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족에 대하여 말하기를 대한 공신의 후예라 하며, 국은(國恩)과 세덕(勢德)이 이 시대의 으뜸이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는 나라와 더불어 안락과 근심을 같이 할 위치에 있다. 지금 한일합병의 괴변으로 인하여 한반도의 산하가 왜적의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 형제가 당당한 호족의 명문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는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 이제 우리 형제는 당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고 처자노유(妻子老幼)를 인솔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차라리 중국인이 되는 것이 좋겠다 한다. 또 나는 동지들과 상의하여 근역(槿域)에서 하던 모든 활동을 만주로 옮겨 실천하려 한다. 만일 뒷날에 행운이 있어 왜적을 부숴 멸망시키고 조국을 다시 찾으면, 이것이 대한 민족된 신분이요 또 왜적과 혈투하시던 백사공(白沙公,이항복)의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형님 아우님들은 나의 뜻을 따라 주기를 바라노라.- <이회영 평전>에서1910년 8월 29일은 조선이 일본의 강압으로 나라의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이다. 같은 해 3월에 귀국하여 교육운동에 주력하는 한편 국외에 독립군 기지 마련을 모색하던 이회영은 경술국치에 망명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형제들에게 이와 같은 비장한 발언을 한다.
당시 만석꾼 지기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이회영의 형제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자는 넷째인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하여 전 재산을 처분해 1910년 12월 하순 6형제 일족 60여 명은 망명길에 오른다.
이회영 일가가 선친 대대로 물려온 전 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돈은 약 40만 원. 당시 쌀 한 섬 가격이 3원 정도, 현재의 쌀 가격으로 환산하면 6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일본군에게 쫓기는 조선인(독립투사)이 있으면 나로 여기고 강을 건너 주시오"당시 두만강 어귀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 이회영은 사공에게 두 배가 넘는 후한 뱃삯을 쳐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가가 정착한 곳은 중국 길림성. 이회영 일가는 그곳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열어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는다. 신흥강습소는 수많은 무장독립투쟁가들을 배출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신흥무관학교 그 전신이다.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수많은 무장투쟁과 항거 등은 모두 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가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런데, 신흥무관학교의 모든 학비는 무료였고 수많은 전투자금도 이회영 일가의 돈으로 충당했다.
그런지라 전 재산을 처분한 막대한 돈은 금세 바닥났다. 이에 이회영은 학교 운영을 형제들에게 맡기고 자금을 마련하고자 비밀리에 국내에 잠입한다. 와중에 고종의 망명을 도모하지만 고종의 급작스런 사망(1918년)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중국에 돌아온 이회영 일가는 빈민가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끼니를 잇지 못하기 일쑤, 허기져서 누워 있어야 할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옷을 팔아 간신히 연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회영 일가는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는다. 1932년, 무장투쟁의 범위를 넓히고 만주 일본군 사령관 암살 공작을 펼치고자 대련으로 이동하다가 그를 알아본 사람의 지목으로 일본 경찰에게 잡히기 순간까지.
세간에서는 우당 가문을 '삼한갑족'이라 불렀다. 이는 "옛적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을 일컫는다. 이들도 남들처럼 일제에 충성했으면 대대손손 부귀영화가 따랐을 것이다. 대학을 세우거나 기업을 만들고 신문사를 창립하여 '밤의 대통령' 노릇도 하며 귀족으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회영 일가는 달랐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일제와 가열차게 싸웠다. 이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독립군양성소가 되고, 졸업생 3500명은 항일투쟁에 선봉대 역할을 하였다. (중략)역사가 무엇인지를 묻지 말고,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 사학자 케이스 젠킨스의 주장대로 역사는 물론 국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지도층의 의식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회영은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의 생애는 살아있는 교과서요 '지나간 미래상'이다. - <이회영 평전> '저자의 말'에서 우당 이회영의 삶은, 그와 그 일가의 우리 독립역사 역할과 가치, 희생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눈앞에 보이는 쉬운 길인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이회영의 삶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최초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노무현 평전'을 연재하고 있는 김삼웅씨. <이회영 평전> 또한 같은 제목으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연재했었다.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인 "평전은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저자는 삼한갑족의 '노블레스'로 오블리주를 실천한 진정한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일생을 '다큐멘터리 소설'처럼 묵직한 감동으로 들려준다.
저자 '김삼웅'은 |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필화사>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 <통일론수난사>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나> <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단재 신채호 평전> <백범 김구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안중근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장준하 평전> <죽산 조봉암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김대중 평전> <리영희 평전> <김상덕 평전> 등이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 '김삼웅의 인물열전 블로그에 '노무현 평전'을 연재하고 있다.(책속 프로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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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6부, 이회영의 삶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독립운동 전개나 상황을 비롯하여 단재 신채호, 보재 이상설, 석오 이동녕, 백야 김좌진, 청년 아나키스트 김종진 등 당시 이회영과 관계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면면까지 들려주고 있는지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그 대략을 알 수 있는데도 도움이 된다.
혹자들은 '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라는 말로 친일인사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회영과 그의 일가의 사례는 그들의 그와 같은 말이 구차하고 치졸하기 이를데 없는 변명에 불과함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의 역사가 그나마 덜 부끄러울 수 있는 것은, 이만큼이라도 가지런할 수 있는 것은 이회영 일가와 같은 사람들의 몸소 실천과 희생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6ㆍ25 남침 이래 처음인 북한군의 직접 포격을 당한 피격사건이 터졌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귀한 신분'으로 노블레스(Noblesse)라 할 대통령ㆍ국무총리ㆍ국정원장ㆍ집권당 대표, 상당수의 각료가 군미필자이고, MB정권 요직자 가운데 위장전입ㆍ부동산 투기ㆍ세금탈루ㆍ병역기피ㆍ논문표절 등 '필수과목'의 이수자들이란 보도를 보면서 '오블리제'(Oblige)의 걸맞지 않는 지배그룹에 이회영 선생과 그 일가를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일까요. 어느 사회나 고위직에 오르려면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 수반됩니다. 선진국일수록 그렇지요. 선진국과 후진국, 민주국가와 독재국가, 자본주의사회와 공산주의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지도그룹이 얼마만큼 깨끗한가, 권력과 요직이 누구에게 맡겨지고 세습되는가로 나타난다고 할 것입니다. - 저자의 블로그 <우당 이회영평전>을 시작하면서 중저자의 블로그를 통해 '이회영'의 삶을 만나기 전까지 우당 이회영은 내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 한사람일 뿐이었다. 그저 당시 남들보다 바람직한 용기를 좀 더 많이 발휘해 독립자금을 댄 갑부 정도? 이 글은 이런 이회영을 좀 더 세세하게 알고 싶게 한 계기가 되었다. 우당 이회영의 삶을 책을 통해 만나며 조금 위로 받았다고 할까? 뇌물수수, 병역미필, 투기 등 우리 사회 가진자들이 개입된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재산도 없고 비빌 권력도 없는 평범한 국민으로서 느껴야만 했던 괴리감과 배신감을 말이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인 올해, 지난 6월 10일에 출간되었다. 두루두루 의미있는 책의 출간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회영 평전>(김삼웅 씀ㅣ책보세ㅣ2011.6.10ㅣ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