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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의 비극> 겉표지
겉표지 ⓒ 손안의책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전추리소설의 대가인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읽어보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 X의 비극 >에서 시작해서 < Y의 비극 > < Z의 비극 >을 거쳐 <최후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은 곳곳에 깔려있는 복선과 논리적인 추리 그리고 의외의 범인 등 잘 만든 추리소설이 갖추어야할 요소들을 두루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고전의 대열에 올라있다.

나쓰키 시즈코는 이 비극 시리즈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시즈코의 1982년 작품 < W의 비극 >은 제목부터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작가는 '엘러리 퀸에게 바친다'라는 헌정사를 책 안쪽 표지에 써놓았다. 이쯤되면 대부분의 독자들이 '비극 시리즈를 의식한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어찌보면 이것은 일종의 모험일 수 있다. 제목을 보고 많은 독자들은 당연히 엘러리 퀸을 떠올릴 테고, 읽으면서는 퀸의 작품과 비교할 것이다. 작가는 퀸의 시리즈와 견주더라도 전혀 뒤질 것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을까.

후지산 부근 산장에 모인 사람들

< W의 비극 >에서 'W'는 작품에 등장하는 와쓰지(Watsuji) 가문의 머릿글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와쓰지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와쓰지 가문의 수장인 와쓰지 요헤는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제약회사 와쓰지 약품의 회장이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60을 넘긴 나이에도 자식이 없다.

와쓰지 가문의 일족들이 새해를 맞아서 후지산 근처에 있는 가문의 산장으로 모인다. 요헤 부부와 요헤의 남동생, 요헤의 조카딸 가족 등 전부 7명이 산장에 도착한다. 이 가족 모임에 두 명의 이방인도 참석한다. 요헤의 주치의 쇼헤이, 요헤의 조카 손녀 마코의 개인교사 하루미가 그들이다.

대가족이 모이는 산장이니 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모두 첫날 저녁 식사 후에 도쿄로 돌아간다. 이제 산장에는 가족과 이방인 9명이 모여있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비극이 발생할 만한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예상대로 첫날 저녁에 살인사건이 터진다. 저녁 식사 후의 차시간에 가문의 수장인 요헤가 자신의 침실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한다. 범인은 사건 직후에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고, 사람들은 모두 힘을 합쳐서 이 사건을 은폐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 요헤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살인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살인사건의 공범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건을 외부인에 의한 강도살인으로 꾸며야 한다. 이들은 치밀한 논의 끝에 현장을 조작하고 이튿날 아침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산장에 도착한 형사는 의심스러운 정황증거를 계속해서 발견하게 된다.

조금씩 무너져가는 범인의 방어벽

한 등장인물은 'W'를 가리켜서 '제 4의 미지수'라고 표현한다. 방정식 등을 세울 때 미지수가 XYZ만으로 부족하다면 그때 끌어오는 알파벳이 W라는 것이다. 미지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수사가 진행 될수록 용의자도 늘어난다. 작가 나쓰키 시즈코는 엘러리 퀸처럼 여러 등장인물에게 나름대로의 살인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굳이 '비극'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더라도, 모든 살인사건은 비극일 가능성이 많다. 살인을 기점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운명이 바뀔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영향을 받는다.
살인자의 가족은 주위의 비난을 피할 수 없고 피해자의 가족도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수사를 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의 치부가 드러난다면 설상가상이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는 진실을 감추는 쪽이 여러가지로 편하다. 거기에 '가문의 명예'라는 허울좋은 구실도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노력,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비극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나쓰키 시즈코 지음 / 추지나 옮김. 손안의책 펴냄.



W의 비극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손안의책(2011)


#W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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