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서울시장' 카드를 추진했던 일부 보수단체들이 28일 국회에서 '자유민주적 가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나라당과 '끝장토론'을 했지만, 별 성과는 얻지 못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석연 서울시장 카드'가 무산된 상황에서 이들이 다른 대체 인물을 찾는 노력을 하지 못하게 하는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또 보수단체인사들은 "노타이 전투태세로 싸우러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치인들은 역시 노련했다.
토론회 중간에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들어오자,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주도했던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김정수 사무총장이 나 후보에게 "지금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복지논쟁을 피해가려고 하는 것 같다"며 "사실상 공개 상황에서 투표한 서울시민 216만 명의 뜻에 어긋나서 선거에 이기겠느냐"고 물었다. 한나라당이 10.26 서울시장 보선을 무상급식 주민투표 2라운드로 만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김 총장은 "오세훈 시장이 계백 장군처럼 혼자 싸우다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나 후보) 발언에 굉장히 감동했었다"고 호의를 보인 뒤 한 질문이었으나, 나 후보는 "주민투표에 대한 제 소신은 변함이 없으나 시장이 됐을 때는 현실론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투표율 25.7%의 의미는 잘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주민투표가 무산된 상황을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인사말을 끝내고 나가려던 홍준표 대표를 이제교 시대정신 상임이사와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이 붙잡았다. 홍 대표의 개성공단 방문에 대한 이의제기였다.
홍준표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마지막 끈"
최 사무총장은 홍 대표에게 "고 박왕자씨 총살만행에 이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준전시에 버금가는 도발이 있었고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의 남북교류는 무의미하다고 선언했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가 대북원칙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홍 대표는 이에 대해 "아무리 남북관계가 경색돼도 개성공단은 남북한이 마지막으로 잡고 있는 끈"이라며 "이번 개성방문은 123개 우리 입주업체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방문이므로, 국민행동본부에서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남북간 대치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건 국민전체로 봐서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국민전체가 남북관계 안정을 바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보수적 가치를 지키면서 대응하겠다, 원칙허물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인사들은 한나라당의 이른바 '친서민'정책도 문제삼았다. 이갑산 시민단체상임네트워크 상임대표는 "한나라당은 무상시리즈의 빗장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했고, 이제교 상임이사도 "감세는 2005, 2006년에 우리가 투쟁해서 얻어낸 것인데, 왜 법까지 만들어서 이것을 철회하는 것이냐"며 "이건 단순히 세금이 아니라 정체성 문제다. 한나라당은 감세와 작은 정부를 내세워 집권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헌조 선진통일연합 공동대표는 "항간에 홍준표 대표가 한나라당의 마지막 대표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면서 "한나라당이 보수가치를 지키는 정당으로서는 끝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서민 중산층 정책을 쓴다고 하는데, 국고를 약탈할 수밖에 없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며 "지도자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면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한나라당은 민주당 따라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이 많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정책사령탑인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정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시대는 한나라당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그 요구를 수용해 사회 통합과 조화를 추구해가는 차원에서 친서민 통합정책을 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사실상의 반박이었다.
이주영 "시대는 한나라당에 변화 요구"
이 의장은 "등록금 부담완화 정책이나 비정규직 정책들은 민주당만 추구해오던 게 아니라 한나라당도 이전부터 해오던 정책들"이라며 "민주당 따라 하기가 아니라 우리가 이슈를 선점해 가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민본 21 간사' 김성태 의원도 "영국 보수당이 300년 넘게 강력한 정당으로 존속해온 것은 그 유연성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이 중산층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미 중산층이 붕괴됐다. 한나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못한 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국에서는 워런 버핏이 부자 감세를 반대하고 나섰는데 한국에서도 부자들이 그런 식으로 나와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유연하게 가려는 것을 인정해달라"고 말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앞서 인사말에서 "한나라당은 특별히 힘들어하는 중산층 보호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집권당임을 감안해달라"고 말했었다.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은 토론회에서 "6.15공동선언이 우리 사회 이념혼란의 만악의 근원이라고 본다"며 "이 자리에 있는 의원 개별적으로 6.15선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 이헌 시변(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대표는 "이석연 변호사를 통해 한나라당에 얘기하려고 했던 문제의식을, 궁여지책의 하나로 오늘 공개토론을 통해 마무리를 지었다"고 이 토론회의 성격을 설명했다. 나경원 후보를 지지하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우파적 상징성 가진 분을 시민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 후보에 대한 논의는 이미 그때 배제됐다"며 "이제 그 부분은 각자 알아서 판단할 몫"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대한 이석연 변호사와 핵심주제인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랐고, 이 변호사는 서울시장 불출마를 조직적 상의없이 혼자 결정했다. 이들 스스로 이처럼 극심한 아마추어리즘을 노출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을 몰아붙이기는 어려운 토론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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