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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고 조사관으로 손꼽히던 강모 직원의 '계약해지'에 항의해, 인권위 직원 80여 명이 1인 시위, 언론 기고, 자유게시판 게시, 탄원서 제출 등을 진행했다. 인권위는 이 중 11명에 대해 9월 2일 자로 정직 및 감봉 1~3개월 등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앞장서 보호해야 할 인권위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징계자들은 공무원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의 '정직한 일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나는 지난주부터 '백수'다. 백수는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백수도 그리 한가하지 않다는 걸 실감하며 산다. 노는 데도 계획이 필요하고 제대로 놀자면 여유와 긴장을 적절히 섞어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문자로 "어이, 요즘 어떻게 살아?"라고 묻는 지인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 또한 징계를 계기로 그들의 근황을 알았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아침 일찍 시차를 두고 두 아이를 깨운다. 큰 아이 먼저 밥을 먹인 뒤 자전거로 학교 앞까지 태워다 준다. 동네 아주머니들 틈 사이로 백수 아빠를 끌고 가는 큰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까지 차로 데려간다. 차안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졸음이 덜 깬 아이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일곱 살 아들은 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아빠의 개그 실력을 실시간으로 평가한다. 대체로 "시시해" 아니면 "그만해" 수준이다.

 

나는 2005년부터 안양에서 공동육아를 했는데 아이는 올해가 졸업반이다. 공동육아는 아빠와 엄마(아마)가 동네 아이들의 육아에 집단적으로 개입하는 '아날로그적 반항'이다. 공동육아 조합원들은 스스로 시간을 빼앗기고 막노동을 자청하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조기교육 광풍시대의 화두인 경쟁과 효율의 눈으로 보면 사교육과 담쌓고 살아가는 공동육아는 일종의 '미친' 짓이다.

 

공동육아는 주말도 쉬어가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 해도 몇 주째 행사와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모른 척 피해간다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고 애쓴다. 공동육아 조합원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반나절 만에 끝낼 일도 10여 명씩 모여서 웃고 즐기는 느림의 방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아이를 키우자고 공동육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른들이 놀자고 공동육아 핑계를 대는 것인지….

 

 공동육아 때 하는 목공작업
공동육아 때 하는 목공작업 ⓒ 육성철

요즘 내 수첩엔 점심 약속이 빼곡하다. 인권활동가를 만나 최근의 동향을 듣고 시간이 나면 현장을 둘러본다. 어디를 가나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오가는 길에 '인권' 글자가 붙은 광고나 유인물이라도 보이면 열심히 읽고 메모한다. 거친 문구 속에서 가파르게 치닫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고와 갈수록 복잡해지는 갈등의 양상을 본다.

 

지인들의 호출에도 열심히 응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면 곧바로 핀잔이 돌아오는 탓이다. 가능하면 점심과 저녁 사이 짬을 내어 보자는 시간에 달려간다. 한때 뜨거운 열정을 나누었던 옛 친구들은 백수의 마음을 잘도 헤아린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빌려준 돈을 갚아주고 기운 차리라며 삼계탕도 사준다. 그런 고마운 성의를 마다할 백수가 아니다.

 

내 오랜 친구는 쇠고기를 끊어 주었다. 아무런 대가성(?)이 없기에 기분 좋게 받았다. 돌아오는 길 휴대폰에 찍힌 문자를 보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갑자기 언젠가 네가 우리 집에 짊어지고 온 쌀 두 말이 생각났다." 지금이야 전화로 주문하면 알아서 배달해 줄 일이지만 그때는 쌀을 들고 친구의 집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더 오래 전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선 저녁마다 쌀바가지가 담장을 넘어오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많다.

 

저녁시간은 아이들과 놀면서 보낸다. 놀이터에서 아는 아이들이라도 만나면 판이 더 커진다. 나는 아이들 수에 맞춰 선수도 감독도 심판도 된다.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 대개 10시가 훌쩍 넘는다. 그때쯤이면 큰 아이는 학교숙제를 아침으로 미루고, 작은 아이는 조금만 더 놀자고 떼를 쓴다. 간단치 않은 신경전이 벌어지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그리 흔치 않다.

 

가끔씩 징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한다. 누군가에는 공부의 계기가, 또 누군가에겐 휴식의 기회가 된듯하여 반갑기만 하다. 살아가면서 이런 별스런 일이 자주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아 모종의 작당을 함께 준비했다. 하여 중징계 정직 처분을 받은 4명은 지리산의 가을에 취하기로 했다. 이름 하여 '정직한' 사람들의 '정직한' 동행이다.


#인권#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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