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산업은 분명히 위기이지만 저널리즘은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없고, 죽지 않을 것이고 죽어서도 안 됩니다."지난 9월 MBC를 정년퇴임한 신경민 앵커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남긴 글이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저널리즘은 위기이다. 현 정권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공영방송의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사장 자리에 앉은 이들은 정권에 비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PD나 기자들을 해임하거나 지방으로 보냈다. 권력은 방송을 장악했다.
그러나 언론의 위기를 외압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였던 언론인들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그런 언론인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할 책이며,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줄 책이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 두 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썼다. 저자들은 책을 11장으로 구성했으며 총 10개의 원칙을 제시한다. 또한 각 장마다 전·현직 언론인의 인터뷰와 각종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어느 한 장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제3장, 6장, 10장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3장의 제목은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에 저자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뉴스를 취재하는 사람들은 다른 회사의 고용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때로 자기 고용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본문 93쪽) 그렇다. 기자가 누구를 위해 일한다면, 자신이 다니는 언론사, 광고주, 권력이 아니라 바로 시민이어야 한다. 당연히 자사의 수신료 인상을 위해 회의를 도청하는 일은 기자가 할 짓이 아니다. 또한 자사의 이익에 해가 될 만한 사안을 고의적으로 누락시켜서도 안 된다. 실례로 종편업체로 선정된 신문사의 기사에서는 종편 관련 기사를 찾기 힘들다. 혹여 기사가 있더라도, 하나같이 종편을 홍보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행태들을 보아할 때 기자들이 시민을 위해 일한다고 볼 수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의 이익이다.
또 제6장인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라'에서는 "기자들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감시견 역할의 목적은 권력의 관리와 행사를 투명하게 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그 권력의 효과도 이해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점은 논리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어디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어디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도 알아야 함을 뜻한다. 언론이 권력기관의 성공이나 실패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권력을 감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본문 213쪽) 언론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시민들이 이 사회의 권력들을 감시, 견제하라고 준 힘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감시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기는커녕, 마치 청와대 대변인인양 청와대의 해명을 기계적으로 받아 보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정권에 부담이 될 법한 사안은 외면하거나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감시견이 짖기는커녕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언론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제시했던 원칙들 중에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칙으로 열 번째 원칙을 꼽는다.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편집국 기자에서부터 이사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자들은 반드시 개인적인 윤리 의식과 책임감, 즉 '도덕적 나침반'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10가지 원칙은 마치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말만큼이나 당연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씁쓸함만이 느껴진다. 따지고 보자면 외압 못지않게 언론인들 스스로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자초한 셈인 것이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빌 코바치 씀, 이재경 옮김, 한국언론재단 펴냄, 2009년 9월,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