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비빔'에 미친 사람이 있다. 전주 한국소리문화전당입구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 '비빔소리'의 유비빔씨다. 지난 17일 유비빔씨를 만났다. 비빔씨는 원래 밴드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2005년 스승에게 '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고 그 뒤로 세계소리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어느 날 문득,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비빔'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번득 머리를 스쳤고, 그 후 그의 비빔철학은 시작됐다.
"무슨 소리든 나려면 비벼야잖아요. 성대와 공기가 비벼야 목소리가 나고, 장구 가죽과 장구채를 비벼야 장구소리가 나죠.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결국 핸드폰 화면하고 사람 손가락이 비벼야 작동하는 거잖아요. 세상에 비빔 아닌 것이 없어요."
"스토리가 있어 더 맛있는 전주비빔밥"'비빔소리'라는 음식점을 연 것도 처음에는 사물놀이 공연을 하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메뉴는 일반 한식당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이름이 '비빔소리'이니 어차피 비빔밥을 판매하면 더욱 좋겠다 싶어 그 후로 메뉴를 비빔밥으로 통일했다. 청국장 비빔밥, 육회비빔밥 등 온갖 비빔밥이 다 있다. '비빔'은 그에게 삶의 철학이자 신념이고 종교다.
오죽하면 이름까지 유비빔으로 바꿨을까. '그렇게 비빔이 좋으면 아예 이름까지 바꾸지 그러냐'는 주위의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에 그는 개명신청서를 냈다. '비빔문화에 이바지하기위해서'라는 다소 황당한 개명사유를 쓴 뒤, 개명이 될 거라는 기대도 안했다고 한다.
3개월 후 개명이 승낙됐다는 통지서가 날아왔고 그 후 그의 이름은 유비빔이 되었다. 세계소리문화축제 기간에 태어난 늦둥이 딸이름은 '소리'로 지었다. 그의 음식점 '비빔소리'에는 진짜 '비빔'과 '소리'가 사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스토리가 있을까.
비빔씨는 전주비빔밥과 비빔문화의 가장 중요한 매력으로 '스토리'를 꼽았다.
"전주는 '비빔'과 '소리'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고장이에요.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지역은 없죠. 그 어떤 지역에서도 '비빔'과 '소리'에서 전주를 따라 올 수가 없죠.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 소리하면 전주대사습(조선조 숙종 때의 마상궁술대회 및 영조대의 물놀이와 판소리·백일장 등 민속 무예놀이)입니다."비빔씨의 설명을 듣다 보면 전주비빔밥이 유명한 까닭도 맛도 맛이지만 전주비빔밥이라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요즘은 '맛'이 흔한 세상이다. 손가락으로 검색하면 손안에 맛집이 수두룩하고, 자기가 사는 동네에도 요리좀 한다는 맛집들이 널려 있다. 이런 와중에 몇 시간씩 자동차로 달려 전주비빔밥을 찾는 것은 아마 전주비빔밥에 얽힌 이야기를 먹고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빔문화를 팔아야 한다 비빔씨는 '비빔소리'를 비롯해서 '비빔의 흔적' '비빔스' 'Bibomz' 등 비빔과 관련특허를 30여 개 갖고 있다. 세상에서 '비빔'과 관련해서 유비빔씨만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빔씨 집앞 거리도 '비비고 싶은 거리'다. 심지어 류비빔씨가 바라보는 전주의 형태도 비빔밥 그릇을 닮았단다. 완주가 전주를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 완주는 밥이고 전주는 계란 노른자위란다. 그럴싸하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스토리는 만드는 사람의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이 사람이 비빔을 안 사람이에요. 애플을 가만히 보면 이게 완전 비빔이거든요. LCD는 일본 마쓰시타 회사 것을 쓰고, SDRAM은 삼성제품을 썼어요. 각 분야에서 좋은 것만 쏙쏙 취해다가 자신들은 비비기만한 거죠. 그리고 이런 문화를 팔았어요. 앞으로 우리가 팔아야 되는 것은 이런 비빔 문화여야 합니다."
류비빔씨의 목표는 전주의 비빔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내년에는 뉴욕에 갈 예정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비빔 강의를 하고. 자신이 손수 만든 비빔기타로 거리공연도 할 예정이다. 비빔기타가 뭐냐고? 일반 기타 운지판에 각 나라 국기들을 인쇄해서 붙여놓은 것이다. 비빔문화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조화'와 '균형'이 뉴욕에서 실현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여러 나라들은 비빔 기타 소리 위에서 비벼지고,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룰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