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자주, 그러나 꽤 유쾌한 이유들로 인해 중단됐다. 짤랑, 하는 종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들, 그러니까 '고객님'이 아닌 '이웃'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들어와 앉았다 가고, 발마사지기에 발을 올리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자판기에서 공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약국 한켠에 마련된 열린문고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카운터 앞에 놓인 의자가 눈에 띄었다. 약국에 가서 의자에 앉아본 일이 있던가? 편의점에 들른 것마냥 필요한 약만 금세 사서 나오기가 쉽다. 하지만 늘픔약국의 의자는 빌 틈이 없다. 약을 사는지 사연을 파는지,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주저앉아 한참을 도란거린다.
약사는 '약 파는 사람'?... 아니!
지난 14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수더분한 대로변에 위치한 늘픔약국을 찾았다. 겉만 봐서는 여느 약국과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그 특별함을 알고자 한다면 들어가서 "쌍화탕 하나 주세요" 해보면 된다. 약사는 "누가 드실 거예요?"라는 질문에서부터 쌍화탕의 성분에 대한 설명, 그런 증세에는 이렇게 복용하는 게 좋다는 조언까지 꼼꼼히 챙겨준다. 환자를 '고객'이 아닌 '이웃'으로 보기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처음에는 약 하나 사는 데도 여러 가지 이야기 하는 걸 어색해 하셨죠. 이제는 서로 잘 이야기해요."늘픔약국의 노윤정(28) 약사는 약사가 단순히 '약 파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약국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돈을 내고 약을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실제로 크고 바쁜 약국에서는 그렇게 돌아가는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오래 했어요. 약사와 환자의 관계도 사람 대 사람이잖아요."약 하나를 팔아도 증상을 자세히 묻고 복용 방법을 설명한다. 늘픔약국의 특별한 복약지도는 인간적인 의미 외에 실질적인 성과도 크다.
"사람들이 약을 더 잘 먹을 수가 있어요. 먹다가 남아서 처치 곤란이 되는 폐약품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잘못 먹는 약도 많고요. 특히 나이 드신 분들 같은 경우 더 심하죠. 복약지도를 상세히 하고, 또 어르신들은 댁에 찾아가서 약 정리를 도와드리기도 하고 있어요. 분명 도움이 많이 돼요."
늘픔약국은 2010년 9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제 만으로 한 돌을 겨우 넘긴 셈이다. 대학 시절 약대 연합 동아리 '늘픔'에서 활동하던 노윤정 약사와 최진혜(28) 약사가 의기투합했다. 학과 동기인 두 사람은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3~4년 이상 고민을 나누며 '공동체 약국'을 준비했다.
공동체 약국은 수익보다 주민 건강을 제1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 약국과는 조금 다르다. 약국이 있는 마을 공동체의 건강 증진을 최우선으로 한다. 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약물 교육 강좌를 열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직접 방문해서 복약지도와 약물 정리를 해준다.
"직접 찾아가보면 한숨부터 나와요.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드셔야 되는 약이 많은데 그게 다 뒤섞여 있고, 오래되어 못 먹는 약인데 아깝다고 그냥 드시고. 이런 부분을 정확히 알려 드리면 약을 오남용하지 않으시잖아요. 아까도 전화 와서 한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는데, 이제는 약 정리 잘 해서 먹고 있다면서 보여주시더라고." 수익을 우선시하지 않다 보니 이 둘의 소득도 다른 약사들보다는 적은 편이다. 평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당번을 서지만, 2009년 한국노총이 발표한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고 나머지는 공동체에 환원한다. 약국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쓰고 남은 금액은 제2의 늘픔약국을 위한 준비기금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기금으로 보낸다.
제2의 늘픔약국 역시 간석동의 늘픔약국처럼 주민 건강을 지키는 공동체 약국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늘픔 동아리를 통해 대학 시절부터 해온 의료 봉사 활동도 이제는 늘픔약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속해나가고 있다.
"경제적인 가치관의 차이죠. 우리는 일단 이 돈으로 살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예요."20대 약사들이 사는 법, '공동체'
시작은 퍽 무모했다. 두 약사는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인천에는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약국을 차린 이유는 '공동체'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중심가에서라면 이런 형태의 공동체 약국을 운영하기가 힘들었겠죠. 당장 월세부터 감당이 힘드니까. 돈 벌어서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겠어요? 여기는 주변이 주택가라 상업성이 심하지 않으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늘픔약국은 수도권지하철 1호선 동암역과 간석역 사이에 있다. 인천 중에서도 개발이 덜 된 남동구, 그 중에서도 가장 낙후됐다고 하는 간석동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신도림에서 전철로 삼십 분이면 도착하는 수도권이지만 서울처럼 번지르르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말 시골 동네 같아요. 누가 와도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다들 흔하게 공동체의 파괴를 한탄한다. 하지만 아무리 마을 공동체가 소중해도, 서울에서 세련된 문화를 즐기고 살던 젊은이들이 '시골 같은' 마을에서 지내기가 괜찮을까? 노윤정 약사는 "처음엔 좀 힘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싶어도 역 근처까지 십 분 이상 가야 해요. 서울에서 살던 때랑은 분명 다르죠."그래도 지치지 않고 약국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다시 한 번, '공동체' 때문이란다.
"사는 방식 자체가 바뀐 거죠.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으면 혼자 음악 듣고 이러면서 풀었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해결해요. 재밌어요."어제 온 한 할머니는 시집살이 얘기서부터 며느리 욕까지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놓고 갔단다. 또 열린문고에 있는 책을 보러 오는 꼬마들의 재간이 얼마나 깜찍한지 모른다고. 세대를 아우르는 마을 공동체 가운데서 20대 약사 두 사람은 서울 생활과는 또 다른 즐거움,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학문과 함께 '삶'을 고민하는 곳
스물여덟에 자력으로 개업하는 약사는 드물다. 당연히 사업자 대출을 안고 시작했고, 경영에서 나는 수익으로 천천히 갚아나가는 중이라고. 이들이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다른 빚이 없었다'는 물리적 조건에 힘입은 측면도 있다.
"둘 다 학자금 대출이 없어요. 부모님이 어떻게든 내주셨거나, 장학금을 받고 다니거나 했죠. 이게 상당히 중요해요. 제 주변에는 학자금 대출금을 월 40만~50만 원씩을 거의 2년 가까이 갚고 있는 친구도 있어요. 그러니까 부담이 많이 될 수밖에 없죠."하고 싶은 게 있어도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 20대는 단순히 가난한 것을 넘어 빚에 짓눌려 있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인 부분 외에도 스트레스가 많다.
"얼마 전에 후배들을 만나러 모교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대학생들한테 기본으로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요.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현실이죠. 그 안에서 뭔가 참신한 게 나올 수가 있겠어요?"그런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20대에게는 고민이 필요하다. 두 약사가 활동했던 동아리 늘픔은 '약사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는 공간'이었다.
"학과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문이 학문으로만 남아 있다면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이걸 공부해서 삶에 어떻게 녹여내야겠구나 하는 방향 제시를 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늘픔은 그런 고민을 같이 풀어보려는 동아리예요."대학 시절 늘픔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안 했다면,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늘픔약국을 차리고, 늘픔약사회를 결성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저 약 파는 사람이 됐을 것'이라며 웃는 노윤정 약사에게 앞으로의 비전을 물었다.
"늘픔약국 같은 공간이 절대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해요. 단기적으로는 후배들이 늘픔약국 2호점을 준비하고 있고, 계속 이런 공간들을 늘려 나가야겠죠. 우리가 하는 일이 남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꼭 누가 걸어간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