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강원도당은 오늘부로 야권연대 파기와 공동지방정부 파기를 공식 선언한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강원도 8개 전 지역구에서 민주당과의 어떠한 후보 양보도, 단일화도 없음을 밝힌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강원도당이 5일 오전 밝힌 강원도 공동지방정부 파기 선언문의 서두다. 10.26 인제선거 재선거 공식 후보 등록을 코앞에 두고 닥친 파국이다. 박승흡 전 민노당 최고위원은 이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파기 선언과 함께 10.26 인제군수 재선거에 공식출마했다. 민주당은 현재 최상기 전 인제부군수를 후보로 확정지은 상태다.
민주당 박영선·민노당 최규엽·시민사회 박원순 후보가 지난 3일 '아름다운 경선'을 거쳐 '범야권 단일후보'를 만들어낸 것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후보단일화 협상 전부터 누적돼 왔던 서로에 대한 불신이 10.26 재보선을 앞두고 폭발한 셈이다. '공동지방정부 파기'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나온 이상, 내년 총·대선에서 연대·연합해야 할 야권이 깊은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크다.
[민노당] "정치적 신의 무참히 짓밟는 민주당, 더 이상 연대·연합 없다"
민노당 강원도당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이 야권연대의 신의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당시 구두로 약속했던 '인제군수 재선거 민노당 우선 배려' 방침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는 주장이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민노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 이어,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민노당의 후보로 받아들이고 전력을 다해 당선을 도왔다, 장래의 약속을 받아들임으로써 국민의 여망 앞에 몸을 낮췄다"며 이를 시사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은 이 약속에 대해 무시와 무책임으로 일관했다"며 "민주당 중앙당도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배연길 강원도당 위원장의 발언은 보다 거칠었다. 배 위원장은 "정치적 신의를 무참히 짓밟는 세력과의 더 이상의 연대연합은 없다"며 "민노당은 굴욕과 정치적 수모를 감내할 만큼 허약하지 않으며, 연대연합을 구걸할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인사 한두 명 등용한 것을 공동지방정부의 모든 것으로 치부하는 민주당의 저열한 정치의식 등은 연이은 민주당 도정에 대한 실망을 분노로 바뀌게 했다"며 공동지방정부 파기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고 밝혔다.
박승흡 후보의 공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성현 전 민노당 부대변인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부터 상당히 삐거덕거리던 양 당의 관계가 10.26 인제군수 재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완전히 어긋나버렸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은 4.27 재보선 당시 향후 강원도 내 재보선이 열릴 경우 민노당 후보를 우선 배려하기로 구두 약속했다. 이 약속에 의거해 '순천식 무공천'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박승흡 후보가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조사 20% 국민참여경선 30% TV토론 후 배심원 평가 50%'의 방식으로 경선을 치러 단일후보를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부 전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에 인제군수 재선거를 헌납할 수 없어서 내놓은 양보안이었지만 이 역시 민주당은 거부했다"며 "(후보 등록일에 쫓겨서) 재개된 협상과정에서 민주당은 이 대신 100% 여론조사 방안을 경선안으로 제출했고 여기서 수정 제안들이 오갔지만 민주당은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룰을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의 협상태도를 볼 때, 정권교체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앞으로 다른 정당이 어떻게 민주당을 믿을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견해차 조율 과정인데 공동지방정부까지 파기? 공당 자세 아냐"
그러나 민주당은 "민노당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강원도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10.26 인제군수 후보 단일화는 10월 5일부로 최종 결렬됐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민노당 측과 단일화 협상을 진행했던 김석현 민주당 강원도당 정책국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중앙당 등에 확인해본 결과 4.27 재보궐 선거 당시 민노당 후보를 우선 배려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상적인 후보 절차 과정을 밟아야 하는 만큼 순천식 무공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정책국장은 무엇보다 민노당이 제안했던 '여론조사 20% 국민참여경선 30% TV토론 후 경선 방식 배심원평가 50%'방식의 경선은 실현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및 배심원평가를 위해 표본을 추출하는데 한 샘플 당 5만 원 상당의 예산이 요구됐고, 인구 3만 명의 소도시에서 국민참여경선을 진행하는 것은 현실상 무리였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민노당이 마지막으로 제시했던 TV토론 후 배심원 평가 100% 단일화 방안도 공중파 방송과 지역방송 모두가 (TV토론을) 고사해 실현시킬 수 없었다"며 "신문지상중계·인터넷 토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 역시 60대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인제군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정책국장은 이어 "민노당 강원도당의 정론관 기자회견을 보고 사실 화가 많이 났다"며 "과연 서로의 견해차를 조율하는 과정의 일을 갖고 공동지방정부를 파기하고 내년 총선 야권연대는 없다고 선언하는 게 맞냐, 공당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 입장을 밝히는 보도자료를 이미 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며 "다만, 공동지방정부나 총·대선 야권연대 문제는 이성적으로 다시 판단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의원 재선거도 시끌시끌... "국민 관점에서 대승적 판단해야"
이 같은 상황은 강원도 인제군수 재선거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부산·울산 등 한나라당의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는 순조롭게 단일화를 합의했지만 그 외의 수도권 지역에서는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양시모 민주당 후보와 이상희 민노당 후보가 출마한 서울 노원(라) 구의원 재선거 상황이 대표적 예다. 양시모 후보는 지난 9월 이상희 후보로의 양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상태다. 민노당 서울시당은 지난 2일 논평을 내고 "양 후보의 사퇴 번복은 민주당 서울시당의 '출당 압력'이 있었다"며 "민주당은 노원구 야권단일화 약속을 파탄 내는 협잡정치를 중단하라"고 논평까지 낸 바 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서울시당에 노원(라) 구의원 재선거 '무공천' 방침을 정해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서울시당 측은 지도부가 서울시당과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입장을 통보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성순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얘기만 듣고 공문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정말 그런 결정을 지도부가 내렸다면 공당으로서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내일(6일)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6.2 지방선거·4.27 재보선 등 야권연대를 추동해온 시민사회 단체들은 삐걱대기 시작하는 야권연대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0.26 재보선 야권연대 협상이 중앙 차원이 아닌 지역별로 진행되면서 전국적인 야권연대가 실현되기 어렵게 된 구조적 측면이 있다"며 "후보 등록일이 임박한 지금 (야권연대가) 어렵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 "민주당이 4.27 강원도지사 선거 당시, 다음 선거에서 민노당 후보를 우선 배려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한 것은 사실이다"며 민주당의 대승적 양보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백승헌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와 관련, "강원도지사 선거 당시 '포괄적 연대' 방침은 확인했지만 민주당·민노당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며 "사실 관계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정당·정치세력이 대승적 관점에서 국민의 요구가 어디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며 "지역적 특성·현실적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겠지만 각 지역에서도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연합의 정신을 추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