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부대찌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윤숙(52)씨는 한 달에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김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0개의 테이블이 있는 82.5㎡(25평) 크기의 가게를 홀로 지킨다. 예전 남편과 종업원이 하던 일 모두 현재는 김씨의 몫이다.
김씨가 지난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80만 원 수준이다. 월 매출액 400만 원 중 임대료와 재료비 등을 뺀 돈이다. 김씨는 "지난해만 해도 점심, 저녁때 7개 정도의 테이블이 손님들로 가득 찼지만, 현재는 2~3개의 테이블만 찬다"며 "경기기 안 좋다 보니, 손님이 많이 줄었다, 참 먹고 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2.7%의 신용카드 수수료는 김씨에게 큰 부담이다. 그는 "돈이 안 되니, 서비스의 질을 낮아질 수밖에 없고, 손님들한테 좋은 음식을 내놓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백화점, 골프장 수준인 1.5%의 카드 수수료만 내도, 나도 먹고 살 수 있고 손님들에게도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정부와 정치권은 막대한 돈을 벌어가는 대기업 카드사 편만 들지 말고, 서민 말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그가 1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 참석한 이유다. 이날 경기장에는 김씨와 비슷한 처지인 7만5000명(한국음식점중앙회 추산)의 음식점 주인들이 모여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라"를 외쳤다.
"신용카드 수수료 1.5%까지 인하해야"... 한나라당, 민주당도 약속
이번 결의대회에는 대형 솥단지가 등장했다. 음식점 주인들은 대회장 중앙에 위치한 대형 솥단지에 신용카드를 꺾어 넣었다. 신용카드 수수료 1.5%를 쟁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지난 2004년 솥뚜껑 시위의 연장이라는 게 중앙회 쪽의 설명이다.
지난 2004년 음식점 주인들은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자 서울 여의도에 솥뚜껑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였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결의대회에서 음식점 주인들은 "2004년과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회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 일반음식점 신규 개업은 2만8098곳인데 반해 휴·폐업은 이보다는 5.4배 많은 15만3787곳에 달했다. 박영수 중앙회 상임부회장은 "전체 업소의 86.2%가 임대이고, 75.1%가 99㎡(30평)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 카드 수수료 1.5% 이하까지 인하 ▲ 외국인 근로자 고용범위 확대 ▲ 의제매입세액공제율 일몰제 폐지와 영구 법제화를 요구했다. 남성만 중앙회 회장은 "외식산업은 70조 원의 매출과 30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라며 "공정사회와 서민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서는 높은 카드 수수료 등 불공정한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는 국회의원이 대거 참석해 카드수수료 인하를 약속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각 당 지도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대선 후보, 나경원·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자인 방송인 김병찬씨가 "이곳에서 국회를 열어도 되겠다"고 말 할 정도였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부터 서민대책을 많이 내놓았는데, 외식산업 대책이 늦어져 죄송하다"며 "오늘 카드 수수료를 백화점이나 영세 음식점이나 모두 동일하게 하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사인해 제출한 후 이곳으로 왔다, 야당 반대만 없으면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물가를 오르는데 음식값을 조금만 올려도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 죄송하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17대 국회 때부터 카드 수수료 인하 관련한 법안을 냈다, 어떻게 소상공인과 대형 백화점이 같은 카드 수수료를 내느냐, 내년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해서 소상공인도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새빠지게' 일하면 카드사가 다 가져가"
하지만 음식점 주인들은 "정치인들 말을 믿을 수 없다, 카드 수수료가 1.5%까지 내려갈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돼지곱창집을 하는 윤우현(45)씨는 "음식점 직원들이 '새빠지게(고생해서)' 일하면 카드사가 돈을 다 가져간다"며 "매일 오후 2시부터 12시간 동안 남편과 함께 일하는데,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은 150만 원에 불과하다, 신용카드사들이 말한 0.2% 인하로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구제역으로 돼지고기 600g 가격이 1만 원에서 2만 원으로 올랐다, 우리는 손님과 정부 눈치 보느라 9000원에서 1만 원으로 1000원 올렸는데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단골이라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손님한테는 저절로 인상을 쓰게 된다, 안타깝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앞에서 민속주점을 운영하는 김지연(가명·53)씨는 "하루 12시간씩 일해 버는 돈이 한 달에 80만 원 수준"이라며 "2.7%인 수수료가 1.5%로 내려가면, 그래도 월 10만 원은 더 벌 수 있다, 국회가 말로만 우리 편 들고 실제로 카드사 편만 들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