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이 지났습니다. 어느 농촌에서나 가을걷이로 바쁠 절기입니다. 특히 지난여름 장마와 태풍을 물리치고 영글어가는 가을 열매는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다' '지친다' 하고 푸념을 늘어 놓건만, 들녘의 농작물들은 푸념 하나 없이 잘 자라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농작물보다 나약한 것은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가을 가뭄이 심했지만 잘 견뎌낸 농작물들이지요. 참으로 강한 인내를 배워봅니다.
요즘 제주도 들녘은 콩 수확과 감귤 수확이 한창입니다. 다행히도 청명한 가을 날씨와 햇볕은 하나님이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휴일, 주말농장 감귤원에 가보았습니다. 주인 몰래 익어가는 노란 감귤을 보니 풍요러워집니다. 주말농장 감귤들은 핑계 없이 잘 자라주었네요.
감귤원 방풍림 주변은 새들의 소리로 왁자지껄합니다. 새들도 달짝지근하게 익어가는 냄새를 어찌 알았는지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요놈들도 먹거리가 풍부해지니 즐거운가 봅니다.
전정가위와 바구니를 들고 감귤을 수확해봅니다. 작은 감귤나무에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열매가 달렸는지요. 주렁주렁 달린 열매을 지탱하기 위해 가지들은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봄 햇빛이 잘 들라고 나무를 잘라준 아픔도 있었네요. 초저녁 달빛을 맞으며 유기농 퇴비를 준 적도 있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장맛비를 맞아 가며 새순에 살충제 뿌린 적도 있었군요. 생각해보니 모두가 발품의 흔적이고 땀방울의 이력입니다. 햇빛이 너무 강한 늦여름에는 일사를 방지하기 위해 한 알 한 알에 검정 스타킹으로 모자를 씌워 주기도 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수확기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감귤원을 둘러보는 마음이 왜 이리도 벅찬지요. 수확의 기쁨보다는 힘든 자연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준 감귤나무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알맹이를 잘라 한 입 베어 입에 물어봅니다. 달콤함과 새콤함이 묻어나는 노란 열매, 빨간바구니에는 어느새 한가득 달콤함이 넘쳐흐릅니다.
새들은 어찌 알았는지, 제일 당도가 높은 열매를 쪼아 먹어버렸군요.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한 것 같습니다. 감귤 꽃이 필 때는 벌들이 날아들더니, 노랗게 열매가 익어가니 새들이 날아듭니다. 감귤원은 사계절 끊임없이 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