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청(구청장 전년성, 이하 서구청)이 청각장애 2급인 도로환경미화원을 해고한 후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중앙노동위원회 판결(지난 달 8일)이후인 지난 9월 20일 중앙노동위 판결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17일 밝혔다(
관련기사 : 노부부에게 쓰레기봉투 나눠줬다 해고된 환경미화원).서구청 소속 도로환경미화원인 이아무개(48)씨는 지난 2월 식당을 운영하는 노부부에게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제공한 혐의로 해고됐다. 인천 서구청은 해고이유로 "1년 동안 일주일에 50리터(ℓ)짜리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노부부에게 1장 내지 2장씩 모두 약 150장(약 15만 원 상당) 정도를 주고 박카스 등 음료를 받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며 '금품수수'와 '근무지시 불이행' '직무태만' 혐의를 적용했다. 이씨는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달 판결을 통해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제공한 것은 식당 주변도로의 청소를 위한 것이며 금품을 수수한다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로 '금품수수 등 부정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중앙노동위는 '근무지시불이행' 및 '직무태만행위'에 대해서도 "해고라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다른 징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징계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용자의 교육지도감독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근무할 수 있도록 30일 이내에 원직 복직하라"고 결정했다.
"박카스 받아먹은 것은 '대가성'"
하지만 서구청은 '원직복직'이 아닌 '행정소송'을 선택했다. 의문은 서구청 측이 왜 이씨의 해고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마이뉴스>가 들춰본 중앙노동위원회의 사건 심리 녹취록에도 인천 서구청의 해고 처분을 '지나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난 8월 22일 열린 중앙노동위원회의 이씨 사건에 대한 심리 자리. 서구청 대리인으로 참석한 청소행정과 담당 공무원은 심의위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서구청 청소행정과 담당자인 박병노씨는 심의위원들에게 거듭 '금품수수'라며 "이씨의 행동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다른 환경미화원에게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어 고용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또 "그 어떤 이유로도 해고 결정이 번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씨가 지난 1월 작성한 현장출장복명서에는 '징계가 필요하다'면서도 "(이씨가 쓰레기봉투를) 식당 앞을 깨끗이 청소하라며 준 것으로 보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것을 인식하고 준 것이 아니라고 보이며, 박카스를 먹는 대신 봉투를 준 것으로 보아 돈을 받고 준 것은 아니며, 식당에서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눈에 잘 띄는 선풍기 포장용 등으로 쓴 것으로 볼 때 '불법거래'한 것은 아니다"라고 돼 있다.
한 심의위원은 "출장복명서를 쓴 직원과 이 자리에 있는 서구청 측 대리인이 같은 사람이 정말 맞느냐"며 "조사보고서에는 금품수수나 불법거래가 없다고 하고서 이 자리에서는 왜 '불법거래'라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불법거래는 아니라하더라도 박카스를 받아먹은 것으로 볼 때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정신 장애만으로 해고 가능하다" 주장하다 지적받고 "잘못됐다"
박씨는 또 단체협약서 10조(해고의 예고) 2항에 "신체 및 정신상 장애도 해고 사유에 해당된다"며 "도로환경미화원은 상당한 위험에 노출돼 있어 '신체 및 정신상의 장애'로 고용을 해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의위원들은 "이씨가 13년여 동안 도로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장애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근무시간이나 작업량에 전혀 차이가 없었고, 다른 동료직원을 도와줬으면 줬지 도움을 받은 일도 없다고 들었다"며 "정신상 장애 조항은 이 건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그제야 박씨는 "해당 조항을 해고사유로 언급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박씨는 심의위원들이 "금품수수가 없었다고 볼 때 '주의'나 '경고'로 징계목적을 달성 할 수 있는 만큼 징계수위를 조정하거나 아니면 다른 직종으로 전환할 용의는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조부위원장이 노조원 아닌 사용자측 참고인으로?이날 심리에는 인천 서구청 환경미화원노조 부위원장인 A씨가 참고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A씨는 노조원인 이씨의 참고인이 아닌 사용자 측인 인천 서구청의 참고인 자격이었다. 참고로 이씨의 부정행위를 구청에 신고한 사람도 노조원인 동료 도로환경미화원이다.
A씨는 한 중앙노동위 심의위원이 '노조 부위원장임에도 근로자 측이 아닌 사용자측 참고인으로 나온 이유'를 묻자 "구청에서 요청해 이 자리에 오게 됐다"며 "하지만 150명에 이르는 환경미화원의 감독자로서 참석한 것이지 노조부위원장 자격으로 온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15년 동안 이씨와 같은 도로환경미화원으로 일 해온 A씨는 한 위원이 '경험상 (쓰레기봉투를 주고받은) 이씨의 행위가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노부부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147명의 노조원이 있지만 그런 전례가 없어 뭐라 말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A씨는 한 심위위원이 '신체 및 정신장애인은 해고할 수 있다'는 단체협약과 관련 "(서구청 도로환경미화원에) 오기 전 부터 만들어져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해당 심위위원은 "오기 전부터 만들어져 있었으면 고쳤어야 했고, 이 사건에는 그 조항이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심의위원이 노조간부에게 노조의 역할을 자문(?)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청소복 입고 출퇴근 할 만큼 자랑스러워했는데..."
심의위원들은 이날 "(해고가 아닌) 좋은 방향을 찾아보길 부탁드린다"는 권고로 심리를 마쳤다. 하지만 서구청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원직 복직' 판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씨의 남동생은 "<오마이뉴스> 보도직후인 지난 달 말 인천 서구청 측에서 '해고기간동안 임금을 포기할 경우 행정소송을 취하하고 복직시키겠다'는 제의를 해왔다"며 "이를 거부하자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씨의 변호인으로 중앙노동위 심리에 참석한 이혜영 노무사의 당시 최후변론이다.
"이씨는 13년이 넘게 청각장애 2급임에도 서구청 도로환경미화원으로 성실히 근무해 왔습니다.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로) 동료직원들과 주변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다른 미화원들의 경우 작업이 끝나면 일반 옷으로 갈아입고 출퇴근 하는 반면 이씨는 청소복을 입고 출퇴근할 정도로 도로환경미화원 직업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 씨는 공공용 쓰레기봉투 관리를 소홀히 한 점에 대해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서구청 측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수차례 다짐했습니다. 이씨는 지적장애로 더 이상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