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안무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공연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중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 구조로 영화, 연극, 발레 등 여러 장르로 공연되어 왔다. 두 남녀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애처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 러브스토리가 국내에서 10년만에 발레로 드디어 서울시향과 만났다.
1막은 캐퓰렛가와 몬테규가의 대립을 설명하는 단체무로 공연 끝까지 자리하는 모던한 이동식 하얀색 무대로 각 장면마다 조명과 함께 다양하게 연출되었다.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그로테스크함과 그에 맞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완벽한 안무로 이번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모던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계속되는 부점의 그로테스크함은 프로코피에프가 작곡한 모음곡 "피터와 늑대"에서도 보여지는 전형적인 리듬으로 이 작품에서는 두 가문의 비극적인 대립과 그로인해 다가올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보여주는 듯한 메인테마로 시종일관 변모한다.
1막 마지막 로미오와 줄리엣이 헤어지며 서로 아쉬워하는 장면이 무척 감미롭다. 0.5초의 머무름, 줄리엣을 아쉬운 듯 뒤돌아보는 그 대목에서 로미오역을 맡은 두 무용수의 차이가 느껴졌다. 마이요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아시에르의 애틋함에 비하여 이동훈은 물론 훌륭하지만 타이밍과 머무름의 차이에서 아쉬웠다. 최태지 단장이 언급하던, 국내 무용수들이 기량은 세계수준급인데 연기가 다소 부족하다던 부분이 여기다.
이에 비해 오페라는 국내 가수들의 연기의 아쉬움이 발레보다는 덜하다. 지난주 국립오페라단의 <가면무도회> 3막에서 레나토역의 고성현은 뒷모습에서만도 치를 떠는 복수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오페라와 발레의 차이인가 아니면 연륜의 차이인가.
2막 6장의 베로나 축제극장의 인형극 장면은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간막극으로 인상적이다. 케퓰렛가의 티볼트와 몬테규가의 머큐쇼가 싸우다 머큐쇼가 죽는다는 내용과 두 남녀 주인공이 결국은 죽게 된다는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졌다.
1막부터 두 가문의 싸움장면에 언제나 돋보이던 티볼트는 멋스러운 수염과 위협적인 당당한 걸음걸이, 칼싸움 장면 등에서 적당하였다. 빼놓을 수 없는 유모는 쫙 꺾어뻗은 손동작과 과장된 표정에서 줄리엣을 보살피며 염려하는 모습이 어울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징검다리인 로렌스 신부(이영철 역)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반쪽 가면과 흰색 검정색의 모던하고 타이트한 의상으로 1막부터 3막까지 발레동안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고 결혼을 주도하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뚜렷하게 해내었다.
3막은 줄리엣의 방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종결되는 장면이다. 줄리엣의 거짓 죽음과 로미오의 절규, 케퓰렛 부인의 몸짓, 줄리엣의 죽음, 그리고 로렌스 신부의 절망은 선명한 십자가 배경과 함께 극의 마지막 절정부분이었다.
이동훈-김주원과 아시에르-김지영 앙상블 모두 아름답고 애처로운 사랑의 모습이었다. 줄리엣의 모습은 두 여자무용수 다 각자의 특징으로 아름답고 발랄한 줄리엣을 표현하였다. 로미오는 이동훈도 훌륭하였지만, 아시에르가 더욱 아름답고 감정이 살아있는 로미오를 연기하였다.
줄리엣의 김지영은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그간의 해외 활동으로 이미 세계적인 몸짓과 우아함이 그지없었다. 김주원은 사랑스러운 줄리엣과 카리스마 넘치는 캐퓰렛 부인의 두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다. 캐퓰렛 부인 역할은 김주원과 윤혜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렬한 검정색 의상에 워낙 안무 자체가 힘있고 카리스마 있으므로 두 무용수 모두 캐퓰렛 부인을 잘 표현하였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부상으로 인해 로미오역에 마이요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아시에르가 합류하면서 더욱 입체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 이후 10년만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 공연이고, 김용걸-김지영 듀엣을 오랜만에 보는터라 관객들은 이 듀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아시에르의 합류로 김용걸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세세한 몸짓과 감정표현이 함께하는 마이요 발레의 묘미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상체의 움직임, 감정표현, 표정 에서 더욱 많은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모던발레를 국립발레단은 잘 해내었다. 프랑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시절 한번 발레 반주를 해봤다던 정명훈 상임지휘자는 10년 전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의 반주 의뢰에 거절하며, "스트라빈스키나 프로코피에프 음악이면 반주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제 "국내발레단의 수준이 높아졌다. 무용수들을 훨훨 날게 해주겠다"던 기자간담회에서의 포부대로 프로코피에프 음악을 칼끝같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안정되고 풍부한 선율선으로 무용단을 뒷받침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일고여덟 차례 무용수들과 정명훈 상임지휘자까지 배역진 모두 손을 맞잡고 무대인사를 하였으며, 관객들은 기립박수 등 열화와 같은 화답을 하였다. 오페라 관객보다는 발레 관객들이 무대에 대한 반응에 더욱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듯하다.
오페라가 이정도로 잘되었다 하더라도 오페라 관객들이 발레 관객들처럼 수차례 끝까지 환호나 박수갈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명훈 지휘자는 무척 뿌듯한 매우 밝은 미소로 화답하였다. 주말에는 티켓이 매진되는 등 공연 전부터 뜨거운 관심속에 이루어진 국내에서 10년만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무대로서는 영광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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