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경선도 유의미한 후보단일화 이벤트도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한나라당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이벤트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이상하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출격'을 요구하는데, 박 전 대표는 주춤거리고 있다.
<중앙일보>는 29일자 1면에 익명의 '복수의 박근혜계 핵심관계자'를 인용해 "박근혜, 나경원 서울시장 선거 돕는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톤은 다소 낮았지만 <동아일보>도 "친박 '박근혜 지원 공식표명만 남아'"라고 보도했다.
전날 <연합뉴스>보도에 이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중앙>이 1면에 배치하고, <동아>가 "한나라당은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복지 당론' 발표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무게감이 커졌다(박 전 대표는 자신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원의사를 묻는 질문에 "당이 복지당론부터 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조선> "서울시장 선거가 대세론의 목숨 결정한다", 박근혜 압박
<조선일보>는 "서울시장 선거가 대세론(大勢論)의 목숨 결정한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박 전 대표 진영은 한번 흔들려버린 대세론에 마냥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와 다음 총선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어 대세론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다시 쌓아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썼다. 사실상 선거지원에 나서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쪽의 반응은 이와는 거리가 컸다. 한 친박 핵심의원은 "현재까지 우리쪽은 이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게 선거에도 바람직하지 않고, 박 전 대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공통의 생각"이라며 "<중앙일보> 등이 자기들이 원하는 걸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 사설은 박 전 대표가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그냥 안 두겠다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박 전 대표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했는데 '선거 지원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 본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언론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친박 쪽에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전직 당대표가 전면에 서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친박쪽 "자기들이 원하는 걸 쓴 것 같다"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출격을 위한 발판을 닦고 있다. 나경원 후보는 조만간 박 전 대표를 찾아가겠다고 했고, "여성 서울시장은 여성 대통령의 길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자신의 당선이 여성대통령 탄생의 방해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 강조한 셈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당론' 발표 시기를 예정했던 7일보다 앞당기는 것을 검토하는 것도 후보등록일인 6일 이전에 '박근혜 출격'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친박 핵심중 핵심인 유승민 최고위원이 "(친박계의) '나경원 비토론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한 것이나 28일 최고위원회에서 "복지정책을 중요한 부분만이라도 앞당겨서 보고해달라"고 정책위에 요청한 것도 미리 길을 열어 두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서울에서는 약한 편이다.
<연합뉴스>와 한국정치조사협회가 지난 20∼22일 사흘간 서울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대 범야권 안철수 단일후보'를 가정해 유선전화 면접, 휴대전화 면접, 유선전화 IVR(자동응답조사), 휴대전화 IVR, 온라인 등 5개 방식으로 샘플 규모를 달리해 진행한 여론조사결과 안 원장이 모두 우위였다. 그 이전 여론조사에서도 대체적으로 박 전 대표는 대구경북, 부산경남, 충청, 강원 등에서 강세였고 수도권에서는 그보다는 약했다.
나경원 후보의 승산도이 높은 편이 아니다. 애초 이번 보궐선거가 한나라당(오세훈 사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이명박 정권의 인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임기말 정권심판형 선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권후보가 두 명임에도 나 후보는 박원순 후보에 뒤쳐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뛰어들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까지 뛰어들 경우 이번 선거는 완벽한 대선 전초전이 된다. 안 교수는 현재까지는 외면하고 있지만, 선거가 초접전으로 갈 경우 "한나라당은 응징당해야 한다"고 했던 그가 계속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싸움에서 패배할 경우 박 전 대표의 대선행에는 치명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주제 상정한 '복지'와도 맞지 않는 판...패배 때는 대선가도에 치명타
박 전 대표가 복지문제를 대선의 핵심주제로 삼으려는데 비해 이번 선거가 무상급식문제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그로서는 마땅치 않은 면이 크다. 그는 8월 24일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전에도 선을 그었고 주민투표 무산 뒤에도 "너무 과도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시장직까지 걸 사안은 아니었다"고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정작 나 후보는 주민투표를 적극 지지했고, 오세훈 전 시장을 '계백장군'으로 비유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결국 박 전 대표가 선거무대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방관했다가 당내에서는 "해도 너무한다", 보수세력에게는 "우리 편이 맞느냐"는 말까지 들었고, 최소 30%대이던 대선주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나경원 후보나 야권단일후보,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에 비해 박 전 대표에게 더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독배'가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그가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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