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그리움, 단풍을 찾아서가을이 깊어지면서 북쪽에서 시작된 단풍이 남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단다. 가을꽃들이 생기를 잃어갈 즈음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한해를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다. 설악산에 단풍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남쪽에서는 단풍을 빨리 보고 싶은 그리움이 커져간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꼽자면 내장산을 들 수 있다. 내장산 단풍은 애기단풍이라고 해서 더욱 붉은 빛을 자랑한다. 내장산국립공원은 세 개의 산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이다. 그중 내장사 일대가 최고라고 하지만 백양사도 아름답기는 조선팔경 하나로 꼽힐 만큼 유명하다.
백양사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순경이다. 아직 이른 줄 알지만 백양사로 발길을 옮긴다. 백양사는 단풍이 아니더라도 걷기에 좋은 곳이다. 매표소에서부터 백양사까지 걸어가는 길도 좋고,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등산도 좋다. 국립공원은 나름대로 이름값을 한다.
300년 이상 살아온 갈참나무들이 서있는 풍경백양사 입구는 벌써 차들이 줄을 섰다. 아직 단풍철은 아니지만 백양사로 향하는 마음은 이미 마음에 빨간 단풍을 품고 있다. 매표를 하고 일주문을 넘어선다. 입장료와 주차료가 비싼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좋아서 왔는데. 일부 방문객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일주문 주변에는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소나무들이 서있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운치가 있다. 백양사로 가는 길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지키는 장수들처럼 서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갈참나무들이란다. 마치 이국적인 풍경 같기도 하다. 이곳 갈참나무들은 나이가 300살이 넘었다고 한다. 무려 700살 된 나무도 있다.
아주 옛날에는 이런 풍경이 흔했을 건데 사람들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다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참나무들은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는데 몇 백 년씩 살아온 웅장한 모습이 좋기만 하다. 웅장한 참나무를 보면서 이솝우화 <참나무와 갈대>가 생각난다. 힘이 센 참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비웃으며, 강풍에 버티다가 뿌리 채 뽑혀 쓰러져 버린다는 이야기. 산에 자주 다니다 보면 쓰러지거나 가지가 부러진 참나무를 자주 보기도 한다.
백양사가 된 사연, 꿈속에 나타난 하얀 양때문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백양사로 걸어간다. 길 아래로 계곡을 막아 징검다리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아름다운 누각이 담겨있다. 쌍계루다.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진대서 쌍계루(雙溪樓)라고 했다는 고려말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쌍계루는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과 잘 어울린다.
백양사는 절 집이 특이한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절집 입구인 사천왕문은 계곡을 바라보며 섰다. 사천왕문을 들어서서 일직선으로 대웅전이 있는 게 아니라 종각과 만세루를 지나 극락보전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백학봉을 배경으로 대웅전이 자리를 잡았다.
웅장한 백학봉을 배경으로 부처님을 모시려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여준다. 절집이 자리 잡은 곳도 다른 절집과 달리 터가 좁다. 계곡 건너 좁은 터에 자리를 잡아 가람배치가 길게 늘어선 모양이다. 답답한 모양이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것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백학봉이다. 백학봉의 웅장한 모습에 작은 절집이 작게만 보이진 않는다.
백학봉은 바위가 흰 색깔이라서 백암(白巖)이라 불렀다. 깎아지른 듯 험한 산봉우리의 기이한 모습을 가진 이곳에 백제 무왕 때(632년) 여환조사가 절집을 짓고 백암사(白巖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중기 정토사(淨土寺)로 바뀌었다가,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백양사(白羊寺)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백양사라는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때는 조선 중기,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 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며 절을 하였다. 이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영천암은 백학봉 아래 바위에 자리를 잡은 암자다. 웅장하게 솟아있는 백학봉은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다.
구불구불 계곡길 따라 찾아가는 운문암절집을 나와 운문암 가는 길로 들어선다. 운문암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었다. 백암산을 가르며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아직은 싱그러운 숲이다. 비자나무가 명찰을 달고 있다. 나무마다 고유번호가 있어 다른 나무와 달리 존재감이 있고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한 아름이나 되는 단풍나무도 있다. 이 나무들이 모두 붉게 물든다면...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백양사에서 운문암까지는 2.3㎞나 된다. 길도 가파른 경사가 여러 군데 있다. 계곡을 따라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정감이 넘치지만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길 끝에 있다는 절집은 꼭꼭 숨었는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땀이 날 정도로 한참을 걷고서야 운문암으로 들어가는 사립문이 보인다. 절집은 수행하는 공간이라며 들어오지 말란다.
아!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미안하지만 조심스럽게 들어가 본다. 암자는 문을 지나서도 한참을 들어간다. 높은 축대 위에 선 절집이 보인다. 축대 아래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운문암(雲門庵)은 고려 충정왕 때 각진국사가 개창했다고 한다. 조선중기 진묵대사가 불상을 만들다 금을 입히지 못한 채 중단 된 흙부처도 있었다고 하나, 암자가 6·25사변 때 불타버리고 최근에 복원되었다.
암자는 산 아래를 바라보며 일렬로 세 채의 건물이 섰다. 멀리 산이 아주 깊다. 산 속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암자는 너무나 조용하다. 번잡함은 없다. 멀리 보이는 산그늘마저도 흐트러짐이 없다.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계곡을 내려다본다. 백양사 입구에서 본 서옹스님의 <열반송>이 떠오른다.
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고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백학이 한번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솔솔 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 구나 덧붙이는 글 | 10월 23일 백양사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