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지 9개월, 굶주림과 좌절감으로 허덕이던 대구사회에 느닷없이 밀어닥친 콜레라는 설상가상의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콜레라는 대구 경북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번졌다.…7월 3일 현재 대구의 환자수가 700여 명, 사망자 수는 391명으로 여전히 사망률이 60퍼센트 이상이었다. 또 이는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무렵 전국의 콜레라 환자 수는 2345명이었으며, 사망자는 1196명이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한 영양실조에 내륙 분지 특유의 혹독한 더위까지 겹친 대구에서는, 그만큼 냉음료를 마실 기회도 많았고, 따라서 수인성 콜레라에 걸릴 위험도 컸던 것이다."정영진이 쓴 <폭풍의 10월>에 나오는 내용이다. 대구가 무더워 사람들이 콜레라에 유난히 많이 걸렸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제 대구의 무더위도 한풀이 꺾였고, 여름철 일기예보에는 대구보다 더 더운 곳으로 보도되는 소도시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나무를 심었고, 시내 곳곳에 공원을 계획적으로 조성한 덕분이다.
무더위를 한풀 누그러뜨린 나무심기와 공원개설대구에는 정말 공원이 많다. 어린이 놀이터를 겸하는 수준의 동네 소공원을 제외하고도 '시민공원'이라 할 만한 곳이 부지기수이다. 대규모 공원인 팔공산과 비슬산을 제외하고 시내 주택가 사이에 있는 공원만 헤아려도 열 곳이 넘는다.
시내 중심가의 대표 공원은 경상감영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경상도(대구 포함)의 감영청사였던 선화당(유형문화재 1호)과 감사처소였던 징청각(유형문화재 2호)이 있다. 무엇보다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까닭에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탁월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전체 면적이 좁아 산책을 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 단점이지만 2011년 1월 24일 대구근대역사관이 공원 안에 개관한 이래 이제 경상감영공원은 대구의 주요 답사지로 부각됐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국채보상공원도 가볼 만하다. 구한말 애국운동의 횃불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은 망국 직전의 일이라 별다른 유적을 남기지 못했다. 때문에 이 공원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 근래에 세운 기념비와 새해를 맞아 타종을 하는 달구벌대종 정도가 볼거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 역시 올해 들어 새로운 필수 답사처를 보유하게 됐다. 바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지난 10월 5일에 문을 열었으니 대구가 보유하게 된 '최신 답사지'인 셈이다. 기념관 내부 영상관에서 국채보상운동 전후의 시대상황을 간략히 파악한 뒤 곳곳에 설치된 게시물 등을 통해 역사 공부를 깊게 할 수 있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탁본 체험도 할 수 있으니 학생들은 꼭 들러볼 만하다.
한편 경상감영공원과 국채보상공원보다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공원이 있으니 '대구시민의 휴식처' 달성공원이다. 우리나라 고대 토성 축조의 역사를 증언하는 달성(達城·국가사적 62호)을 공원화한 장소다. 이미 1905년에 문을 열었고, 1969년에 대대적으로 현대화했으니 대구시민들이 세월을 두고 즐겨 찾아온 소중한 쉼터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시비 중 처음 세워진 상화시비(1948년 건립), 동학교주 최제우와 독립운동가 허위 동상, 순종이 1909년 1월 12일에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향나무, 과거 경상감영의 정문이었던 관풍루 등이 있다. 정문 왼쪽의 향토역사관은 대구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주기에 방문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달성공원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원도 있어 인기가 높다.
그러나 '고대 토성인 국가사적(달성)에 동물원을 설치한 것은 문제'라는 비판을 생각하면, 달성공원은 어쩌면 약간 기형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달성공원이 어떤 면모로 변화돼야 바람직한지를 잘 보여주는 공원이 바로 '망우공원'이다.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를 기려 이름이 붙은 이 공원에는 곽재우기념관, 임란의병관 등이 있어 임진왜란에 대한 살뜰한 역사공부를 할 수 있다.
임란의병관과 곽재우기념관은 홍의장군 동상 좌우에 있다. 또한 망우공원에는 일제시대 대구 청년 애국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조양회관(등록문화재 4호·일명 광복회관)도 있어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노고와 고초를 떠올리게 한다. 조양회관 앞뜰에는 사재를 털어 조양회관을 지은 독립지사 서상일 선생의 동상이 있다.
대구만의 특이한 공원을 한 곳을 소개해야겠다. 바로 신암선열공원. 이곳은 일반적인 공원이 아니다. 흔히들 현대화한 공동묘지를 '공원'이라고 지칭하는데 바로 그런 성격의 곳이다. 신암선열공원은 지역의 독립운동 선열들을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전국에 이렇게 지역의 독립투사들을 한 곳에 모셔 공원화한 곳은 대구밖에 없다. 그만큼 이곳은 대구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신암선열공원은 동구청 뒤편 언덕 위에 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대구 지역의 3.1운동, 신간회 활동들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단충각을 꼭 둘러봐야 한다. 그리고 백기만 선생 등 선열들의 묘소를 직접 찾아본다면 아주 바람직한 답사 체험이 될 것이다.
대구의 현대사를 증언해주는 공원은 두류공원이다. 이곳에는 2.28기념탑이 있다. 또한 이상화, 현진건 등 대구의 문화 인물들을 동상과 시비 등으로 기리는 인물 동산도 조성돼있다. 4.19의 단초가 되었던 학생운동이 바로 대구의 2.28운동이었으므로 2.28기념탑의 역사적 의의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두류공원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과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기구를 구비한 우방랜드도 있다. 대구문화에술회관에서는 기획전, 미술전, 사진전 등이 항시 열리고 음악 행사가 줄을 잇는다. 또한 우방랜드의 쉬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놀이기구들은 시민들을 두류공원으로 불러낸다. 이외에도 두류공원은 터가 넓어 대구시민들의 운동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한편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은 제법 괜찮은 공원이 화원동산이다. 달성군 화원읍에 자리한 이 동산은 일대가 한때 대구 지역의 명당이었음을 증언하듯 고분군(古墳群)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라 경덕왕이 머물렀던 상화대를 구경할 수도 있고, 고려 태조 왕건이 낙동강을 건너 성주 방향으로 도망쳤다는 사문진교의 황홀하게 빛나는 노을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규모는 작지만 화원동산 안에 있는 동물원도 아이들의 관심을 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달성습지의 장관도 볼 수 있고, 달서구의 아파트 단지 위로 멀리 웅장하게 솟아 있는 앞산의 풍경도 시원하게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시내 번화가의 공원들과는 달리 야산을 끼고 있어 등산 기분도 맛볼 수 있는 명소다.
공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공원 기능을 하는 곳도 있다.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인 월파원이 바로 그곳. 5천 평에 이르는 잔디밭에는 보물·고인돌·탑·비석 등 갖가지 문화재가 멋지게 진열돼 있다. 덕분에 월파원은 자연스레 대구시민의 공원이 됐다. 눈이 내린 날이면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 들른다. 뿐만 아니라 월파원은 봄이면 벚꽃놀이,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단풍놀이를 즐기러 오는 인파로 붐빈다.
대구 수성구 수성못 일대도 공원의 기능을 한다. 이곳은 밤이면 못 둘레를 빙빙 돌며 산책하는 주민들로 붐비고, 낮이면 작은 오리배를 타며 정담을 나누는 연인과 가족들로 가득하다. 못 뒤쪽 법이산 기슭에는 수성못을 만든 일본인 수기임태랑의 묘소도 있다.
앞산공원 역시 대구의 대표공원 중 하나다. 왕굴, 안일암, 은적사, 임휴사 등 곳곳에 왕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 기념비와 낙동강승전기념관도 있다. 남구 대명동에서 오르는 안지랑골 등산로, 상동과 봉덕동 사람들이 즐겨 오르는 고산골 등산로, 달서구 사람들이 애용하는 평안동산 등산로, 파동 사람들의 길 용두골 등산로, 시내버스를 타고 온 이들이 종점에 내려 오르는 큰골 등산로 등 걸을 만한 길도 많다. 그리고 그 길은 줄곧 나아가면 비슬산까지 이어진다.
금호강과 홍의장군, 광복회관이 있는 망우공원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거느린 국채보상공원, 대구근대역사관을 가진 경상감영공원, 2.28기념탑과 우방랜드가 있는 두류공원 중 어느 공원이 대구의 제1공원일까? 아니면, 국가사적 토성과 동물원을 자랑하는 달성공원이 대표 공원일까? 그들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 망우공원을 대구의 공원 대표로 더욱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역사가 있고 식민지 시대를 증언하는 광복회관도 있으며 온 국민이 다 아는 홍의장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구의 '땅'을 만들어준 금호강을 끼고 있어 구름다리를 건너고 뱃놀이도 할 수 있다. 덧붙여 동구문화예술회관도 있어 삶의 향기까지 모자라지 않게 즐길 수 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에 맞게 식당가들도 잘 발달해 있다. 망우공원의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는 타지 사람들까지 망우공원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만드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제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