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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은의씨는 '엄친딸'이었다. 입사한 이후에는 제법 유능한 영업사원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고, 한발 더 나아가 삼성을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면서 그는 'MJ사원'이 되었다. 'MJ사원'이란 '문제사원'을 지칭하는 삼성만의 독특한 용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삼성과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통설을 깨고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등에서 승소했다. 국가인권위로부터 차별시정권고도 이끌어냈다. 이것들이 '삼성 밖'이 아니라 '삼성 안'에서 싸워 거둔 결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아주 각별했다.

지난해 10월 '12년 9개월'간의 삼성생활을 스스로 끝낸 이씨가 최근 <삼성을 살다>(사회평론)를 펴냈다. 이 책은 성희롱 사건을 겪은 한 여직원이 용기있게 삼성을 상대로 벌인 싸움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앞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가 삼성조직이 벌인 '위험한 일들'을 까발렸다면, 그의 <삼성을 살다>는 삼성 조직문화의 속살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

 이은의씨의 <삼성을 살다>
이은의씨의 <삼성을 살다> ⓒ 사회평론
삼성은 입사지원서부터 남달랐다. 대학성적이야 기본사항이라고 하지만, 편입학 여부와 고교 내신등급까지 적어야 했다. 게다가 삼성은 "집안에 혹 있을지 모를 유력인사의 신상"까지 자세하게 적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당시 삼성은 "마가렛 대처 수상도 구멍가게집 둘째 딸이었습니다"라는 카피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런 절차를 거쳐서인지 이씨가 속해 있던 '삼성그룹 38기 14차 대졸신입사원'의 '출신성분'도 남달랐다. 이씨의 여성동기들 가운데 '상류층'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방을 세 명이 같이 썼는데, 나를 제외한 두 명은 아버지가 장군과 판사였다. 조에는 나를 제외하고 네 명의 여자동기들이 있었다. 그 중 셋은 아버지가 삼성 계열사 현직 부사장, 삼성계열사 전직 임원, 국방부 고위직 인사였다." 

삼성이 자랑하는 신입사원 입문교육 중 하나는 "창업주(이병철)의 위인전이나 오너(이건희)의 어록"을 공부하고 시험보는 것이었다. 가장 후진적인 주입식 교육을 진행했던 셈이다. 

"(입문교육) 첫날 우리는 똑같은 곤색 추리닝, 스포츠가방과 함께 5~6권의 책들을 받았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쌀가게 시절부터 삼성이라는 기업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기업사이자 위인전 같은 책들, 이건희 회장의 각종 어록을 담은 책들이었다. 책 내용을 입문교육 중간중간 객관식이나 괄호넣기식으로 시험을 봤다."

이씨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근과 채찍'이니 '한방향'이니 하는 이건희 회장의 어록이나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 같은 삼성이 추구한다는 가치관 등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건 순전히 그 시절의 열공 덕분"이라고 꼬집었다.

고졸 서무 여직원에게는 영어 사용하지 마라?   

이씨가 경험한 삼성은 '차별의 삼성'이었다. 삼성은 그동안 광고들을 통해 '차별 철폐'를 자신들의 방침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그가 직접 본 삼성의 현실은 그런 광고와 완전히 달랐다. 고졸을 차별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학력-여성 차별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특히 '고졸인 여성직원'들은 이러한 차별구조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씨가 만난 은정씨는 그런 학력차별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19살에 삼성전기에 입사해 8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대졸 신입사원이 입사하면서 단다는 G3직급도 달지 못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고과로 인해 진급에서 누락된 것이지만, 실제로 고졸 여사원들의 진급 정체는 고착화되다시피 한 회사의 관습이었다. 광고 속의 학력철폐나 여성차별철폐는 애석하게도 삼성의 현실이 아니라 바람이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었지만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탓인지, 믿을 만한 사원기구가 없는 탓인지, 정작 당사자들은 공식적으로 말이 없었다."

이씨는 "게다가 회사는 정규직이었던 고졸 여사원들을 IMF 기간 때 모두 일방적으로 계약직으로 전환했다"며 "그렇지 않아도 여자라서 이래저래 퍽퍽한 직장생활에서 그들이 입은 상처는 컸다"고 증언했다.

'황당한 학력차별' 사례도 있다. Y부서장이 사무실에서는 회의나 대화도 영어로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고졸인 서무 여직원들과 이야기할 때만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같은 호칭을 쓰지 않고 이름을 부르니 관계학적으로도 긍정적이었다. 문제는 영어로 우리끼리 지껄이는 동안 서무 여사원들이 소외된다는 것이었다. 은정씨를 뺀 두 여사원은 모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은정씨는 민감했다. 하필 자리도 내 바로 옆이라 종일 나와 L선배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떠들어대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도 적잖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보건휴가 쓸 거야?" vs. "대졸사원들도 생리해요"

 <삼성을 살다>를 펴낸 이은의씨. 그는 현재 로스쿨에 재학중이다.
<삼성을 살다>를 펴낸 이은의씨. 그는 현재 로스쿨에 재학중이다. ⓒ 사회평론 제공
이씨가 만난 미숙 언니는 대졸이지만 고졸인 은정씨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영상 일본수출팀에서 만 4년을 근무한 베테랑 직원이었다. 인사고과도 '중상급'이었고, 보건휴가도 사용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대리로 진급하지 못했다. 그가 술집에서 털어놓았다는 얘기다.
"권 부장이 아까 불러서 그러더라구. 곧 결혼할 텐데 그러면 임신하게 될 거 아니냐고. 군대도 안 다녀와서 나이도 어리니 양보하라고. 근데 나는 정말 열심히 했거든. 그 결과가 고작 이건가 싶어서 어이없고 기분이 헛헛해…."

"은의야, 난 지금까지 네가 매달 쓰는 그 보건휴가조차 한번도 안 쓰면서 회사를 다녔어. 근데, 그런 게 나 무슨 소용이었던 건지 회의가 들어. 널 보면서 좀 부럽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넌 회사에서 나처럼 살지 마."

삼성의 '여성차별구조'를 희극적으로 증명하는 장면도 있다. 보건휴가를 꼬박꼬박 챙기던 이씨와 미주영업 파트장이었던 L과장이 나눈 대화다.

"은의야, 이번 달에 보건휴가 꼭 써야 해?"
"?... 업무일정에 문제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유 부장도 그렇고 윗사람들 보기 좀 그렇잖아."
"?... 은정씨나 성희씨도 다 쓰던데요?"

"에이... 걔들은 (고졸인) 서무잖아... 넌 대졸사원이구."
"대졸사원도 생리하는데요. 혹시 모르시는 건 아니죠?"

"옳은 일이면 삼성이라도 이길 수 있다"

이토록 인권에 무지하거나 인권을 외면하는 삼성의 조직문화가 이씨의 '성희롱사건'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술자리에서 남성 상사와 블루스를 추는 것이 "여사원으로서 해줘야 하는 의전"으로 인식되는 곳이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상사의 성희롱문제를 공식으로 제기한 이후 회사측이 보여준 대응은 삼성조직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문제제기를 "조직부적응"이라고 왜곡하고, 인사고과도 실제 실적과는 상관없이 C-를 주고, 진급도 누락시켰다. 'MJ 이은의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사례연구'라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심지어는 그를 '꽃뱀'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회사는 계속해서 꽃무늬 청바지나 부산영화제를 다녀와 피곤했던 얼굴 같이 문제의 본질과 크게 상관없는 흠집내기를 반복했다. 그들 입장에 따르면 나는 있지도 않은 성희롱을 핑계로 무능으로 인한 진급누락이나 전배 조치를 물고 늘어지는 파렴치한이었다. 회사는 다만 내가 받고 싶은 돈이 얼마인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씨가 만났던 김용철 변호사는 "회사와 싸워봐야 이기기도 어렵고 별 소득도 없으니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타협점을 찾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행정소송에서도, 민사소송에서도 삼성을 이겼다. 유일하게 검찰만 이씨의 형사고발 건을 기각했을 뿐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소송할 수 있다는 것을 삼성직원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삼성을 상대로도 옳은 일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싸움을 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싸움을 지켜봤던 사람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 이씨가 지난해 10월 31일 12년 9개월의 삼성생활을 스스로 끝낼 수 있었던 이유다.

"이건희 회장의 결정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회장은 거의 종교적인 존재였다. 회장의 결정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받을 때 그의 어록집을 외우던 것처럼, 이 회장이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회사 꼭대기서부터 지침처럼 내려왔다. 휘닉스파크 슬로프에서 회장 혼자 스키를 타는 것이 회사밖에서 회자되는 동안, 회사에는 스키를 타며 깨달았다는 뻔한 말이 무슨 '말씀'처럼 하달됐다. 사장실이 있는 건물엔 층마다 회장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그의 명언(?)이 쓰인 대형족자가 걸려 있었다. 용인 에버랜드 옆 레이싱 트랙이 막혔을 때는 이건희 회장이 혼자 그 트랙을 도느라 전용으로 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겨레에 이건희 회장이 용인 트랙으로 가는 동선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왔었다. 회장이 트랙에서 혼자 스포츠카를 모는 것은 회사에선 관심사도 아니었다. 삼성 직원들은 그 동영상에서 그의 차를 운전한 흰색 투피스 정장의 젋은 여자가 누군지를 궁금해했다. 그 여자가 P모 상무인데 타워팰리스 맨꼭대기에 사는 이학수씨 바로 아래층에 산다는 둥, 동영상이 유출돼서 비서실장이 경질됐다는 둥 말이 많았다. 그래서 회사 밖에서는 회식을 할 때조차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이 한번 출장을 가면, 사전에 삼성구조본이나 전략기획실의 고위간부들이 돌아다니며 잘 곳과 먹을 곳을 꼼꼼히 챙겼다. 그런 것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회사에서 제일 월급 많이 받는 계층이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그 밑에서 성장한 고위층들이 반복했고, 의전이란 명분으로 고착화되었다.

사장이 해외사업장이나 판매법인으로 출장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생난리가 났다. 나도 영업사원 시절 부다페스트 출장을 가서, 거래선 미팅도 제쳐두고 그 다음주에 있을 사장 출장을 준비하는 일에 동원된 경험이 있다. 시내 고급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인당 3-4가지 음식을 시켜 맛 품평 리포트를 했고, 직원들의 인건비나 그 비싼 음식값들은 모두 회사경비로 치러졌다. 현지 직원은 사장이 묵을 호텔 방의 수백만원짜리 매트리스도 회사경비로 바꿔줬다며 혀를 끌끌 찾다. 사장이 허리가 안좋아서라는데, 허리가 불편한 양반이 왜 거기까지 출장을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332-334쪽)



#이은의#삼성을 살다#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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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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