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아침, 날씨가 흐리고 싸늘했다. 이미림씨(21·한신대 국제관계학 3)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학교에서 서울 여의도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학교 기숙사 입구에서 친구 4명과 함께 모였다. 우선 근처 가게에서 매직펜을 샀다. 손팻말로 쓸 종이는 여의도에서 구하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빵·과자 등으로 대충 때웠다.
오전 10시 30분. 학교 입구에서 지하철 1호선이 다니는 화성시 병점역으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씨는 친구들과 피켓에 어떤 구호를 쓰고 집회에서 무얼 할지 구상했다. 아침식사가 부실해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서로의 눈은 반짝였다.
이씨와 친구들은 이날 금융소비자단체 등이 주최하는 '여의도 점령' 시위에 참여하기로 했다. '국제정치경제' 수업시간에 최근 월가에서 벌어진 집회에 대해 토론한 게 계기가 됐다. 월가의 금융자본이 글로벌금융위기의 원흉일 뿐 아니라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저축은행사태' 등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금인출기가 아니에요"
드디어 여의도에 도착했다.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우비를 챙겨오지 못한 이씨는 친구들과 근처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비닐옷을 샀다. 인근 커피숍에서 젖은 몸을 따뜻한 차로 녹이다 가게 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피켓으로 쓰기 좋은 두꺼운 종이여서 점원에게 부탁해 얻었다. 그 자리에서 상자를 찢어 손팻말을 만들고 매직펜으로 'NO! ATM Korea!'를 적었다. 한국을 현금인출기로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언제든지 돈을 넣고 빼내가면서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하는 상황을 꼬집고 싶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손팻말을 비옷으로 가리고 집회장인 금융위원회 앞으로 갔다.
오후 1시 30분, 400여 명(경찰 추산 20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를 구호로 내건 참가자들은 먼저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정부와 금융자본의 책임을 물었다.
자유발언시간에 김옥주 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 위원장은 "노인들과 서민들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잃었다. 누구를 위한 영업정지고,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고 성토했다. 이씨는 김 위원장의 절규를 들으며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집회가 진행된 2시간 동안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집회가 끝난 뒤 이씨는 친구들과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음 주에 중간고사가 있다. 걱정이 좀 됐다.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전날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했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학생, 그리고 시민의 의무라고 이씨는 생각했다. 그는 지난 6월 반값 등록금 집회에도 참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국민장도 찾았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도 다녀왔다.
이렇게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지리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얘기해주었고, 전시 행정 등의 문제를 꼬집었다. 이씨와 친구들은 이를 계기로 관련 뉴스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연예인 얘기가 아닌 사회문제를 토론하게 됐다. 그 중 뜻이 맞는 친구들은 그해 광화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도 참여했다. 모의고사가 끝나던 날이었다. 광화문에는 '2002한일월드컵'에서처럼 얼굴에 페인팅을 한 사람도 있었고, 즉석에서 토론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씨는 여의도에서 서울시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오후 6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Occupy Seoul(서울을 점령하라)'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차창 밖을 보자 잠시 걱정이 스쳐갔다. 이씨도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이다. 토익 점수도 올려야 하고, 제2외국어도 공부해야 한다. 상대평가 때문에 늘 경쟁이 치열한 학점도 고민거리다. 부모님께는 집회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몇 번 집회에 갔다가 부모님께 들켜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걱정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문 앞에 도착하자 서울시청 광장을 둘러싼 전경버스와 물대포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은 시위대가 서울광장으로 진입할 것을 우려하는 모양이다. 이씨는 말없이 손팻말을 들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제발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종이상자에 쪼그려 앉아 주거불안 풍자"MB가 미국 찾아갈 때~ 살며시 촛불 들어요~ 촛불의 물결이 다 모일 때~ 무엇도 두렵지 않죠~."이씨 옆에서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흘렀다. 그룹 투애니원(2NE1)의 '유앤아이(You and I)'를 개사한 노래였다. 앳된 여학생이 노래하고, 남학생이 기타를 쳤는데, 노래를 부른 이는 이화여대 1학년 이민정씨였다.
이민정씨는 한국대학생문화연대의 문학예술단 단원이다. 한국대학생총연합회 소속의 이 단체는 지난 8월에 만들어졌다.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원래 이날 문학예술단 단원 13명이 춤을 추며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둘만 나오게 됐다. 덜컥 겁도 났지만 다행히 개사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오후 5시 30분, 다행히 비가 그쳤다. 이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주최 측 추산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두 사람의 공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오후 6시 30분. 음악이 지나간 자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인 김민수(21)씨는 동료 10명과 함께 바닥에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 정도 되는 두꺼운 종이상자 다섯 개를 배치했다. 상자 윗부분에는 '청년촌 1동'부터 '5동'까지 깃발을 꽂았다. 김씨는 월세에 허덕이며 지하 단칸방을 찾아 헤매는 청년들의 주거문제와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
동료들이 하나둘 상자 안에 들어갔다. 그도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그가 사는 반지하방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 근처 월세 45만 원짜리 반지하방에 친구 둘과 함께 산다. 지난해 3월 경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던 김씨는 한 학기 등록금 400만 원이 너무 버거웠고, 그에 비해 취업준비 기관처럼 변질된 대학은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등록금과 용돈 등을 부담하느라 허리가 휘어질 부모님께 미안했다. 그는 입학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그해 4월 말 대학을 중퇴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와야 등록금의 일부를 환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를 그만 둔 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네 군데를 거치며 말로만 듣던 '열악한 노동환경'을 실감했다. 기본급을 안 주거나 시간 외 수당, 휴가를 안 주는 것은 보통이었다. 손님이 반말하고 욕을 해도 그냥 참아야 했다. 체인점 본사에서 종업원을 커피 뽑는 기계처럼 착취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그는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에 활동가로 들어갔다.
청년유니온에는 대학생들과 비정규직·임시직·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공통의 문제를 함께 얘기하며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상자 안의 김씨가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불안한 일자리, 불안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삶 자체가 불안한 청년들이 보인다. 1%의 자본 권력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99%의 사람들. 커피숍에서, 편의점에서, 파견·계약직의 신분 등으로 일하는 동료들은 그 중에서도 아주 아래 계단에 있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소리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단상에서 함성이 들린다.
"99% 우리다! 99% 분노한다! 99% 행동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발행하는 <단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