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14일 오후 8시 20분]서울시장 사퇴와 교육감 수사로 어지러운 정국을 타개하고 집권 하반기를 준비하고자 정부에서 야심찬 개각안을 내놨다. 개각 때만 되면 제일 만만한 카드였던 복지부 장관 자리는 이번에도 교체되었고 대상자는 놀랍게도 경제관료 출신의 영리병원 지지자다.
대체 이 정부는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의료민영화를 언제까지 추진할 생각인 걸까. 압박하는 자본의 요구가 거세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듯하다. 문제는 영리병원 허용, 건강관리서비스 등의 정책 추진과 더불어 의료계의 민영화가 계속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올해 가장 뜨거운 의료계의 이슈는 일반약의 슈퍼판매다. 그 뒤를 이어 치과계에서는 유디치과가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사안들은 일면 각 전문분야의 내부 문제로 보인다. 이익집단이 서로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쳐지며,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도 국민건강은 명분용이고 그 기저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네트워크병원, 약국외 판매 의약품 도입, 자본의 건강시장 진출 및 의료기관을 통한 판매 등을 이익집단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아도 될 것인가? 그들의 주장만이 아닌, 실제 국민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슈①] '일반약 슈퍼판매', 왜 오남용 위험성은 논의 안 하나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일반약의 슈퍼판매는 대통령의 호통 한마디에 복지부 핵심과제가 되었다. 야간 및 공휴일에 일반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해 발생한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지만 당장 '약국외 판매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냈다.
이번 약사법 개정안은 의약품 분류체계를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약국외 판매의약품 3분류로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도 의약외품이 있으나 붕대, 염색약 등은 의약품이 아니다. 지난 7월 가장 이슈였던 '박카스'를 슈퍼에서 판매하기 위해 44품목의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한 적이 있다.
일반의약품을 약국외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나 법 개정은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 의약외품으로 살짝 전환해서 판매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본격적인 약사법 개정을 통해 상당수의 일반의약품을 약국외 판매 의약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약국외 판매 의약품'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근거는 야간 및 공휴일 공백이다. 약을 약국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인당 약국수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야간 및 공휴일 공백의 문제는 주치의 제도, 공공 야간응급의료센터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부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다.
반면, 약의 오남용으로 인한 위험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약국외 판매로 인한 편익과 국민 건강에 대한 위험성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문제를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해서 풀어가는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현재 민주주의사회에서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숙의민주주의이다. 주장하는 정책에 대한 '합당성에 대한 해명책임'과 공론장(공익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충분한 논의 후 정당한 절차를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 상황은 집단이기주의로의 매도와 극단적 저항으로 인한 갈등만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있다. 많이 먹을 뿐만 아니라 약가격도 비싸다. 합리적 약가책정과 필수적 의약품의 접근성, 합리적 약복용 문화정착 등 약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료정책에 대한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를 도출하는 길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약 슈퍼판매를 관철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구조는 약분야의 핵심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반약 광고를 통한 종편 광고시장 확대, 약국 민영화 등 정부에서 줄줄이 계획하고 있는 의료민영화의 단계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슈②] 의료계를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네트워크 병원'
유디치과는 또 뭔가? 네트워크 병원은 지금 개원가의 대세다. 의료계의 네트워크는 사실 다른 분야의 프랜차이즈와 별반 큰 차이 없다. 유명 브랜드를 런칭하고 브랜드 유명세에 따른 홍보효과와 집단 광고, 공동구매 및 경영관리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 등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공동구매 및 경영관리를 통한 비용절감을 주장하고 있지만 막대한 광고비와 브랜드 가치로 고가 시장을 형성해 왔다. 여기에 유디치과는 합리적?(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틈새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치과계에서 유디치과의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 1명의 치과의사가 여러 개 치과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어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 ▲ 과잉·부실진료를 일삼는다 ▲ 무료스케일링이나 저가진료로 환자를 유인한다 등이다. 핵심은 자본이 치과의사를 고용해서 편법적, 비윤리적 경영을 강요, 과잉 부실 위험성 높은 진료를 하고 있으며 치과 의료시장을 왜곡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유디치과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상 1인 대표에 의해 조직된 최초의 수직적 네트워크 병원이라는 데 있다.
[참고] 2009년 8월 28일 현재 등록돼 있는 네트워크 병원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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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원 /365MC 비만클리닉 /CDC어린이치과병원 /DS피부과 /간사랑네트워크/고운미소치과 /고운세상피부과 /골드만비뇨기과 /김창수.수흉부외과/노블레스성형외과/ 닥터굿 재활학병원 /더성형외과 /두리이비인후과 /드림성형외과 /리젠성형외과 /리즈산부인과 네트워크/ 맨파워 비뇨기과 /메디포맨남성의원 /미애로네트워크 /블루비뇨기과 /서울수면센터/ 서울의과학연구소 /속편한내과 /수원이안과 /숨쉬는한의원 /쉬즈웰 네트워크/ 신사현미용성형센터/ 씨알센터 /씨어앤파트너안과 /아이메디안과 /아이미성형외과 /엔비클리닉 /연세사랑병원 /예본안과 /예치과 /원진성형외과 /월오한의원 이즈치과네트워크 /일맥한의원/ 잠실서울외과의원 /제이엠의원 /존스킨한의원/ 지오치과 /청담밝은세상안과/ 크리스마스의원/ 타워광명내과의원 /테마피부과 /티아라성형비만클리닉 /프렌닥터내과의원 /하나로내과/ 하나이비인후과 /하늘마음한의원 /하이키한의원 /함소아한의원/행복을 심는 치과 - 총 5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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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중소유통업에 대기업 SSM이 들어오면서 저가공세,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왜곡하고 독점을 형성한 다음에는 오히려 가격을 올리고 입점,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의료기관 네트워크 거대화는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 의료민영화의 핵심 추진정책 중 하나는 의료채권-경영관리회사(MSO)-의료기관 인수합병 종합 3종 세트이다. 현 네트워크는 형식상으로는 공동 구매 및 경영관리만을 하는 수평적 구조이다. 여기에 경영관리회사를 두고 자본을 소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바로 수직적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의료기관 인수합병과 MSO를 통해 수직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여기에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있으면 단숨에 거대 의료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이 의료채권-경영관리회사(MSO)-의료기관 인수합병 종합 3종 세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은 거대 네트워크 병의원들이고 이 네트워크들은 매우 영리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빅 4병원에 맞먹는 의료계의 거대 자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병의원들의 문제는 주로 일차의료영역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위 박스를 보면 비만, 피부, 성형, 불임 등 상업적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전문의원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원들은 빅 4병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대형병원 뿐만아니라 브랜드를 내세운 상업적 네트워크와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 살아남으려면 똑같이 투자, 마케팅, 상업적 경영을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최초로 광고를 하고 상업적 행위를 하는 기관이 성공하지만 나중에는 그 수준이 최저선이 되어 그 정도를 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구조가 정착된다. 의료계 전체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 비해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의료영역에는 진입장벽, 합리적 규제를 두는 것이다.
의료채권-경영관리회사(MSO)-의료기관 인수합병 종합 3종 세트가 법적으로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네트워크 병원이 승승장구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이 매우 상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는 영역이 너무 협소하다 보니 의료기관이 비급여진료를 자율로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고 의료기관 개설, 관리, 운영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다.
[이슈③] 담배 팔던 KT&G의 건강식품 영역 확장보움스퀘어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민영화된 KT&G 자회사인 KGC라이프엔진이 세운 브랜드이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담배와 인삼의 전매공사였다가 민영화 흐름을 맞아 전격적으로 민영화된 뒤, 담배, 부동산 등은 KT&G에서, 인삼 및 건강기능식품은 한국인삼공사에서 주로 맡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인삼공사는 얼핏 들으면 공기업같으나 이름만 이어쓰고 있을 뿐 정관장, 굿베이스, 예본, 라이프엔진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KT&G의 자회사이다. 한국인삼공사의 라이프엔진에서 다시 보움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해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담배를 전매하던 KT&G에서 건강기능식품 등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KT&G는 담배와 인삼을 같이 취급하는 회사다. 일면 생각하기에도 건강위해식품인 담배와 건강기능식품을 동시에 취급하는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건강관련 기업은 대부분 화학제품, 독약, 농약, 제약, 식품들을 동시에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 관련 회사 및 제약회사는 돈이 되는 것이면 회사 목표와는 상관없이 확장하고 있으며 현재 그 타깃은 천연물 및 천연물 유래 제품이다.
세계 전통 천연물에 대한 특허는 대부분 다국적 제약회사가 갖고 있으며 그를 통해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건강보조제, 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것이 현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홈쇼핑, 다단계, 방문판매 등 영업하는 사람들은 다 건강기능식품을 다루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고 명절이면 부모님께 홍삼 선물하는 것은 일상화된 풍경이다. 이러한 현상과 의료민영화는 또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열심히 일한 당신, 건강제품이나 사 먹어라?건강증진은 매우 중요한 국가 과제다. 건강한 사람은 경제생활을 통해 생산성을 발휘할 뿐만아니라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외국에서는 급등하는 의료비를 조정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방안으로 국가차원의 전국민 건강증진을 추진하고 있다.
건강증진을 위해서는 건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외국의 건강증진 방안의 핵심은 양극화 해소, 빈곤비율 감소, 소득보장, 보편교육, 사회적 지지와 네트워크, 다양한 사회복지정책,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 등 사회경제적 측면의 개선을 통해 건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건강에 관련된 구체적 정책으로 들어가면 포괄적 주치의 서비스, 지역 건강증진센터, 다양한 체육시설과 여가활동 보장, 다양한 공적 네트워크를 통한 절주·금연·운동·영양 관리시스템 운용 등 대부분 국가 및 지역사회의 공적 시스템을 통해 건강증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양극화와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사람들은 건강생활 유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노동자들은 새벽에 나가야 하며 투잡을 하거나 야간작업과 불규칙한 노동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학습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불합리한 주거시스템으로 출퇴근에 2~3시간씩 써야 하는 사람이 많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의 주거공간에 거주하는 비율도 매우 높다.
정신적 스트레스의 수준도 높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자살률과 OECD 국가에서 가장 낮은 삶의 질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건강증진 행위란 홈쇼핑과 주변 영업사원들이 권유하는 건강에 좋다는 제품을 사 먹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 제품을 먹고 다시 열심히!
'건강증진영역의 시장화' 뒤에는 대기업이 있다정부는 이런 건강증진영역을 민영화하겠다고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민간이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으로 건강해지려면 돈을 벌어서 건강관리서비스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건강관리서비스 회사에서는 정관장이나 보움브랜드의 제품을 전시하고 건강관리사는 친절히 그런 제품들이 어디에 좋은지를 설명하면서 의사들이 약을 처방하듯이 건강기능식품을 처방해 줄 것이다.
'그래, 삶이 팍팍하면 그렇게라도 해서 건강을 유지해야지, 병원에서 안 해주는 서비스를 돈 내고라도 받으면 낫지 않나? 빈곤층에게는 최소한의 부조를 해주면 된다'이것이 정부의 논리이다. 과연 건강증진영역이 시장화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한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비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의료비가 국가 재정의 가장 큰 압박이기 때문에 선진 각국에서는 의료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대체로 합의한 내용이 국가 차원의 건강증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고 의료비 지출이 큰 집단은 취약계층이므로 취약계층 전부를 포함한 전국민 건강증진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계산이다. 국가차원의 전국민 건강증진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채 건강증진제품이 가장 활성화되고, 광고를 제일 많이 하며, 제일 많은 건강증진제품을 복용하는 미국의 건강수준이 가장 낮으며, 의료비는 제일 많이 쓴다는 사실은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정부는 이런 건강증진 영역을 완전히 시장화하려고 하고 있고 그 뒤에는 대기업이 존재한다. 일반약을 슈퍼에서 구매하고 건강기능식품을 한의원, 의원을 입점시켜 판매하려고 하며 각종 매체를 통해 이를 광고한다. 각 TV프로그램은 어떤 식품이 몸에 좋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건강의 홍수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건강해지고 있는가?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계층은 담배,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계층의 건강수준은 매우 취약해진다. 이것이 건강불평등이 악화되어가는 방식이며 현재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의료비는 비싸지고,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줄고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쉽게 드러나지 않던 진실이 드러난다. 건강에 관련한 시장은 매우 크며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이 시장은 매력적인 블루오션이 된다. 사람들이 건강에 돈을 많이 쓰면 GDP는 올라가며 성장률은 높아진다. 정부에서는 의료산업화를 통한 선진국가 건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건강에 돈을 많이 쓴다고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사회전체의 효율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건강영역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책은 산업화, 시장화다. 외국인 환자 유치, 영리병원도입, 건강관리서비스 민영화, 건강식품시장 및 제약산업 활성화 모두 산업화에 관련된 영역이다. 산업화가 필요없지 않다. 좋은 제품과 기술이 개발되면 보건의료서비스가 개선되고 저렴해지며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의 산업화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의료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의료비는 비싸지고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줄어든다. 오히려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건강관련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현 의료계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일반약 슈퍼판매로 약사회는 대규모 집회, 단식농성 등 초강력 대정부투쟁을 벌이고 있다. 뉴스에서는 매일 유디치과와 치과협회의 다툼이 보도되고 있으며 한의계 역시 광범위한 저항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 의료계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이러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신뢰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진흙탕싸움, 밥그릇 싸움으로 인식되며 그 이유는 의료계의 지난 모습에 있다. 의료계는 약을 보다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고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더 많은 치과와 한방서비스가 보험적용으로 보다 싼 가격에 공급되는 것에 저항을 해 왔다. 포괄적인 건강증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의원은 찾기 어려우며 환자들은 병의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치료를 권고받으면 치료를 위해 권하는지, 수익을 위해 권하는지 확신을 할 수 없다.
답은 공적 차원의 포괄적·보편적 의료시스템 구축국민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는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치료견적이 과연 합리적인 것이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가족 중에 의료인 한 명 없으면 아플 때 올바른 의료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환자가 생기면 사돈의 팔촌이라도 아는 사람을 동원하고 명의를 찾아 병원을 전전한다.
그 틈을 각종 유사의료행위 및 건강기능식품이 파고든다. TV와 인터넷에서 몸에 좋다는 광고가 도배되는데 사먹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런 문제에 전문가로서 신뢰성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답은 공적 차원의 포괄적 보편적 보건의료시스템 구축에 있다. 보건의료시스템은 건강증진-예방-치료-재활-요양서비스가 포괄적,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건강증진은 보건의료시스템을 넘어 사회전체가 건강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담보되어야 한다. 전체적인 개혁이 어렵더라도 공적 시스템 하에서 제공되는 건강관리시스템이라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경제와 주거, 삶의 영역의 불건강한 환경이 심각한 수준인 한국 상황에서 포괄적인 건강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우선적 대안은 주치의 서비스다. 주치의가 건강증진, 예방, 건강관리,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경제적 여유에 따라 자유롭게 구매하는 방식이 아닌 전국민 주치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의료인이 경제적 유인에 움직이는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 의료인은 수행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인 상당수가 의료기관을 직접 경영하고, 의료기관은 대형병원, 일반 동네의원 할 것 없이 무한경쟁중이다. 여기에 슈퍼, 건강기능식품 매장, 의료기기 전시장까지 무한 경쟁에 들어오고 있다. 경쟁하면 살아남기 위해 투자, 마케팅을 해야 하며 그 비용을 대기 위해 영리적인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 간 경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형병원은 일차에서 의뢰한 중증환자의 입원, 특수진단, 집중치료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의원급에서는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진료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장성을 높여야 하며, 반대로 상업적인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의료 상업화 피해, 국민과 의료인 모두 입을 것답은 대부분 나와 있다. 그리고 이런 답들에 대해 의료인들은 거부해 왔다. 주치의 제도는 의료인의 반대로 시범사업도 해보지 못했으며 수가개편, 의료전달체계 구축 역시 작은 제도 변화에도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왔다. 하지만 이제 의료인들은 자기들만의 경쟁이 아닌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자본과 경쟁이 안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의 불·편법적 행위를 고소고발하고 의료계에만 유리하게 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100년간의 의료개혁이 의료인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어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던 미국 의료인이 오바마의 의료개혁방안에는 지지를 보냈다.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영리화된 의료시스템 하에서 의료인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우리나라의 의료계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그 해법이 의료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이 된다면 의료의 상업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 의료인 할 것 없이 모두 입게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치과계와 한의계에서 이번 사태를 의료민영화의 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국민의 지지를 업고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논리로만 사용되고 실제 의료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의료인들의 적극적인 고민과 행동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사연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