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 줄게, 새 책 다오!'. 중고 책을 기부하면 공부방 아이들에게 새 책을 선물합니다. 오마이뉴스는 CJ도너스캠프,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함께 오는 11월 30일까지 '책 나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애독서'는 이 캠페인 가운데 하나로, 명사들이 감명깊게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연재 기사입니다. 친필 사인을 담은 명사들의 추천 애독서는 책 나눔 캠페인에 참여했던 기부자 분들께 추첨을 통해 선물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옛날 음악은 좋았는데 걸그룹과 아이돌 음악은 형편없다, 음악적이지 못하다'라고 규정내린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대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음악이란 각 세대들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지금 시대의 음악들은 지금의 세대를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균형과 인정.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한 시간 반 동안 유난히 두 개의 단어를 반복해서 떠올리게끔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가 읽어온 책, 가치관, 음악에 대한 생각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묶은 한 권의 책을 연상시켰다.
그는 "책은 별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면서도 '나의 애장서' 인터뷰를 통해 "<데미안>을 읽으며 나 자신을 성급하게 규정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를 읽으며 삶의 균형감각을 키웠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맹신하던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보면 그 반대편에도 지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으로 미국의 역사학자 존 브룸필드의 <지식의 다른 길>을 소개하고 직접 서명한 후 '책 나눔 캠페인'에 기부했다.
"책을 읽으며 머리를 채우고, 음악을 들으며 가슴을 채우잖아요"- '음악평론가'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기까지 시간이 좀 길어요. 그때 우연히 음악을 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듣기 시작했어요. 존 레논, 카펜터스, 로보, 레드 제플린, 이장희, 신중현, 송창식, 김정호 등의 뮤지션들에게 완전 매료됐죠. 그때부터 목표를 음악평론가로 정했고 그 뒤로 37년째 그 목표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 오늘은 음악이 아니라 책을 추천하게 되셨습니다. 평소 책을 즐겨 보시는 편인가요?"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음악은 사람들을 쉬게 하는 분야고 위로와 위안을 하는 분야잖아요. 그런데 음악평론가나 음악 관계자가 글을 쓰면서 인문학적 언어를 나열하는 것이 적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음악을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는 방법으로 책을 보기도 하지요. 음악 속에 공부가 있지 공부 속에 음악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한때는 소설에 빠져서 당대에 내노라 했던 작품들은 많이 읽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 같은."
- 어떤 책들이 인상적이었나요?"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만한 책은 역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죠. '내가 둘일 수 있구나', '내가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성급하게 규정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데미안>에 나오는 막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동일인물이지만 처음에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다르잖아요. 제가 어떤 나약함에서 벗어나는데 위안을 줬던 책이지요. 소록도의 나환자들을 무대로 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청소년들에게 '강추' 하고 싶은 책입니다. 신군부 독재가 시퍼렇던 1980년대 초반에 읽었던 <장길산>도 기억에 남고,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는 제 삶의 균형감각을 키워줬던 고마운 책들이죠.
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읽기, 특히 어릴 때 책 읽기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대 때는 책을 읽어 머리를 채우고 음악을 들어 가슴을 채우는 거지요.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태에서 이성과 감성을 체화해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책은 최소한의 이성과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다른 길'은 항상 있음을 잊지 말아야"- 기증하시는 책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지식의 다른 길>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이외의 다른 지식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에요. 저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존 브룸필드는 이 책에서 지금 서구 문명이 젖어있는 기계론적 사고 이외에도 '지식의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지요.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를 보면 뛰어오는 소를 멈추게 하는 장면이 나와요. 등장인물이 자연에서 터득한 소리와 음악을 가지고 뛰어오는 물소를 세웁니다. 산업사회의 지식으로 물소를 세우려면 어떤 기기나 무기로 막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소리와 음악으로 물소를 세운다는 것은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식의 다른 길'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학문들은 단기간에 이뤄진 지식에 불과하다면서 그것만을 과신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보다 더 중요한 지식은 간디라는 거죠. 전일적이고 총합적이며 자연적인 지식을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이 책이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지침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맹신하던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보면 그 반대편에도 지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이를테면 음악에서 다양한 취향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요?"그렇지요. 음악은 세대의 산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옛날 음악은 좋았는데 걸 그룹과 아이돌 음악은 형편없다, 음악적이지 못하다'라고 규정 내린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대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말도 안 되죠. 음악이란 각 세대들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물론 지금이 훨씬 더 상업화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시대의 음악들은 지금의 세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아이한테 김현식 음악을 들려주면 '구리다'고 해요. 지금 그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것은 정엽의 음악일 수 있다는 겁니다."
- 마지막으로 '책 나눔 캠페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책 나눔 캠페인'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떤 멘토의 위치에 잇는 사람들, 어떤 분야의 승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동행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읽은 좋은 책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런 동행의 하나가 될 수 있겠지요.
지금 세상은 기계, 공적 업무, 공리주의, 경제성 등의 단어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거기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책을 한 권 기부했는데 저는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들이 궁금합니다.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 얘기해 볼 기회를 갖고 싶군요. 저는 밥 말리, 존 레논, 벤 모리슨, 밥 딜런 같은 가수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항상 다르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름을 전제하지 않으면 깊어질 수 없어요.
끝으로 '책 나눔 캠페인'에 참여하시는 분들께 어떤 일이 있어도 음악만은 놓치지 말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놓치면 이런 것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음악의 힘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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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다른 길> 존 브룸필드 지음 | 양문 | 2002서구 과학문명은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 존 브룸필드는 독자들에게 현대 산업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식만이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 갈 유일한 토대인지를 이 책을 통해 묻고 있다. 미시간 대학에서 20년 동안 인도사를 강의했던 브룸필드는 우리가 존재의 다양성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한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민음사 | 2000
소년 싱클레어가 여러가지 자각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어두운 세계를 인식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1919년에 간행된 이 소설은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 가지고 나갔던 책이라고 전해진다.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
소록도를 소재로 쓰여진 1976년작 소설. 어느 날 나환자촌인 소록도에 조백현 이라는 군인이 병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소록도를 천국같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현실을 그렇게 바꾸기란 쉽지 않다. 진정한 천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마음이 이어져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혁명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 민음사 | 1998현존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에릭 홉스봄이 저술한 혁명의 역사.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두 가지의 혁명을 이뤄낸 영국과 프랑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지금 대부분의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자본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 한길사 | 1998
에릭 홉스봄의 역사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1편인 <혁명의 시대>에 이어 1848년부터 1875년 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에서 두 개의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시작을 다루고 <자본의 시대>에서는 1848년 이후 변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한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