더니, "이젠 너무 많아서 세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필자는 몇 해 전 강회장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말을 했다.
"내가 마을회장을 맡기 전엔 우리 집사람과 내가 부지런히 일을 나가면 한 달 400만 원 수입이 됐거든. 우리 아이들도 다 직장에 다니고, 무슨 걱정이 있었겠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집에 40만 원도 못 갖다 주니 체면이 말이 아니야." 그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노모와 아내는 불평 없이 해군기지 투쟁에 맨 앞에서 싸운다.
'여러분' 열창 강정마을 회장, 그가 감옥에 있습니다
지난 8월 16일 새벽, 경찰이 육지부에서 들여온 경찰병력을 이용해 강정마을에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내에 나돌았다. 당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원내대표 등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마을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강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가수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그랬던 것처럼 윤복희의 '여러분'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나 지난 4년 동안 가족들이 겪은 마음고생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그는 지금 감옥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가 그를 위로해줄 것인지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