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네 마음보다도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빠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달려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지쳐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깊음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다들 최신형으로 가는데 왜 거꾸로 가느냐고 한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려다보니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고 했다.
며칠 전 니콘 FM2를 만지작거리다 기어이 필름을 한 통 샀다.
너무 오랜만에 꺼낸 카메라가 작동을 하기는 할지, 필름을 넣기 전에 몇 번이고 작동시험을 했다.
36장짜리 필름 한 통, 테스트를 하는 중이니 하루 중에 찍고 현상과 스캔을 받아보면 좋을 터인데 역시 더디다.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디지털에 익숙해진 눈과 마음이 답답해 한다.
번데기와 로보트태권V, 2-30년 전 대학을 다녔을 학부모, 장작과 배롱나무의 단풍.
어느 창고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로보트태권V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시대,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로보트태권V가 필요한데 이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기에 있었나 싶다.
스마트폰을 반납한 뒤 필름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며 아내가 "이제 당신 늙었나 보우!"한다. 그래, 그런가 보다. 옛 것이 점점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