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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돈이지만...원하는 사람에게 주니 기분 좋아


 수지 나눔장터
 수지 나눔장터
ⓒ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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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4일)는 '놀토'(학교의 노는 토요일)였다. 우리집 근처에선 매월 2, 4째 놀토에 '나눔장터'가 열린다.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어제는 장터에서 '장사' 좀 해볼까 하는 생각에 팔 물건을 챙겨들고 장터에 가 자리를 잡았다.

나랑 내 동생이 챙겨온 물건은 이제는 쓰지 않는 책, 옷, 장난감 등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나눔장터에서 한 번 팔아 본 적이 있어 파는 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장난감, 책, 옷, 싸게 팝니다!"

나는 소리치면서 동생에게도 하라고 했다. 4학년인 내 남동생은 쑥스러운지 머뭇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구경한다. 우리는 책 한 권에 100원, 옷은 500원, 장난감도 웬만한 건 100~500원, 살 때 비싸게 산 건 2000~5000원에 팔았다.

우리 '상품'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100원이란 말에 "이러면 사 가는 내가 미안한데..."라며 웃었다. 가격이 싸서인지 우리 물건은 금방 동이 났다. 

대부분 다 팔리고 이제 자리를 정리하려 할 때쯤 어린 남매가 와 앉더니 남은 장난감을 물끄러미 본다. 남동생은 오토바이 장난감이 가지고 싶은가 보다. 누나는 계속 가자고만 한다. 이왕이면 들고 갈 물건을 줄이고 싶었던 나는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 아이는 깜짝 놀라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의 누나는 당황해 했다. 그냥 "여기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다 들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곧이어 그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오토바이와 인형을 집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팔 때도 좋았지만, 특히 이 남매에게 장난감과 인형을 줄 때 참 기분좋게 물건을 보냈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매우 싼 값에 팔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기분좋게 우리 물건을 사갔다.

<센과 치히로...>의 '강의 신'이 웃은 까닭, 이제 알겠네

 센은 오물신을 씻겨 내면서 오물신 몸에 박혀 있는 오물의 파편을 발견하고
이를 빼낸다. 그러자 엄청난 오물이 쏟아진다.
 센은 오물신을 씻겨 내면서 오물신 몸에 박혀 있는 오물의 파편을 발견하고 이를 빼낸다. 그러자 엄청난 오물이 쏟아진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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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보니 여기저기에 공간이 생겼다. 다 책, 옷, 장난감이 있던 곳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갖고 있던 게 얼마나 많았는지….

문득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들 '오물의 신'(실은 '강의 신'이다)이라 부르며 피하는 괴물(?)이 센이 일하는 목욕탕에 온다. 센은 이 괴물을 씻기다 몸에 박혀 있는 막대기를 잡아당기는데 그 순간 오물의 신 몸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가 다 쏟아진다. 그 신은 몸이 가벼워지자 아주 편안하게 웃고는 날아가 버린다.

 오물을 쏟아내고 나서 편안하게 웃는 '강의 신'
 오물을 쏟아내고 나서 편안하게 웃는 '강의 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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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판 것들이 '오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난 그냥 내겐 불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줘서(적은 돈이나마 받았지만) '강의 신'처럼 홀가분했을 뿐이다. 이번 장터에서 정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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