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거론될 수 있겠지만 나는 '관심과 참여'를 제일로 꼽고 싶다. 그리고 학부모의 관심과 참여가 최대한으로 발휘된 자녀교육 방법이 '홈스쿨링'이라고 본다.
나는 미국에서 12년을 사는 동안 '평균적으로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부모보다 사립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사립학교보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가 관심과 참여 면에서 앞선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공립학교에 다니는 6학년짜리 큰딸아이는 유치원과 1학년은 매사추세츠 주에서 그리고 2학년과 3학년은 조지아 주에서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홈스쿨과 사립학교 사이를 오가는 학부모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지금도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종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스포츠 공원에 가거나 아이스링크, 수영장, 태권도장 등 이런저런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서 홈스쿨링을 한다는 사람들을 왕왕 볼 수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현재 미국 내에서 홈스쿨링으로 교육받는 학생들의 수는 전체의 2.5%에서 4% 사이로 집계되고 있다.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공교육 연령대인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의 아동은 약 5400만 명인데, 이 중 200만 명이 넘는 아동이 홈스쿨 소속이다. 약 25명 중 1명 꼴이라는 얘기다.
미국 홈스쿨정당방위협회의 마이클 스미스 회장은 "30년 전 불과 2만 명 정도였던 홈스쿨 아동이 이렇게 늘어났다"면서 "현대 홈스쿨 운동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홈스쿨링이 몇몇 열성적인 부모들의 일탈행동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에 반하는 또 하나의 교육 형태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것일까? 미국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약 36%의 아동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21%는 전통적인 학교 환경이 맞지 않아서, 17%는 전통적인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습방법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족 때문에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자녀가 재능 있는 분야에 몰두하기 위해서 홈스쿨링을 한다는 응답도 포함되어 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사회적인 성공보다 자녀와 가족 먼저하지만 자녀교육에 아무리 관심이 많아도 홈스쿨링은 선뜻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부모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자녀교육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인 종교가 문제라면, 종교단체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찾아보았다.
첫째는 일보다 자녀를, 나아가 가족을 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관이 미국 사회에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 같다. 내가 만나본 홈스쿨 가정들은 적어도 자녀가 둘, 대개 셋에서 다섯쯤 되었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거나 유보한다. 부모 중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교육을 맡으므로 아빠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매사추세츠 주의 조그만 크리스천 사립학교에서 만난 한 가정은 자녀가 셋이었는데, 6학년인 큰아이만 사립학교에 보내고, 밑으로 둘은 2학년, 3학년 과정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큰아이도 4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가르쳤다고 했다. 둘째와 셋째도 4학년까지는 홈스쿨링을 하고 사립학교에 보낼 생각이라고 했다. 학습의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시기에 집에서 1대1 교육을 시키고 제도권 교육으로 들여보내는 계획이다.
그러니까 이 가정의 경우,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부모 자신이 확실한 기초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홈스쿨링을 시도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의 엄마는 학부모 미팅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아마 자신의 전문 분야에 남아 있었어도 최고의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 정도로. 학교생활 겨우 2년차였던 6학년생 큰아들 역시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혼자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할 정도로 독립적이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들의 계획에서 공립학교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공립이나 사립이나 정부의 관할 하에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사립학교는 정부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등록금과 기부금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 확보가 큰 문제긴 하지만 대신 학교 운영이나 커리큘럼 등 모든 것이 자유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사립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들은 응당 학교에서 성경 공부 및 창조론과 크리스천 세계관에 바탕을 둔 학습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고, 학교도 당연히 이에 부응한다.
이런 자율성 때문에 교재시장에도 다양한 커리큘럼이 존재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기독교와 고전적인 교육(Classical Education) 방법에 바탕을 둔 커리큘럼들이다. 방만하지 않고 잘 짜인 고전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홈스쿨링의 전도서라 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정신(The Well-Trained Mind: A Guide to Classical education at Home)>에 잘 설명돼 있다.
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홈스쿨링 관련 엑스포나 컨벤션, 컨퍼런스 등이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다음 학년도를 준비하는 부모들에게 각종 조언을 제공하고 다양한 교재를 선보이는 자리들이다. 기술의 발달로 훌륭한 강의가 DVD로 제작되고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되어 가는 점도 홈스쿨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망이 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극찬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인터넷 강의 '칸 아카데미'는 한 사람이 제작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충실하다. 게다가 강의료도 받지 않는 무료 사이트다.
주정부마다 홈스쿨을 위한 세부 지침 마련 미국에서 홈스쿨링이 번성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 차원에서 그 터전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주정부마다 홈스쿨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주마다 세부 지침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지아 주의 경우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 학부모나 보호자는 해마다 해당 학군 교육감에게 홈스쿨의 존재를 학기 시작 30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서에는 학생의 이름과 나이, 홈스쿨의 주소, 수업 날짜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학부모나 보호자가 홈스쿨에서 자녀를 직접 가르치려면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동등 학력 이상의 튜터를 고용해야 한다.▲ 홈 스터디 프로그램은 최소한 읽기, 랭귀지 아트(language art), 수학, 사회, 그리고 과학 과목을 포함해야 한다. ▲ 한 학년도는 180일 이상이어야 하고, 최소한 하루 4시간 반 이상의 학습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자녀가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가 될 수 있다.▲ 매달 말에는 월별 출석표를 해당 학군 교육감에게 제출해야 한다. ▲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는 때로부터 최소한 3년에 1번씩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시험에 응시하고 그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해마다 시험을 봐야 한다.)▲ 각 과목별로 학습 지도자는 해마다 연간 진도와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보고서를 최소한 3년간 보존해야 한다.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쏟는 부모라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과정까지만 홈스쿨을 한 후 사립이나 공립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사례도 제법 있다. 심지어 아이와 특별한 경험을 만들기 위해 딱 한 해만 홈스쿨링을 하겠다는 가정도 있었다.
물론 학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상급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공립학교에서 나온 가정에서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홈스쿨링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립고등학교들이 마약이나 마리화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하는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슬림과 흑인들이 홈스쿨링을 하는 이유홈스쿨링을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다양성'이라는 표피 아래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8년에 <뉴욕타임스>는 무슬림 가정에서 홈스쿨링을 택하는 현상을 보도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 때쯤 홈스쿨링을 시작하는데, 취재가 진행됐던 캘리포니아 주의 한 학군에서는 파키스탄 및 남부 아시아의 무슬림 국가 출신 이민자 가정의 여학생 중 약 40%가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유분방한 미국 문화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남학생들의 경우 '테러리스트'라는 편견에서 자유롭게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을 선택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모는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 갔다가 <내가 돼지를 좋아하는 이유>라는 그림책을 교실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홈스쿨링을 결행했다. 책에는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표현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알다시피 돼지고기는 이슬람권에서 금하는 음식이다.
물론 무슬림 중에는 "그럴수록 더욱 제도권 교육에 남아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식이 그런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강해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 때문에 알게 된 한 흑인 가정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홈스쿨링을 택했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 부부였다. 이 부부는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20여 년 전 보스턴에서 살던 시절 직장 동료가 홈스쿨링을 한다고 했을 때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조지아 주로 이사를 와서 공립학교에 보냈는데, 학습 진도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사립학교에 넣었다가 공립학교로 옮겼는데, 딸아이를 영재 프로그램에 넣어주지 않자 학교에 찾아가서 따졌다.
"제가 자격요건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물어봤는데, 학교에서는 왜 빠졌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때 수학과목 하나가 최상위권이 아니라서 집에서 집중 교육을 시킨 후에 다시 물었더니, 그때도 비슷한 대답만 되풀이하는 겁니다.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를 상대로 싸우고 집에서 따로 보충교육 시키느니 차라리 홈스쿨링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그때 큰아이가 6학년, 둘째가 1학년이었다. 두 아이는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에모리대와 조지아텍에 진학했다. 셋째 아이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셋째는 10학년 때까지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모두 마치고 11학년이던 지난해에는 인근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한 뒤 올해 조지아텍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넷째는 현재 7학년, 막내는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인데, 집에서 배우는 교과는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이라고 했다.
흔히 미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다양성'을 꼽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성의 모습은 이렇듯 상처투성이다. 그나마 홈스쿨링을 시도할 수 있는 가정은 선택 받은 소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견된 성공
홈스쿨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대개 사회화 및 실생활에서 문제 해결 능력에 집중된다. 그러나 현대식 홈스쿨의 역사가 30년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런 문제들은 홈스쿨 가정들의 공동 노력으로 많은 부분 해소되고 있는 것 같다.
지역마다 홈스쿨 지원 그룹이 존재하고 코퍼레이션 형태로 공간을 확보해 부모가 직접 가르치기 힘든 과목들은 다른 부모나 외부 강사에게서 수업을 받는다. 여기에는 일반 학교들에서는 진행하기 힘든 실험이나 실습, 전문 과목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과외 활동, 즉 스포츠나 음악, 현장 견학 등도 공동으로 해결함으로써 자녀들의 사회화를 돕는다. 내가 사는 지역의 몇몇 박물관에서는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오전에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아이스링크에서도 오전에는 홈스쿨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요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홈스쿨정당방위협회가 SAT(대학 입학 자격시험) 결과를 놓고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홈스쿨링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미국 전체 학생의 상위 15%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 상위 0.1%의 영재들을 위한 단체인 데이비드슨 인스티튜트(The Davidson Institute for Talent Development)는 최고 영재들의 상당수가 홈스쿨 가정에서 나온다고 밝히면서 이들의 대학 적응력도 제도권 학생들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6~7시간쯤 되지만, 실제로 학습이 진행되고 개념을 이해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적다. 상당 부분이 단체 생활에 필요한 훈육과 교과 외의 활동으로 소모되는 것이 현실이다. 선생과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가 상대방을 알고 배우는 즐거운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홈스쿨링은 자녀의 학업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부모 자신이 교육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인 만큼 각오와 헌신도 대단하다.
물론 개중에는 실패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의 강력한 의지와 사랑 속에서 최대한의 관심과 참여로 이뤄지는 교육 현장임을 상기할 때 홈스쿨 가정의 수많은 성공 스토리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