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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현옥 신현옥 시인이 쓰는 동시는 티 한 점 없이 맑고 참 깨끗하다.
시인 신현옥신현옥 시인이 쓰는 동시는 티 한 점 없이 맑고 참 깨끗하다. ⓒ 신현옥

비온 뒤 산골짜기
맑은 물 콸콸
오늘도 쉬지 않고 흘러내린다

머나먼 아프리카
메마른 땅
가뭄으로 목 타는
아프리카까지
내 마음 커다란 관을 만들어
그 곳까지 콸콸
시원하게 보내주자
- 54쪽, '콸콸' 모두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고, 산과 들이 단풍불을 물고 나르는 시월 들머리께. <콸콸>이라는 꼭 두 글자가 제목인 동시집을 한 권 받았다. 제목이 제법 재미있는 그 동시집을 펴자 책갈피 곳곳에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는 구절초 같은 시들과 연보랏빛 꿈을 꾸게 하는 쑥부쟁이를 닮은 그림들이 순식간에 글쓴이를 어린 날에 풍덩 빠뜨린다.  

시인 신현옥, 그가 이 동시집 <콸콸>을 펴낸 주인공이다. 그는 이 첫 동시집 <콸콸>을 보내기에 앞서 글쓴이에게 '신현옥'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메일을 먼저 보냈다. 신현옥? 누굴까? 글쓴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메일을 꼬옥 눌렀다. 설마 스팸 비슷한 그런 이상한 메일은 아니겠지.

"저는 동시를 쓰는 신현옥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뵈었는데 선생님은 아마 저를 모르실 거예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초창기 마포 아현동에 있을 때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민족문학교실을 개최했었지요. 그때 수강생의 자격으로 작가회의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시던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랬다. 그는 글쓴이가 1980년대 허리춤께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총무간사를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민족문학교실' 수강생이었다. 그 수강생이 지금은 어엿하고도 당당한 시인이 되어 동시집을 펴낸 것이다. 그가 보낸 사진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반가웠다. 그래, 어쩌면 그 수많은 수강생 가운데 지금까지 문인이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아이로 돌아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쓰는 시

"'동시' 하면 사람들은 흔히 '어린이가 쓴 시'나 '전문적인 작가가 아이들을 위해 쓴 시'를 떠올린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신현옥의 시편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른이 아이로 돌아가서' 또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쓰는 시도 동시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김종철 해설 '사람과 자연을 따뜻한 눈길로' 몇 토막

시인 신현옥이 펴낸 첫 동시집 <콸콸>(제3세대). 이 동시집은 어른 마음으로 아이들 마음을 다룬 그런 어른을 위한 동시가 아니다. 시인은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아이가 바라보는 눈으로 이 세상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우리는 콩나물 같다 / 키만 멀쑥 크는 콩나물 / 시루에 갇힌 콩나물 / 아파트라는 시루 / 학교라는 시루"(우리는 콩나물)에 아이들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처럼.   

이 시집은 제1부 '꽃들의 나이', 제2부 '김치찌개 주세요', 제3부 '할아버지 민들레', 제4부 '아기 들국화', 제5부 '조약돌이 새들 되어'에 60편에 이르는 동시가 아이들 눈이 되어 이 세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고 있다. '굴렁쇠', '너무 바쁘지', '사계절 피는 꽃', '빌딩을 눕혔다가', '시린 발 오므리고', '할아버지 민들레', '돋보기', '리어카 혼자 가는 것 같다', '우리는 콩나물', '이파리에 찍었네', '색연필은 꿈꾼다', '핸드폰 사 주세요' 등이 그 시편들.

시인 신현옥은 10일(월) 전화통화에서 "저와 사물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없었던 그 어린 시절에 보냈던 그 시간들이 동시로 이어졌다"고 귀띔한다. 그는 "제 동시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다. 모든 생명에 외경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인간의 꿈과 이상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 어느 문학인들 우리 삶을 진실되게 탐구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동시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 깊은 것 같다"고 되짚었다.

봄볕처럼 따스하고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동시

시인 신현옥 첫 동시집 <콸콸> 이 동시집은 어른 마음으로 아이들 마음을 다룬 그런 어른을 위한 동시가 아니다.
시인 신현옥 첫 동시집 <콸콸>이 동시집은 어른 마음으로 아이들 마음을 다룬 그런 어른을 위한 동시가 아니다. ⓒ 제3세대
"바람 부는 날 / 도시 한 복판 / 빌딩은 높다 / 쳐다보면 어지럽다 // 유리 닦는 아저씨들 / 밧줄에 매달려 / 유리를 닦는다 // 바라보고 있으면 / 가슴이 두근두근 // 이럴 때는 빌딩을 / 살그머니 땅위에 / 눕힐 수는 없을까 // 유리 닦는 아저씨들 / 무섭지 않게 / 유리창을 닦고 나서 / 제자리에 다시 / 세울 수는 없을까" -40쪽, '빌딩을 눕혔다가' 몇 토막

신현옥 시인이 쓰는 동시는 티 한 점 없이 맑고 참 깨끗하다. 그는 너무 높아 어지러운 빌딩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유리창을 닦는 아저씨가 못 견디게 안쓰럽다. 오죽했으면 빌딩을 땅 위에 눕히면 좋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러한 동시는 결코 '어른 눈'으로 바라보고, '어른 마음'에 비추면 나올 수 없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이 콕 찌른 것처럼 '어른이 아이로 돌아가서' 또는 '아이가 어른이 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동시가 나올 수 있겠는가. "키가 작아져야 되요 / 머리만 남아야 되요 / 아프게 맞아야 되요 / 그래도 언제나 / 꼿꼿해야 해요"(못)라거나 "눈 먼 장애인이 / 식당에 왔다... 점자 차림표가 식당에 없다"(김치찌개 주세요) 등도 마찬가지다.

시인 신현옥이 쓰는 동시가 봄볕처럼 따스하고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삼라만상을 티 없이 맑은 아이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담는다는 것이다. "푸른 바다 오래도록 / 바라본 날은 / 내 마음도 파란 바다가 되고"(가슴에 담는 날), "붕어가 붕어빵을 보게 된다면 / 붕어는 뜨거운 불이 무섭고 / 붕어는 붕어빵이 무서울 거다"(붕어와 붕어빵) 등도 그러하다.

그 쑥부쟁이가 곧 시요, 그 시가 곧 쑥부쟁이다

들국화야
산길에 피어있는
보랏빛 들국화야

누가 너를 여기에
꽃피게 했니?

너를 보면 나는
시를 쓰고 싶단다
-76쪽, '아기 들국화' 몇 토막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아기 들국화'는 쑥부쟁이다. 시인은 보랏빛 꿈처럼 피어나는 쑥부쟁이를 바라보며 시를 떠올린다. "산길에 피어있는 / 보랏빛 들국화", 그 쑥부쟁이가 곧 시요, 시가 곧 쑥부쟁이다. 그 때문에 "말고 높은 네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 향기를 "가슴에 담아 / 너처럼 고운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엄마 꾸중 듣고 / 밖으로 나와 / 전봇대 아래 혼자 섰는데 / 누가 따라와 / 곁에 서 있다"(그림자)에서는 제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 그림자가 "쓸쓸한 내 마음"을 엿보고 있다고 여긴다. 이 시에서 그 그림자는 곧 꾸중 듣고 전봇대 아래 혼자 서 있는 아이 마음이기도 하고, 그 아이 쓸쓸한 마음을 다시 토닥이는 엄마이기도 하다. 

'복숭아'란 동시에서는 '군중 속의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더운 여름날 / 할아버지 제삿날"에 제사상 위에는 여러 과일들이 아이들 친구처럼 사이좋게 올려져 있다. 근데, "틀니를 끼셨던 할아버지가 / 살아계실 때 / 좋아하시던" 여름철 과일인 봉숭아는 없다.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면 / 저 세상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오시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 동시가 여기서 그냥 끝을 맺었다면 "동시 비슷한 동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제사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복숭아를 통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남은 아이를 떠올린다. "복숭아도 / 제사상에 / 올려지고 싶겠지 // 복숭아 저 혼자 / 섭섭하겠다"라며, 아이들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일깨운다.       

아이들 마음에 그리는 수채화, 아름다운 세상에 쓰는 아이들 시

"자고 나니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려 / 온 마당에 하얗게 쌓인다 / 북쪽에도 오늘 아침 눈이 내릴까 / 산과 들에 쌓이는 하얀 이 눈이 / 모두모두 하얀 쌀들이라면 / 먹을 것이 없다는 북녘 땅에도 / 배고픈 동무들이 배부르겠지!" - 73쪽, '첫눈' 모두

문학평론가 김종철(전 연합뉴스 사장)은 '해설'에서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신현옥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라며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발상도 흥미롭다. 신현옥의 시편들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짙은 문학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라고 적었다.

시인 신현옥 첫 동시집 <콸콸>은 백지처럼 깨끗한 아이들 마음에 그리는 수채화요, 아름다운 세상이란 자판기를 두드려 쓰는 아이들 시다. 이 시집은 자연이 아이에게, 아이가 자연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보내는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손짓이다. 그 아름다운 손짓에 아이가 웃고 어른이 웃고 이 세상이 웃는다.

"어린 시절 꽃들과 새들과 구름과 하나였다. 시시때때 불현 듯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은 순수하고 경이로웠으며 그 속에 하염없이 합일되고 일체가 되었다"는 시인 신현옥.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우리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기를 꿈꾸며 유아교육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서예공부를 한 그는 2010년 계간문예지 <창작21> 신인문학상 동시부문에 당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희경은 '우리 동네 문화 가꾸기' '어린이 놀이터' 등 여러 가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맡았다. 작품으로는 대한민국 광고대상 수상작 삼성전자(제일기획) <또 하나의 가족> '포장마차 편' '장모님 생신 편' '원두막 편' 일러스트 작업과 <목 긴 청개구리> <천원의 행복> <자구 온난화의 부메랑>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콸콸

신현옥 지음, 제3세대(2011)


#시인 신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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