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쏟아져 나오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는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흥행에 성공해 시리즈물로 제작되는 작품도 있지만 <고스트 라이더>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간 작품도 있다.
2009년 개봉한 <왓치맨>은 국내 흥행만 놓고 보면 소리 없이 사라진 쪽이다. 그러나 <왓치맨>을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결코 별 볼 일 없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히스 레저의 명연기로 화제가 됐던 <다크나이트>와 비교하면 관객 수는 상대가 안 되지만, 그 깊이는 <다크나이트> 못지않다.
<왓치맨>이 괜찮은 영화일 수 있었던 것은 원작 만화가 걸출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만화니까 유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편견은 버리는 게 좋다. <왓치맨>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만화가 아니다. 종말로 치닫는 세상에 대한 묵시록이자 김낙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과 정의, 사회와 개인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성찰 가운데 하나'다.
전쟁과 평화 <왓치맨>의 배경은 1985년의 미국.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미국사회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주인공들은 한때 사회악에 맞서 싸우던 슈퍼히어로였지만, 이제는 은퇴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퇴한 슈퍼히어로 코미디언의 죽음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은퇴 후에도 독자적으로 슈퍼히어로 활동을 하던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의 죽음을 조사하며 거대한 음모가 배후에 있음을 직감한다. 그의 예감을 증명하듯 또 다른 슈퍼히어로 닥터 맨해튼이 사라지면서 소련과 미국의 전쟁은 점차 현실로 다가온다. 우여곡절 끝에 로어셰크와 그의 동료는 음모의 배후가 한때 자신들의 동료였던 에이드리언임을 알게 된다.
왜 이런 짓을 저질렀냐고 묻는 그들에게 에이드리언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대로라면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고,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야만 막을 수 있는 공동의 적을 만들었다는 것. 코미디언의 죽음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인다.
로어셰크와 동료는 에이드리언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만든 괴물이 뉴욕의 반을 날리고 미국과 소련이 이에 맞서기 위해 모든 적대행위를 멈추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혼란에 빠진다. 거짓 평화라 해도 이 평화를 깨뜨리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게 옳은 일인가? 고민하던 그들은 침묵하기로 결심하지만, 로어셰크는 단호히 타협을 거부한다.
"아뇨. 아마겟돈이 오더라도 안 돼요. 절대 타협할 수 없습니다."결국 에이드리언이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기도 했던 닥터 맨해튼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로어셰크를 죽이고, 세상은 평온을 유지한다. 그러나 <왓치맨>의 결말은 이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게 아니라는 여운을 남긴다.
에이드리언은 닥터 맨해튼에게 끝에는 모든 것이 잘 됐으니 자신이 옳았던 것 아니냐고 묻고, 닥터 맨해튼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한다.
"'끝에는'이라고요?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에이드리언. 아무것도, 절대 끝나지 않아요."<왓치맨>은 한 신문사 직원이 자료뭉치를 향해 손을 뻗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그 자료뭉치 속에는 모든 것이 기록된 로어셰크의 일기장도 있다.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암시인 셈이다. <왓치맨>은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끝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왓치맨>은 상당히 복잡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과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구 'Who watches the Watchmen(누가 감시자를 감시할 것인가)?'에 주목하면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도 있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슈퍼히어로에 대한 조롱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로어셰크와 동료의 처지에서 바라본다면 진실과 거짓에 대한 통찰로도 읽을 수 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방법이야 어찌됐든 평화가 찾아왔다. 이 상황에서 거짓된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선택하고 참혹한 전쟁을 맞이할 것인가. "알았어. 나도 끼워 줘.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한다는 쪽에."라고 말하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은 실망스럽지만, 저 자리에 내가 서 있어도 별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실은 언제나 우리를 구원하는가? 진실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다면 그때도 진실을 선택해야 하는가? 진실이라는 게 그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거짓이 정말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시체 위에 쌓아올린 평화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닥터 맨해튼의 말처럼 끝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이제까지 저지른 거짓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 진실을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은 없다. 그래서 <왓치맨>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진실이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줄 때, 우리는 고통스러운 진실과 평온한 거짓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읽으면 너무 무거워서 부담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왓치맨>의 미덕은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로어셰크의 매력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쟁쟁한 슈퍼히어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그의 일기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다. 인생을 살았고, 타협하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불평 없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로어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