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은 최근 역사교과서의 '민주주의'란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1970년 박정희가 유신독재체제를 세우는데 쓴 용어는 '민주주의' 대신 '한국식 민주주의'였다. 이른 바 그 '한국식 민주주의'는 박정희독재체제를 미사여구로 합리화하고자 한 표현이었지만 그 어설픈 시도로 박정희는 결국 측근 총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다. '민주주의'에는 형용사가 필요없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에 이상한 형용사를 가져다 붙이는 정권은 그래서 그 끝이 박정희처럼 비참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문제는 다르다. 강자독식과 극단적 양극화가 횡행하고 사자가 토끼를 마음대로 죽이고 유린하는 상황을 그대로 '자유롭게' 놔두자는 것이 이명박 정권이 내 세우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라면 지나칠까? 정부가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인도주의를 상실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정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을 살육하는 리바이어던(괴물)일 뿐이다. 민주주의자 함석헌(1901-1989)의 삶과 사상은 이 인간성을 상실한 거대한 괴물(정권)에 온 삶으로 대항한 저항이었고 싸움이었다.
눈여겨 볼 것은 이번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한국현대사학회가 교육과정에 '식민지 근대화론'도 포함시키자고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또 이 학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고 대한민국이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점을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아까운 현대사학회는 한국보다는 일본의 입장을 배려하는 친일파 집단이고 민족보다는 오히려 외세를 앞세우는 사대주의자로 정리가 된다. 그래서 함석헌은 일찍이 이런 친일파와 사대주의자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와 역사를 일컬어 '등뼈가 부러진 꼽추의 역사'라고 불렀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인들 중 약 1/6인 5천만 인구의 삶의 질은 동유럽인들 보다도 훨씬 열악하고 의료보험을 포함한 아무런 사회안전망도 없는 생활이 아니 생존을 하고 있다. 이런 생존의 모습은 '같이살기운동'을 온몸으로 추구한 민주주의자 함석헌의 길이 아니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했다. 함석헌의 인생에서 첫 번째 고비는 1919년 3.1 운동이다. 당시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이던 함석헌은 3.1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퇴학의 위기를 맞는다. 당시 교장은 일본인이었는데, 3.1 운동에 대한 반성문을 제출하면 복학시켜준다는 제의를 함석헌은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퇴학되었다. 이후 오산학교에 편입, 일본 유학을 마친 함석헌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투옥과 독립운동을 반복하던 함석헌은 '도둑같이 온' 해방을 맞았지만, 해방된 조국은 그가 염원하던 평화와 인권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는 비민주적 정권에 맞서 <사상계>의 논객으로 활동했고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서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수차례의 투옥과 탄압 속에서도 비폭력, 민주, 평화 운동을 전개했으며 5공화국 시절에도 민주화쟁취국민운동 본부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으며 특히 비폭력노선을 견지하여 '한국의 간디'로 불렸다. 그 결과 1979년과 1985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89년,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화된 조국에서 눈을 감았다.
함석헌은 씨알, 즉 민중의 힘을 믿고 민중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을 끝까지 견지한 사상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함석헌은 이렇게 역설한바 있다. "우리가 정치가를 생각한다면 어떤 것을 참말 위대한 정치가라 하겠나? 내 생각으로는 사회의 억눌린 계급의 민중을 살길로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상류사회를 위한 시설을 아무리 잘하고라도 하층에 짓밟히고 억눌린 민중이 있으면 국가는 위협을 느낀다. 국가의 운명은 하층민의 손에 달린 것이지 결코 상층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정자의 재능의 척도는 하층사회에 대한 시설에 있다."
그렇다. 함석헌이 갈파 했듯이 위정자(대통령)나 집권당 재능의 척도는 하층사회(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설에 있지 결코 상층민(강자나 기득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서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기득권자의 이윤에만 귀를 기울일 때 그 정권의 말로는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자 함석헌의 경고다.
민주주의 대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현 정권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유럽정부는 서민에게 대학 및 대학원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한 교육비, 의료비 등을 거의 무상으로 지원해 준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돈이 없어서 대학이나 병원에 못가는 경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함석헌이 평생을 통해 추구한 '같이살기운동'이자 민주화운동의 원형이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유럽의 서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의 서민들보다 더 많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군대의 살벌한 각개전투와도 같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나라가 지상에 더 있을까?
더욱 눈여겨 볼 것은 이번 역사교과서에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명시하기를 바라고 제시한 자들은 현 정권과 결탁한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의 선두주자들과 친일수구세력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에 유일하게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식민제국주의 부역세력(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자위대 행사에 국회의원으로 당당히 참여하는 친일세력)이 여전히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는 국가다. 민주주의자 함석헌은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엄중하게 경고한바 있다.
"사치스런 삶을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인류에게 전쟁을 초래 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윤추구가 모든 것의 동기가 되고, 이윤추구들 위해 기업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보다는 더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을 생산한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정치 및 경제적 힘의 추구는 인류에게 전쟁을 초래했다."
서민 생활에 필요한 물건보다는 기득권자와 기업에 더 이윤을 남기는 값비싼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자본주의자들은 남북관계에도 긴장을 원하고 결국 전쟁을 초래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자' 함석헌 끊임없이 경종을 울려 보냈다.
자신의 생각을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 속으로 투영시켜 각 시대의 기득권자가 아닌 소외되고 고통 받던 민중들과 함께 신음하며 고뇌하는 가운데 함석헌의 민주사상은 싹터 나왔다. 그리고 그런 신음과 고뇌가운데 함석헌이 도달한 우리민족 고난의 근본원인은 바로 한국인이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은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정신과 이상을 잃어버린 죄로 한국인은 역사를 통해 수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함석헌은 역설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당장 눈앞에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서 내일을 향한 비전이나 이상에 눈이 먼 민족은 소탐대실로 고난과 고통을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호랑이 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함석헌은 "깨어있는 씨알(민중)이라야만 산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깨어있는 씨알인가? 자아를 상실하지 않은 사람. 즉 자아를 발견한 사람이 깨어있는 씨알이다. 그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은 자아상실 문제의 심각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가지 병, 백가지 폐해의 근본원인이 된다.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 민족적 큰 이상이 없기 때문에 대동단결이 안 된다."
그래서 함석헌은 핍박과 억압, 어둠과 그늘 속에서도 불구하고 씨알은 치열하게 자아를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강자의 '자유'와 다수결원칙을 반대한 민주주의자
보통 민주주의 원칙의 하나로 다수가결을 주장하지만 함석헌은 달랐다. 그는 다수가결에 의한 민주주의조차도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래서 퀘이커교도들이 주장하는 만장일치제를 따랐다. 진정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강자의 자유나 다수결 원칙에 앞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도 다수결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그 후 나치당의 행적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사회적약자인 600만의 유태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을 가스실에서 학살했다. 이렇게 역사가 보여 주었듯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의 횡포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독재와 폭력일 뿐이다. 오늘 우리 한국정치는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유'를 주장하는 강자독식의 다수결 함정에 빠져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약 10%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90%의 오른손잡이가 모여서 다수가결로 "왼손잡이를 다 없애자"고 결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다수결에 의한 결정사항이니 이 원칙과 결정이 존중되어야 하는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의 결정은 횡포일 뿐이고 민주주의와 자유의 이름을 가장한 독재일 뿐이다. 2011 년 새해 예산안에서 사회적 약자인 영유아 필수예방 접종비와 결식아동급식비 등을 한나라당은 다수결의 이름으로 전액 삭감했다. 오른손잡이가 모여서 왼손잡이를 다수결의 이름으로 죽이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강자독식의 자유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고 국가폭력에 불과한 것이다.
1970년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함석헌의 눈과 귀는 열려 있었다. 그래서 1970년 전태일의 분신후인 1977년 8월 '방림방직 대책위' 창립, 같은 해 10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협의회'를 만들며 함석헌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생활전선에서 맨몸으로 투쟁하였다. 특별히 함석헌은 나이로 치면 손자와 같은 노동자 전태일(1948-1970)을 '온전히 하나로 이룬 사람'(全太一)으로 평가하며 '전태일 선생"이라고까지 했다. 더 나아가 '전태일이 바로 예수다' 라고 까지 불렀다. 왜? 전태일과 예수는 둘 다 사회적 약자를 마음대로 '자유롭게' 억압하는 강자에 대항해 자신이 생명을 산제사로 바친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삼성의 이건희씨 재산은 약 8조원이다. 8조원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보통사람은 전혀 감이 없다. 8조원이라는 돈은 갓 태어난 아기가 태어난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2억 원씩 100년을 써도 7조 3천 억 원 밖에 못 쓰고 죽는, 다 쓰지 못하는 돈이 8조원이다. 왜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할까? 밥도 못 먹어서 굶어죽는 장래가 촉망되던 최고은 같은 예술가도 우리 가운데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인가? 우리가 정말 상식과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지금현재 세계인구 65억 중 기아로 15억 명이 고통 받고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3초에 1명씩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반면에 세계인구의 20억 명은 비만으로 고생(?) 한다.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인도주의가 결핍된 '자유'는 불의이며 폭력이고 살상무기에 불과하다. 함석헌은 그런 국가폭력이 난무하던 불의에 시대에 사랑이란 무기로 맞서 싸운 민주주의자다.
비인간화, 승자독식, 극단적양극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같이살기운동'을 제창한 '한국의 민주주의자 함석헌'과 더불어 대한민국헌법을 음미해보며 이글을 마친다.
대한민국헌법 119조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가을호 <사람과 정책> 에 송고한 '함석헌, 한국의 민주주의자' 원고를 수정 요약 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