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일제강점기 당시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했던 피해자들을 '기업체에 의한 모집'으로 규정해 또 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신 의원은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주의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음주방송'에 대해 우선 사과했다. 그는 곧 이어, '박원순 저격수'의 자세로 돌아가, "박원순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는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간 것이 아니라, 기업체에 모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 측이 병역 면탈을 위해 호적을 옮긴 것을 해명하기 위해 '작은 할아버지의 강제징용'을 거짓으로 주장했단 얘기였다.
앞서 박 후보 측은 양손 입적에 따른 병역 논란이 일자, "지난 1941년 박 후보의 할아버지에 대한 징용 영서가 날아와 작은 할아버지가 장남인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갔다"며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박 후보의 부모가 1969년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박 후보를 입적시켰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부산고등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제시하며 일제의 조선인 인력동원은 1939~41년엔 기업체 모집, 42~43년엔 조선총독부 알선, '영서'(영장)에 의한 징용은 44~45년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즉, 박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1941년 기업체 모집에 응한 것이지 강제징용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신 의원은 이어, "할아버지 대신 강제징용을 간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양자로 갔다는 박 후보 측의 설명은 역사적 허구에 기초한 거짓말"이라며 "결국 박 후보의 입양은 형제의 병역면탈을 노린 '반(反)사회적 호적 쪼개기'였음이 명백해졌다"고 비난했다.
"1944년 이전은 강제징용 아니다? 특별법엔 1938년부터 강제징용"그러나 신 의원의 주장은 지난 2010년 국회에서 만든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강제동원' 시기와 맞지 않다. 신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강제동원된 것으로 인정 받았던 1938년부터 1943년까지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정부로부터 위로금 및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신 의원이 박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무리하게 의혹을 제기했다는 '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지난 2004년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됐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간을 2012년 말로 연장하기 위해 제정된 이 특별법의 2조 3항에 따르면, "사할린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의 경우는 1938년 4월 1일부터 1990년 9월 30일까지의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정의에서도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 되어"라고 명시돼 있어, '강제동원'의 시기가 곧 1938년부터 해방 당시로 규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관계자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938년 4월 1일부터 해방 당시까지 다 포괄적으로 강제동원 시기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징용영서가 발부된) 1944년 이전의 강제동원은 '모집'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은 강제징용"이라며 "강제동원은 모집인지 총칼로 끌려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현장에 도착해서 사역 당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포함해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