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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침대' 앞에 선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
 '나의 침대' 앞에 선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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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유리작품으로 스펙터클한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1964~) '마이 웨이(My Way)'전이 중구 태평로에 있는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11월 27일까지 선보인다. 작년 3월 파리 퐁피두센터 전시에 이어 세계 순회전으로 첫 전시다. 서울에 이어 도쿄 하라 현대미술관,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프랑스지하철 개통 100주년에 맞아 2000년에 선보인 '야행자들의 키오스크' 작품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그의 키워드는 '경이로움'

 '스스로 서 있는 커다란 매듭(The Self-Standing Knot)' 290×250×140cm Murano glass, metal 2011 ⓒ Galerie Perrotin
 '스스로 서 있는 커다란 매듭(The Self-Standing Knot)' 290×250×140cm Murano glass, metal 2011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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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경이로움'이고 그의 키워드는 '황홀경'이다.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에서 에로틱한 상상력이 넘치는 열락의 세계까지 두루 포함한다. 그래서 나비가 꽃을 찾아가듯 사랑의 덫에 빠진 연인들의 흥분과 환희로 넘친다.

그리고 유리제품의 현란함이 여지없이 빛난다. 그는 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매우 유혹적이고 이율배반적이라는 데 있다. 연약하면서 강인하고 물질적이면서 관능적이고, 차가우면서도 촉감이 있는 그런 매력 말이다. 성속(聖俗)의 경계도 넘어선다.

나는 유리예술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다

 '눈물들(Tears)' 140×500×70cm glass, water, table 2002 ⓒ Galerie Perrotin
 '눈물들(Tears)' 140×500×70cm glass, water, table 2002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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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유리예술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작가라고 말한다. 그가 모든 유리를 다루는 건 아니다. 그는 수채화로 모든 작업을 시작하고 날마다 드로잉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이 작가를 영화제작자나 시인, 시나리오작가처럼 본다. 이번 전의 부제가 '아름다운 위안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인건 바로 그런 이유이리라.

물론 위에서 보듯 그의 작품을 잠시도 유리구슬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눈물들'은 작가는 멕시코에 우연히 갔다가 본 그곳 유리공예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참으로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눈물방울이 유리방울이 되어 우리의 아픈 마음을 깨끗이 닦아준다는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이번 전 제목이 '마이 웨이'인 만큼 눈물어린 작가의 사연도 많이 녹아든 것 같다. 작가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하트, 별, 목걸이 등이 유리구슬에 들어 있다. 모래가 고열처리가 되어야 영롱한 유리가 되듯 우리네 삶도 아픔을 통해서 환희와 기쁨을 얻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에로틱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구멍 페티시

 '무제(Untitled)' 26.5×11×22cm flabbergasted Murano glass 1997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Perrotin ⓒ Jean-Michel Othoniel
 '무제(Untitled)' 26.5×11×22cm flabbergasted Murano glass 1997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Perrotin ⓒ Jean-Michel Otho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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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끌고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역시 영롱한 유리만큼 성적 메타포를 연상시키는 에로틱한 오브제들이다. 일종의 구멍 페티시로 입, 눈, 항문 등 몸에서 볼 수 있는 구멍의 아름다움을 유리제품만이 낼 수 있는 마법의 원색으로 변형했다.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이런 쾌락의 구멍이 퇴폐와 성의 문란함이 아니라 순수한 소통의 통로가 됨을 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혐오감 없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건 역시 오토니엘만의 탁월한 예술적 능력이다.

개인의 사적 공간이 공공미술이 되다

 '나의 침대(My Bed)' 290×240×190cm Murano glass, steel, aluminum, soft-furnishings felt 2002 Collection Francois Odermatt ⓒ Galerie Perrotin
 '나의 침대(My Bed)' 290×240×190cm Murano glass, steel, aluminum, soft-furnishings felt 2002 Collection Francois Odermatt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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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니엘은 작가이기 이전에 공공미술가이다. 그는 공공미술을 사람들이 최고의 사치인 예술을 돈 내지 않고 향유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나의 침대'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제 이 침대는 개인의 은밀하고 사적인 물건이 아니라 모두에게 시각적 황홀경을 주는 공공미술제가 되었다. 절대왕정 로코코 풍의 왕족이나 귀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이런 호사한 침대, 그것이 주는 럭셔리한 환영을 이제 시민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라캉의 정신분석개념 시각화

 '커다란 두개의 라캉의 매듭(The Great Double Lacan's Knot)' 210×396×186cm mirror, glass, metal 2011 ⓒ Galerie Perrotin
 '커다란 두개의 라캉의 매듭(The Great Double Lacan's Knot)' 210×396×186cm mirror, glass, metal 2011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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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토니엘은 "성관계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정신분석가 라캉의 개념 중 하나인 '보로메오 매듭'을 작품제목으로 차용한다. 이 매듭은 보로메오가문의 문장을 흉내 내어 라캉이 창안한 것으로 세 개의 고리로 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가 해체되는 구조다. 인간욕망에 깊이 잠재하고 있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의 상호의존성을 뜻한다.

추상적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어쨌든 오토니엘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한 견해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데 라캉의 정신분석이론과 깊이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지옥의 문', '라캉의 매듭' 나란히 보면 환상적

 '라캉의 매듭(Lacan's Knot)' 150×135×50cm mirror, glass. metal 2009 ⓒ Galerie Perrotin
 '라캉의 매듭(Lacan's Knot)' 150×135×50cm mirror, glass. metal 2009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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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니엘의 '라캉의 매듭'을 로댕의 '지옥의 문'과 같이 보니 더없이 환상적이다.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라고 할까. 전율이 오고 소름이 끼치면서 온몸에 감동이 전해진다. 목에 걸린 우아한 목걸이가 한 미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듯 최고급 초대형 유리구슬이 플라토 미술관의 글라스 파빌리온(glass pavilion) 천장에 걸리니 더욱 빛난다.

작가는 이런 작업에 필요한 영감과 시적 상상력과 감각적 자양분을 얻기 위해 뉴욕, 동경, 홍콩, 스페인, 멕시코, 이탈리아 등 세계여행을 많이 한단다. 이렇게 관객에게 황홀한 공감을 주고 시적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데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다.

그는 이 세상에 마법을 걸고 싶어 한다

 '매달린 연인들(The Hanging Lovers)' 80×15×15cm 1999(앞). '검은 마음 붉은 눈물(Black Heart Red Tears)' 391×432×20cm beads, Murano glass 2007 ⓒ Galerie Perrotin(Guillaume Ziccarelli)
 '매달린 연인들(The Hanging Lovers)' 80×15×15cm 1999(앞). '검은 마음 붉은 눈물(Black Heart Red Tears)' 391×432×20cm beads, Murano glass 2007 ⓒ Galerie Perrotin(Guillaume Zicca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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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 그는 이 세상에 마법을 걸고 싶어 한다. '검은 마음 붉은 눈물' 같은 작품은 삶의 고단함과 삭막함을 물리치고 경이로움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복원해 보겠다는 염원이 담긴 것 같다.

작가로 때로 '유황/고통/병약(soufre/souffrir/souffreteux)'같은 언어유희로 시적 감성을 작품에서 활용하는데 여기서는 장식과 끈의 형태와 색감으로 그만의 유희정신을 표출한다. 눈물방울이 황홀한 유리방울로 변신시키는 연금술로 보면 어떨까.

짙은 자줏빛 구슬로 행복의 일기 쓰다

 '행복의 일기(Diary of Happiness)' 206×348×33cm Murano glass, lacquered wood 2008 ⓒ Galerie Perrotin
 '행복의 일기(Diary of Happiness)' 206×348×33cm Murano glass, lacquered wood 2008 ⓒ Galerie 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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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제 작품으로 쓴 그의 행복일기를 보자.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유리작가로서 예술가로서 누구보다 행복과 불행 삶의 절망과 환희 등에 대해 예민할 것이다. 그는 희비가 엇갈리는 삶의 길목에서 매일의 심경을 흑백으로 나눠 구슬에 옮겨 표시한다.

오토니엘은 이렇게 자신의 내밀한 감정까지도 늘 작품으로 표현하며 산다. 그러기에 그를 이 세상의 행복과 불행 뛰어넘는 삶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유리구슬로 읊고 노래하는 치유하고 상상하는 시인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삼성미술관 플라토 서울시 중구 태평로 2가 150번지 www.plateau.or.kr
일반 5000원 학생 3000원 월요일 휴관 1577-7595



#장-미셸 오토니엘#플라토 미술관#JEAN-MICHEL OTHONIEL#GALERIE PERROTIN#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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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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