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박원순 지지" … 한나라․나경원․조중동, 벌집 쑤신 듯
<동아> "안철수 이미지 팔며 정치겸업"
<조선> "안철수에 매달려가는 무능한 민주당․박원순"
<중앙> "안철수 등장, 보수 집결할 것"
24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자,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반응이 벌집을 쑤신 듯하다.
안 교수의 박 후보 지지는 '세련되고 부드러운' 형식을 취했지만 그 내용은 '셌다'. 안 교수는 이날 오후 1시 박 후보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응원 드리러 왔다"며 박 후보에게 '지지 편지'를 전했다. 편지는 투표 참여의 필요성의 설득력 있게 담았다.
안 교수는 60년대 버스 내 흑백 좌석 차별에 저항함으로써 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로자 파크스가 남긴 "내게는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지만 수많은 대중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선거 참여를 당부했다.
또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부자 대 서민, 노인 대 젊은이, 강남과 강북의 대결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적으로 "박원순 후보를 찍어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박원순=미래', '나경원=과거'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안 교수는 박 후보와의 비공개 만남에서도 "투표율이 60%를 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 승리의 관건이 높은 투표율, 특히 젊은층의 투표율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 층의 신뢰를 얻고 있는 안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의례적인 지지 당부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 측은 당장 발끈하고 나섰다. 홍준표 대표가 직접 나서 "정치를 하려면 교수를 그만두고 정치판에 들어오라"는 등 안 교수를 파렴치한 폴리페서로 몰아붙였다. 나 후보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박원순 후보를 향해 "남자가 쩨쩨하게 치졸한 선거 캠페인을 하지 말라", "박 후보와의 당당한 일대일 대결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날 나 후보 캠프는 조간신문에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광고로 낼 계획이었으나 급히 취소하고 나 후보 혼자 유세하는 사진을 실었다고 한다).
25일 조중동의 반응도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거칠게 반응한 것은 '역시' 동아일보다.
<안철수 대학원장의 '이미지 협찬' 정치겸업> (사설, 동아)
<안철수 "박원순 응원" 캠프 방문 / 나경원 "남자가 쩨쩨한 선거운동"> (1면, 동아)
<安 "투표로 변화 이끌어내자"…내년 대선 겨냥한 정치 메시지>(4면, 동아)
<한나라 "국립대 교수가 특정 정파에 편향"…안철수 정조준> (5면, 동아)
사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동아일보는 안 교수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이미지를 파는 인물', '폴리페서'로 매도했다.
사설은 안 교수를 향해 "서울대 교수의 지위를 누리면서 박 후보에 대한 이미지 협찬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각에서는 안 원장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두고 '박원순 카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불씨를 살려나가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의 지지 선언을 "정치겸업"으로 규정하면서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폴리페서'는 교수직을 정치권 입문의 발판으로 삼아 교수직을 유지한 채 선거에 나갔다가 당선되면 휴직을 하고, 낙선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강단에 서는 일부 파렴치한 교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교수들이 권력비판 등 사회참여적인 발언을 하거나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고 '폴리페서'로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출마선언조차 한 적이 없는 안 교수를 향해 "정치겸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만저만 '오버'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5면에서도 안 교수를 비난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면 전체에 걸쳐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뽑으며 안 교수의 지지선언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이 부각했다. 기사에서는 한나라당의 비난 주장을 시시콜콜 전하는 한편, "폴리페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4면에서는 안 교수의 박 후보 지지를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 메시지"로 규정했다.
이런 기사들과 함께 동아일보는 4, 5면에서 박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안 교수를 흠집내는 내용의 기사들을 실었다. '안철수연구소 주가가 폭등해 작전세력 개입 주장까지 제기됐다'는 기사, 북한 매체들이 나경원 후보와 박근혜 대표를 비방했다는 기사, '호남향우회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는 기사, '특정후보를 위한 인증샷은 처벌 받는다'고 강조하는 기사 등이다.
조선일보는 '박원순과 야당이 안철수에 끌려간다'고 강조하면서 박 후보와 안 교수, 야당을 모두 비난했다.
<안철수 원장에게 또 한 번 매달린 야권> (사설, 조선)
<안철수, 선거일 날씨까지 체크하고 나타났다> (4면, 조선)
<요즘 安, 사회적 발언 수위 높아져 대선 출마 안해도 끝까지 '변수' 될 듯> (4면, 조선)
<안철수․조국 '新폴리페서' 논란> (4면, 조선)
<羅 "남자가 쩨쩨하게…" 朴 "계속 도움받고 살것"> (5면, 조선)
이날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박 후보가 자신의 상품을 팔 생각은 않고 끝까지 남의 상품만 협찬 받으려 한다", "차라리 안 원장보고 선거에 나가라고 하지 왜 자신이 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느냐"는 한나라당의 비난을 전한 뒤, "유권자 입장에서도 이번 선거가 박원순을 뽑는 선거인지, 안철수를 뽑는 선거인지 헷갈리는 게 사실"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또 안 교수를 향해 "꿈이 정치라면 더 이상 국립대학을 후방 기지로 삼아 들락거릴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정치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옳다"고 비난했다. 안 교수를 정치권과 대학을 '들락거린' 사람처럼 어물쩍 왜곡하며 그의 박 후보 지지를 깎아내린 것이다.
1면 '팔면봉'에서도 "안철수, 박원순 사무실 찾아와 '응원왔다'. 안풍에 상시 출입증 내준 정당의 무능"이라며 민주당을 조롱했다.
4면은 전체가 '안철수'였다. 조선일보는 안 교수가 박 후보 캠프를 갈 때 '선거일 날씨까지 체크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그의 행보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 속에 나온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또 다른 기사들에서는 앞으로 안 교수의 정치행보를 진단하고, 안철수 교수로 인해 '신폴리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안철수 연구소가 상한가를 쳤다는 소식도 덧붙였는데, 이로 인해 안 교수가 '3715억 주식부자가 됐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 후보와 박 후보의 '공방' 형식을 취한 5면 기사의 제목은 그야말로 박 후보를 '쩨쩨한 남자'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羅 "남자가 쩨쩨하게…" 朴 "계속 도움받고 살것">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 기사 옆에는 홀트임시보호소를 찾아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며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는 나경원 후보의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나 후보의 사진 바로 옆 4면에는 박 후보가 안 교수의 손을 잡고 좋아하는 사진이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4면에서 5면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편집에서 '어머니'의 이미지가 부각된 나 후보가 "왜 그렇게 쩨쩨하게 사느냐"고 박 후보를 질타하고, 여기에 대해 박 후보가 '계속 그렇게 살겠다'고 궁색하게 맞서는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조선일보가 제목으로 뽑은 두 후보의 발언은 각각의 발언을 교묘하게 짜깁기 한 것이다. 나 후보의 이른바 '남자가 쩨쩨' 발언은 안 교수의 지지 선언 이후 나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박 후보의 발언은 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선거까지 협찬받는다'고 비난한 데 대해 박 후보가 "좋은 분들이 주변에 있는 것도 능력", "서울시장 된 후에도 전문가 도움 받겠다"고 맞받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은 쓰지 않았으나, 1면 톱기사에서 자신들의 속내 혹은 '희망사항'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안철수 등장 보수표 자극> (1면 톱, 중앙)
<선거 뛰어든 안철수 … 박근혜 "오늘은 드릴 말 없는데"> (3면, 중앙)
<안철수 신당 나오나> (3면, 중앙)
<"고생은 우리가, 과실은 안철수가…" 편지에 떨떠름한 민주당> (4면, 중앙)
중앙일보는 1면에 안 교수의 박 후보 지지선언이 보수표를 자극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기사는 안 교수의 지지선언으로 서울시장 선거가 '박근혜 대 안철수'의 대선 전초전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며, '안철수 신당' 등 정치권 재편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박원순은 사라지고 안철수만 부각시키는 이런 식의 접근이야 말로 '서울시장 선거'라는 의제와 안 교수의 '박원순 지지'를 물타기 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대선 전초전'으로 유권자들의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3면 기사에서도 중앙일보는 이른바 '안철수 신당'의 가능성을 비중있게 다뤘다. 4면에서는 "안철수 등장"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다뤘는데, 민주당의 '불편한 속내'를 강조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고생은 우리가, 과실은 안철수가…" 편지에 떨떠름한 민주당>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중앙일보는 민주당이 안 교수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 캠프의 민주당 소속 우상호 대변인이 안 교수의 '지지 편지'를 "레터인가 뭔가"라고 표현한 것도 "(민주당의) 떨떠름한 기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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