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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外畵,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입영화를 볼 때, 자막은 주인공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를 알게 해줍니다. 하지만 자막에 신경을 쓰다보면 영화 속의 멋진 배경이나 못 보면 너무 아까운 순간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같은 영화가 우리말로 더빙이 잘되어 있다면 원어에 담긴 미묘한 감정이나 미세한 묘사까지는 아닐지라도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여기에 전문가의 평론까지 곁들여진다면 비록 번역되고 더빙된 영화를 보고 있지만 제작자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영화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는 감상이 될 것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번역만 해 놓은 책보다는 시대적 배경을 포함해 단순 번역만으로는 알 수 없는 미세하고 은밀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원문, 번역, 설명이 입체적으로 구성 된 <나는 장자다> 

 

<나는 장자다>,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왕멍이 지은 것을, 허유영이 옮겨 <도서출판 들녘>에서 펴낸 <나는 장자다>는 잘된 더빙에 평론까지 곁들인 영화처럼 <장자>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세하고 은밀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좋을 책만큼 <장자>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글의 이면에 담긴 의미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나는 장자다> 표지
<나는 장자다> 표지 ⓒ 도서출판 들녘

이 책에 나오는 원문 해석은 대부분 일흔 몇 해쯤 되는 나의 인생경험과 그간의 학문연구, 글쓰기, 공직 생활에서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장자와 서로 논증하고 보완하면서 이해하고 해석한 것들이다. -본문 5쪽

 

장자莊子는 중국 역사에서 둘도 없는 기재奇才이고, '장자'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서奇書다. 철학서이면서도 산문이고 신화이며, 우화이면서 논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낭만적이고 때로는 허황하며, 때로는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고, 또 때로는 추상적으로 추론한다. 한마디로 '장자'는 기론奇論이자 괴론怪論이다. - 본문 7쪽

 

70대 중반의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이 책을 집필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저자는 <장자>를 기론奇論이자 괴론怪論으로 정의하고 있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장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자, 이 책엔 있다

 

장자와 노자가 늘 함께 거론되며 비슷한 평가를 받아왔지만, 노자가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했던(어느 학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것과 달리 장자는 자부심과 대범함, 과장과 여유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 본문 19쪽

 

장자는 자연계의 법칙이나 과학을 논하려는 게 아니라 모든 자연현상이 대도大道와 서로 통한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웅대하든 광활하든 원대하든, 아니면 허풍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바람과 물이 얼마나 두텁게, 얼마나 충분하게 쌓였느냐 하는 것이다. 풀 한 포기밖에 띄울 수 없는 깜냥으로 진리의 화신인양 오만하게 군다면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미고 고상한 척 연기한다 해도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본문 23쪽

 

장자는 삼계三界를 초월한 것은 물론 오행五行속에도 머물지 않고 홀로 떠돌며 소요했던 것이다. 천마天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명리와 득실은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장자는 정신의 절대적인 해방을 추구했던 것이다. - 본문 409쪽

 

<장자>와 관련한 적지 않은 책들은 한자로 된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나는 장자다>의 저자인 왕멍은 장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배경들을 밑바탕처럼 깔아주고 있습니다.  

 

장자와 즐긴 저자의 눈높이가 되어 장자를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하게 평론하며 보충설명을 해주듯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장자, 알려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술래처럼 고전에 가려진 장자를 실루엣처럼 담아내고 있습니다.

 

장자가 보이니 <장자>를 알 수 있다. 

 

宋人資章甫而適諸越 越人短髮文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藐姑射之山 汾水之陽 杳然喪其天下焉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팔기 위해 월나라로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모자를 쓰지 않았다. 송나라의 갓이 월나라에서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요임금이 백성들을 다스려 세상을 평안하게 했지만, 분수의 북쪽에 있는 막고야산에 가서 네 명의 신인을 만난 후에는 자신이 다스리던 천하를 아득히 잊어버렸다.

 

여기에서 송나라 사람이 월나라에 모자를 팔러 갔다가 실패한 우화를 끼워 넣은 것은 시장조사나 시장예측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막고야산에 사는 신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뜬금없이 형이하학적인 모자 파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 것, 이런 도약성은 장자의 글쓰기 특징 중 하나다. 이런 방식을 통해 글의 탄력성을 높이고, 읽는 이들이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 본문 49쪽

 

인생의 멋과 즐거움을 승화시켜 줄 커다란 기쁨

 

7부로 구성된 <장자> 한 구절 한 구절 모두를 이처럼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배경까지 덧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자>를 읽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하였고, 장자를 알고 있으나 장자가 누구인지가 또렷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장자의 실체, <장자>의 진의를 단박에 각인시켜주고 이해시켜 줄 것입니다.  

 

저자는 서문을 '이 왕아무개의 깜냥으론 글을 학문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저 학문을 인생의 멋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라는 말로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자다>를 다 읽으니 인생이 멋스러워지고 승화된 즐거움이 어깨춤사위라도 그리려는 듯 어깻죽지가 들썩입니다. 저자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나는 장자다>는 읽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멋과 즐거움을 승화시켜 줄 커다란 기쁨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장자다>|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도서출판 들녘 펴냄|2011.10.3|17,000원


나는 장자다 -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들녘(2011)


#장자#나는 장자다#왕멍#허유영#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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