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 부수는 굉음이 강정마을을 울리고 있습니다. 강정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길에 선 채 웁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구럼비 부수는 소리, 사람들이 길에 서서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물이 거꾸로 흘러 눈에서 목으로 가슴으로 뱃속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몸의 내부로 흘러내리는 눈물의 길을 짚으며 유일한 자기 아름다움을 지녔던 구럼비를 생각합니다.
구럼비가 부서지며 소스라치는 몸부림을 생각합니다. 결국은 이기게 될 이 싸움이 끝난 다음 우리 앞에 펼쳐질 구럼비의 처참한 풍경을 생각합니다.
제주 어디에 가도 강정 정도 경관은 널렸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은 아마 바다 좀 보고, 나무 좀 보고, 사진 좀 찍고 7올레를 휙 지나갔을 게 분명합니다. 아니면 자기가 사는 곳이 어느 정도 가치 있는 곳인지 잘 모르는 제주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제주의 일상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제주 어디에 가서도 중덕해안이나 구럼비 같은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비슷한 곳도 없습니다.
중덕해안은 1.2킬로미터 한 판으로 된 용암단괴가 해안을 이루고 있습니다. 길이 1.2킬로미터, 너비 150미터 정도입니다. 그 빛깔은 제주의 여타 현무암과 달리 대부분 부드러운 회색이며, 크게 솟은 바위들은 머리에 황갈색 고깔모자 무늬를 덮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구럼비에는 열두어 명 둘러앉을만한 멍석 크기로 검회색빛 '아고라'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두 그룹이 서로의 소리에 방해받지 않게 하려는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입니다.
매끄럽게 세공된 대리석 의자로는 그 신비로움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바위 아고라를 처음 본 순간의 감동을 나눌 수 없게 된 것이 아쉽습니다.
구럼비에는 틈틈이 용천수(제주 삼다수)가 샘솟아 군데군데 옹달샘으로 혹은 널찍한 풀장으로 넉넉하게 고여 있습니다. 물이 맑은가 묻는 말에는 그저 웃겠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담그고 노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게 될 분들에게 참으로 아쉽다는 말을 다시 전할 밖에요.
대포동 주상절리도 장대하고, 소금 제조장이었다는 소금빌레도 보는 느낌이 짭짤하고, 종달리 밭담과 함께 달리는 동부 해안도 그린 듯 아름답고, 애월을 끼고 도는 서부해안도로도 애틋하지만, 구럼비는 그 어느 곳보다 제주 신화의 모태인 설문 대할망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입니다.
한라산이 선연하게 내려다보아주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앉히고 눕히고 쓰다듬어주고 씻겨주고 물마시게 해주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그곳을 보는 이들은 그 평화로움과 영성을 볼 수 없습니다.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구럼비 부서지는 소리에 우는 마음도 다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삼성과 대림이라는 건설회사가 추석연휴에도 쉬지 않고 일한다면 다음 주쯤 구럼비는 그 형체를 잃을 것입니다.
그곳에 살던 생물들. 한때 희귀생물로 귀애받던 놈들, 자기들이 멸종될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던, 절대보전지역 해제 후에도 천진하게 웃던 붉은발말똥게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채 바위 파편에 짓이겨졌을 것입니다.
새뱅이, 맹꽁이는 물길 따라 어디로 도망이라도 쳤기를 바랍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 강정. 유네스코 담당자가 등재를 취소하며 혀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들이 추석 이후에도 경찰 병력을 경비로 세운 채 일을 계속하면 부서진 중덕해안과 기름진 강정 들판은 올해가 가기 전에 시멘트로 뒤덮여 댕기머리 싹둑 잘린 채 기지촌으로 끌려간 처녀꼴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멘트 구조물이 자연 풍광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자들을 기억할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만만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입니다.
예산이 이래 마이 소요됐는데 이자 와 중단한다는 기 말이 됩니까? 그 예산은 누가 낸 돈이며 그 예산은 누구 입에 들어가는 돈입니까?
한국방송공사에서 만들어낸 시사프로 <추적60분>도 확인한 것처럼 제주해군기지는 미군을 위한 기지라는 각계 의견이 일치합니다.
미군 예산은 1원도 들어있지 않다는 해군측 발언에 고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미국은 타국 군사기지 건설에 예산을 보태지 않습니다. 다만 점유하고 사용할 뿐입니다. 점유하고 사용할 뿐 아니라 현지 국가의 뒷바라지까지 받게 됩니다. 제주로 간 에레나를 노래로 부르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을 못할 것도 없습니다.
불법적 탄압과 비민주적 절차와 그 땅과 바다 주인인 주민들의 거부와 무엇보다 강력한 외세 침공을 불러들이는 위험천만한 일을 멈추지 못하게 할 이유라는 것이 해군의 몸 불리기와 자본가의 이기심과 모리배 정치꾼들의 탐욕 외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주 도민들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염원이라는 카드 하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제주 도백이 대체 어느 만큼 경제 지원을 정부로부터 보장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일단 군사기지 건설이 그 자체로 괄목할 경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입니다.
크루즈 함 접안을 위한 민군복합항이라는 대안이 그 내용에 있어서 망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장들 또한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외지 자본이 들어와 투자된 사업에서 제주도민이 차지한 몫이라는 것이 종업원으로서의 미미한 일자리 확보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이토록 일을 서둘러서야 어떻게 그 어려운 문제에 대한 옳은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의견이 다른 전문가들과 뜻이 상충될 때 논의하고 숙고하기를 싫어하며 무조건 '종북좌파'의 의견이라고 몰아붙이면 안 됩니다. 거대 예산을 소모하는 일이며 제주의 원천적 자산인 자연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와 그 도민들을 몇 푼 경제적 이익 때문에-그도 불확실한- 군사기지 뒤에 줄을 서게 하는 일은 부자연스럽고 격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이제라도 무조건 밀어붙이고 보자는 식인 구럼비 파괴 공사를 중단하고 생산적 논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쥐고 국민이 주는 급여를 받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가들이 원천 무효인 이중 계약서, 인류 공동 유산인 자연 환경 파괴, 400여 년 혈연으로 맺어진 마을 공동체 파괴, 해군기지 건설 후 예상되는 서귀포 해역 오염, 군비 증강으로 맞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는 이웃 국가 대적 등을 모두 끌어안고도 기필코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무서운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범죄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구럼비는 부서지고 있을 것입니다. 돈 된다면 선산 뒤꼭지도 팔아먹을 놈이라는 속담은 요즘 통하지 않습니다. 돈이 된다면 부모가 사는 집 앞마당을 팔아먹어도 사흘 이상 욕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는 것보다 그냥 두는 편이 돈이 되는 선산을 팔아먹는 자는 바보라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깨부숴진 구럼비를 되찾게 되면 그 위에 강정평화기지를 세웁시다. 제주에서 가장 기름진 강정 들판에 평화 농장을 세우고 평화 감귤 밭을 가꾸고 유네스코생물권보존구역을 넘어 또 하나의 '유엔평화기지, 제주'를 건설하기를 제안합니다.
팔지 않아도 돈이 되는 선산이라면 팔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이 계획은 지금까지 기지 건설 공사를 맨몸, 빈손으로 막다가 연행되는 일로만 부각된 강정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이 이미 설계하고 추진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평화는 폐허 위에서도 빛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죽은 예수를 무릎에 얹은 자세로 피에타상이 되었습니다. 제국의 왕이 된 아들을 옆에 둔 어머니들은 그 수가 많지만 피에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주 4.3 기억 위에, 지난 5년간 제주의 환경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강정 주민들과 국민들의 염원 위에 강정은 올려 질 것입니다. 오늘 강정 사람들을 길에 선 채 울게 만드는 굉음은 골고다의 못 박는 소리와 같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대한민국 평화를 지키는 일에 쓸모가 별로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위해 더욱 마음을 합해야겠습니다. 평화로 부활하게 될 강정을 주목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강정마을 카페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