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본은 1939년 국민징용령을 제정했지만 한반도 등 외지에는 1943년 10월 1일부터 적용되었다."

 

'음주방송'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1일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 후보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또 부산고등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일제의 조선인 인력동원은 기업체 모집(1939년∼1941년) → 조선총독부 알선(1942년∼1943년) → 영서에 의한 징용(1944년∼1945년)의 3단계로 진행됐다는 것이 관련학계의 정설이다"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박원순 후보 할아버지는 강제징용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징용을 간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해도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극우세력 주장에 동조까지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박원순 후보 할아버지만 아니라 80대 이상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둔 자녀들 중에는 강제징용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1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징용에 끌려갔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지...조선사람은 개였다" 

 

 강제징용 당한 아버지는 부둣가에서 일하셨다. 겨울 칼바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다.
강제징용 당한 아버지는 부둣가에서 일하셨다. 겨울 칼바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다. ⓒ 김동수

아버지는 생전에 종종 일본이 독도와 종군위안부 관련 망언을 할 때면 자신이 겪은 징용 이야기를 한번씩 하셨다.

 

할아버지 살림이 대농은 아니었지만 '초근목피'로 살 만큼 궁핍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7형제 중 막내라 돈벌이를 위해 징용에 갈 리가 없었다. 누가 막내를 돈 좀 벌겠다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징용에 보내겠는가. 강제징용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만해도 '강제징용'으로 생각했지 신지호 의원처럼 '자벌적 징용'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배고픔과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가 멀어 자취생활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징용에 끌려가 껶었던 일은 너무나 충격이라 아직도 생생하다.

 

"부둣가 바람은 정말 세다. 칼바람이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되잖아요."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된다꼬? 너는 배운 사람이 그것밖에 모리나? 일본놈들이 우리 같은 조선사람한테 옷을 제대로 준다고 생각하나? 배는 얼마나 고픈지. 그래도 집에 있을 때는 밥은 안 굶었다 아이가."

"일본놈들이 때리지는 않았나요?"

"말도 말라, 사람이 아니지. 우리 조선 람은 개였다. 해방이 되고 집에 돌아왔는데 제일 기뻤던 것이 꽁보리밥에 김치를 마음껏 먹는 것였다."

"저도 군대 다녔왔어요"

"니, 그거 말이라고 하나. 우리나라 군대는 천국이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라."

"제가 말도 안 되는 비교를 했네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아버지께 했다. 아니 기업체가 징용을 모집하고, 총독부가 알선했다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개처럼 여기면 때릴 수 있는가. 스스로 간 사람들이 배고픔과 폭력 그리고 추위에 떨 수 있는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 모독한 신지호...정말 나쁘다

 

신지호 의원이 정말 나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자기 정당 후보를 위해 역사까지 왜곡하고 강제징용당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을 모독한 것이다. 신 의원 가족이나 친척 중에 징용에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물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신지호 의원 발언을 듣고 아버지와 가상대화를 나눴다.

 

"아버지 잘 계시죠. 벌써 13년이 지났네요."

"그렇게 되었구나. 웬일로 네가."
"예. 소식 자주 전하지 못해 죄송해요. 아버지 징용 다녀오셨지요?"
"징용? 징용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끌려갔다왔지."
"스스로 다녀온 것이 아니구요."

"스스로라니. 강제로 끌려갔지."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징용은 돈 벌기 위해 스스로 간 것이라고 했어요."
"그 사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완전 일본놈이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로 스스로 간 게 아니라 끌려갔다."

"그렇지요. 스스로 간 게 아니라 끌려갔지요."
"강제로 끌려간 것이지. 징용 끌려간 사람들 보고 확인해보면 다 안다. 스스로 갔다고 한 그 국회의원 정말 나쁜 사람이다."

"예, 아버지.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너도 잘 지내고."

 

아버지만 강제징용 당한 게 아니다. 신지호 의원은 이렇게 우리 아버지에게도 못된 짓을 했다. 윗집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다. 그 집 할머니는 3남 2녀를 홀로 키우셨다. 할아버지가 언제난 돌아올까 기다리던 할머니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자기 기득권을 지키고,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역사까지 왜곡하는 일은 더 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신지호 의원은 강제징용을 자발적 징용이라고 한 역사왜곡을 사과하고, 강제징용 당한 수많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앞에서도 무릎꿇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양심이다.


#신지호#강제징용#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