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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1학년 시절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고등학교1학년 시절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 박원순
"적어도 한나라당의 친박(친박근혜)에서는 박원순 후보의 학력이라던가 인생에 대해 한 마디라도 엉뚱한 얘기를 해선 안 된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이상하게 해석하는, 못된 발언도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 아버지의 폭정에 항거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정호영(56)씨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가 그 해 5월 초 '제명'당했다. 같은 해 4월 초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규탄하는 학내 집회에 참가했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류형을 살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와 비슷한 인생의 굴곡을 겪은 셈이다. 오히려 정씨가 박 후보보다 짧게 학교를 다녔다. 박 후보는 그와 같은 해 서울대 사회계열로 입학해 80일 만에 학내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명됐다. 하지만 정씨는 고작 70일 만에 학교로부터 제명 통보를 받았다.

정씨는 15일 저녁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하면 모두가 법대에 입학한 것으로 이해했다"며 "심지어, 제명 이후 입대한 군대에서도 나를 '서울 법대 다녔던 공부 잘 하는 정 병장'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당시 복학이 결정됐던 과정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씨는 "1979년 9월 병장 만기제대를 하고 나니 한 달도 안 돼 세상이 바뀌었다, 그 때 '잘 하면 복학이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1980년 2월 초 학교를 찾아가 복학을 문의했고 같은 달 중순 경 복학이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회계열이 사라진 상황이라, 학교 측은 정씨에게 "어디든지 당신 원하는 과로 선택하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정씨는 그 안내를 받고 원래 지망했던 법대를 선택했다. 학번은 75학번이 아닌, 79학번이 됐다. 잠시 겹쳐지던 박 후보와 그의 삶이 달라지는 계기였다.

정씨가 37년 간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들게 한 것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그는 박 후보의 학력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박 후보가 자신의 '동기'였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씨는 "박 후보 역시 나와 같이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제명당한 사람 아닌가"라며 "한나라당의 그 헐뜯는 꼴을 보니 상당히 울분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서울대 사회계열 들어가면 당연히 서울대 법대 들어간 거였다"

- 박 후보와 같이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을 입학했다가 같은 해 제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유가 무엇이었나?
"나는 1975년 3월 초 서울대 사회계열로 입학했다. 박 후보와는 입학동기인 셈이다. 4월 초 학교에서 심한 데모가 벌어졌는데 난 학생회관에서 농성하다가 거의 마지막에 붙들려갔다. 당시 남부경찰서였나? 거기서 조사 및 유치장 생활을 18일 했다. 유치장을 나오니깐 학교는 이미 휴교 상태였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 있는데 '제명' 통지서가 날아왔다."

- 제적이 아닌 제명인가.
"제적보다 제명이 더 심한 조치로 알고 있다. 요새의 '출교'와 같다. 학사제적이나 본인의 의지에 따른 제적은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지만 제명을 당하면 다시 서울대로 돌아올 수 없었다. 당시 교수께 제명이 결정된 이유를 여쭈니 '군사정권이 제적이 아닌 제명을 하라고 압박했다'고 말하더라."

- 박 후보보다 더 짧은 재학기간을 보낸 것인가. 이후 복학은 어떻게 했나.
"제명 시기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재학기간은 모두 합쳐 70일 정도 밖에 안 된다. 제명 이후 군대에 입대했다. 79년 9월 병장 만기제대를 했는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0.26이 일어났다. 그 때 속으로 '잘 하면 복학되겠다' 싶었다. 이제 독재자가 죽었으니깐. 하지만 제2의 쿠테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등 세상이 어수선했다. 그래서 다시 입시를 쳤다. 연세대에 2차 합격까지 됐는데 다시 분위기가 복학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복학통지서가 나오기 전에 직접 학교를 찾아갔다. 80년 2월 초였다. 사회계열이 없어져서 사회대를 찾아갔던 것 같다. 교직원들이 '100% 장담 못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래서 연세대 등록을 포기하고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2월 중순 경 복학 통지서가 왔다."

- 법대를 택한 이유가 있나.
"본래 법대를 가려고 했다. 당시 '제명됐던 이들 중 희망자 전원은 복적한다'고 했다. 그래서 관할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원래 입학했던 사회계열이 없어졌으니. 당시 사회계열 폭이 굉장히 넓었다. 경제·경영·무역부터 법대, 사회학과, 심리학과, 지리학과, 신문방송학과 등 사회과학의 모든 전공들이 모여 있었다. 학교는 '어디든지 당신 원하는데로 선택하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원래 가고자 했던 법대를 선택했다. 학번은 75학번이 아닌 79학번이었다."

- 당시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하면 모두가 법대 입학이라고 이해하는 편이었나.
"그렇다. 서울대 사회계열 들어갔다고 하면 전부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시골의 큰 아버지께서 (내가) 서울법대 갔다고 아주 좋아하셨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서울 법대 다녔던 공부 잘하는 정병장'으로 날 통칭했다. 군대 병적기록부에 엄연히 서울대 사회계열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우린 박정희 폭정에 항거하다 피해를 본 사람들, 울분 치솟는다"

- 당시 '제명 이후 복학'이란 경험을 한 동기가 많은 편인가.
"무기정학을 받은 이들은 (제명된 이보다) 좀 더 일찍 복학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와 같은 날짜에 끌려가 같이 제명당한 이가 있다. 남자인데 여자이름을 써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난다. 최영미. 학교를 다닐 당시엔 몰랐지만 유치장 생활을 하면서 아주 친해졌다. 복학하고 나서 그 친구 소식이 궁금해 수소문 해봤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마 복학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대 총동창회 명부도 여러 차례 뒤져봤는데 이름이 없었다."

- 박 후보는 재학 당시부터 알고 있었나.
"아니다. 당시 서울대 사회계열 정원이 480명이다. 한 반을 60명으로 잡아도 모두 여덟반이었다. 1학년 과정을 다 다녔더래도 1/3 정도 알까? 영미란 친구도 같은 반이 아니고 잘 알지 못했다. 박 후보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학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의 사정을 알게 됐다."

- 박 후보의 학력 문제가 거론될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도 나처럼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제명당한 사람 아닌가. 한나라당이 헐뜯는 꼴을 보니 상당히 울분이 치솟더라. 은근히 박 후보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솔직히 말해 난 박 후보의 철학도 잘 모른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박 후보를 지지하느냐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보자면 박 후보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라 보면 된다."

- 한나라당은 현재 박 후보가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을 법대 입학으로 부풀리기 했다고 한다.
"적어도 한나라당의 친박(친박근혜)에서는 박원순 후보의 학력이라던가 인생에 대해 한 마디라도 엉뚱한 얘기를 해선 안 된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이상하게 해석하는, 못된 발언도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 아버지의 폭정에 항거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당시 수천·수만에 달할 것이다. 그런 과거를 생각한다면…. 사과는 못할망정 그런 헛소리를 하면 안 된다."

- 서울대 제명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나.
"군대에서 학생운동 출신, 학사조치 당한 사람들은 제대할 때까지 정기적으로 사찰 받았다. 그런 것을 '동향보고'라고 하더라. 사법고시를 결국 보지 못했던 것도 그 때의 학사조치 때문이었다. 1981~1984년 사법고시 1, 2차 시험을 모두 합격해도 시위경력이 있는 이들은 3차 면접시험에서 낙방했다. 당시 3차 시험은 사실상 통과의례나 다름없었다. 시위경력을 문제 삼아 떨어뜨린 것이다.(당시 시위경력으로 인해 3차 면접시험에 떨어졌던 이들 중 일부는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치로 다시 면접을 볼 기회를 얻고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내가 사시 준비를 한창 할 3~4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런 결과를 보니 시험공부를 계속할 이유가 없더라. 그래서 고시 준비를 접고 일반 회사로 취업했다. 1975년 학교에서 제명됐던 것 외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거다."


#박원순#학력 논란#서울시장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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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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