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촛불이여! 신성한 새벽이여! 나도 깨어 함께 있고 싶다
'침묵에 의해, 의로운 침묵이든, 해로운 침묵이든, 단순히 묵상으로 달리는 그런 침묵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침묵으로 인해 내가 온전히 고요하게 가라앉을 수 있을까? 이 고독한 무림강호의 세계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나를 편안하게 재워줄 수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포근하게 언제까지나 잠들고 싶다. 나 혼자 타오르고 나 혼자 꿈꾸는 세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켜야만 하는,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공감의 눈빛과 절망의 그늘 사이에서 방황해야 하는 이 현상이 정말 싫다.'
며칠이 지난 새벽, 하루하루의 일상처럼 눈을 뜨자마자, 기공처럼 보관되어 있는 내공의 공력을 깨워내어 복습수련을 마치고 침잠하는 자리. 근혜여랑위의 정련된 아미가 파리하게 흔들리며 몽상 속에서 마치 거대한 파도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광경을 눈을 감고 느끼는 듯, 어깨까지 심하게 요동거리고 있었다.
'램프를 켜면, 내 그림자의 잔영이 파도에 실려 행여나 백성들의 짚신 아래로라도 쓸려가지 않을까.'
여랑위의 마음속을 드나드는 촛불의 불꽃은 심지가 다 타고 마지막 남은 촛농의 흔적까지도 다 지워버릴 듯이 맹렬하게 타오르는데, 공포의 밤을 보내고 난 어린아이의 파리한 얼굴처럼 심장의 고동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조선 태종조 이숙번이 반하고, 조선의 임금들과 특히 고종이 별식으로 환영받던 '칠보화반' 진주비빔밥의 명성처럼, 궁중 아악의 그 재현하기도 벅참 환희의 음악처럼 화려하고 잘 차려진 궁중음식이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물질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작은 움직임에서도 드라마적인 변화를 찾는 젊은 백성들이 지르는 절규를,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로 부숴버린 진동음파기의 잘못된 선택으로 잘 차려진 밥상에 파리가 날아와 앉았다. 경종. 벨은 마치 처음으로 벨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초보 벨보이의 어색함처럼 세련되지 못하게 울렸으나, 그 진동은 서울특별공국뿐만 아니라 대한민주무림대국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중이 되기 위해 득도식을 한 후, 원종이라는 법명에 오계를 받고 물을 긷던 백범의 심정이 이랬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둘의 힘은 하나보다 강하다'라고 유대 5천 년의 경전인 <탈무드>는 말했다. 여행자가 물과 과일을 공급받은 과실나무에게 고마워하며 떠나자 더 잘 자란 과실나무같이, 나는 많은 추종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은총을 내리며, 그들이 칭얼대거나 응석을 부려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똥오줌 다 갈아주며 지켜주었다.
때로는 지쳐 떠났고, 대부분은 하해와 같은 은총 아래 부끄러워하였으며, 또 대다수는 전셋집 걷어치우고 부족한 살림살이나마 새로운 살림을 꾸리겠다고 월세도 마다않고 내가 지은 단칸집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공자의 제자처럼 덕을 쌓고, 예수의 제자처럼 나누고, 마호메드의 제자처럼 전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부처의 깨달음의 진리를 시루떡처럼 나누어가졌다.
"촛불의 움직임은 미세한 먼지의 방향타에도 새벽 염불의 적요를 깨는 죽비 소리 같은 진동으로 타오르지요. 이번에 우리 백성들이 키워낸 촛불에는 시끄럽지 않으나 어딘가 수상하고, 부드러우나 어딘가에 미세한 독침을 숨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어요.
불꽃에 놀라 다가가다가 도망치듯 날아가는 부나방처럼, 우리가 심지를 드리운 촛불 속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근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잘 제련된 양초로 외피를 감싸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나는 이번에 우리 백성님네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많이 화가 나 계셨어요, 다들. 그런데 나 또한 겉으로만 들었지 진지한 경청을 못했어요. 부끄럽고 또 부끄럽사옵니다.
우리 무도의 본질을 정치에 구현하려는 정치 무림인 모두가 절절히 반성하고 겸허하게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우리 무림대국의 미래는 없어요. 그러나 변화, 변화 외치면 개뿔. 지금 가진 것 몽땅 버리고 진정한 변화의 의식으로 무장하여 새로이 계룡산 자락 깊은 골을 다시 찾는 과감한 용기. 결단, 이거 없이는 안 돼요. 공염불, 지금은 여전히 우리 도방 샌님들 모두 나막신 신고, 산에 올라가고 있는 격이예요.
대세론, 대세론 했는데, 원래 대세론은 없어요. 나는 원칙 준수, 수첩공주. 말 많은 것 싫어 가만 있었을 뿐. 세대 간의 차이에 따라 민심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원래 세대 간의 차이도 무도의 본질을 잘 지키고 공력을 다하면 변화하기 마련이에요. 대세론? 사실 나도 엄청 부담스러워 꼬리표 떼려 했는데, 잘됐네요. 최후병기 화살 잘 날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명박경술사의 근위무사 출신이지만 무장해제 당한 후, 경술사에게 최후병기 날리기를 즐겨하는 경술지뇌 두언타짜봉(정두언)은 불꽃의 처절한 움직임에 마지막 촛농을 당기면서 이성과 영성이 결합된 파열음을 바람처럼 날리고 있었다. 최근 타짜봉은 조고의 속삭임을 들은 이사가 처음 조고에게 날렸던 쨉처럼, 가끔 파이터다운 잽을 간간히 날리는 데 재미가 붙고 효과도 있어 맛을 들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로 충신은 죽음을 회피하기 위하여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효자는 제 부모의 안위를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할 뿐, 위태로운 짓은 절대 하지 않는 법이지요. 제왕의 신하가 된 자는 그저 제왕의 내리신 칙언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되는 법이니, 그대 조고는 그 입을 닥치고 왕의 칙언을 따르시오"라고 했던 이사도 결국 조고의 뜻에 따라 부소 왕자와 몽염을 죽이고 호해를 앉히지 않았던가.
이때 이사를 움직였던 천하의 간신 조고의 세 치 혀는 듣기에도 간지럽지만 들으면 그의 세 치 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진주비빔밥 같은 '칠보화반'이었다.
"성인은 변화하여 사물에 얽매임이 없고,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향하는 길과 도착하는 바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사물이란 본래 고정하고 불변하는 것이 없는 다변성을 앓고 있지요. 지금 천하의 권세는 호해에게 있고, 나는 그것을 잘 헤아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안을 막는 것을 혹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적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잎과 꽃이 떨어지고, 봄에 얼음이 녹으면 그 물은 만물이 되어 거세게 흘러가 대해를 이룹니다. 위와 아래가 힘을 합하면 오래 갈 수 있고, 안과 밖이 하나가 되면 일의 겉과 속이 다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신의 계책을 받아들이시면 봉후의 지위를 누리시어 대대로 추앙받으며 선인이 되어 장수하고, 공자나 묵자와 같은 혜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기회를 좇지 않으시면 그 화가 자손대대로 미칠 것입니다. 처세를 잘 하는 자는 화를 복으로 만들지만, 못하는 자는 오는 복도 밀어내어 화로 만드는 법이지요. 자, 어떻습니까?"
SNS로 소통하고, 노래 잘하여 음반 내고, 트위터족에다 페이스북에 얼굴도 자주 실리는 타짜봉의 분칠 안 한 얼굴에는, 억대로 떡칠한 몽타주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향수 가게에 들렀다 나오면 사지 않아도 향수 냄새가 나고, 허브카페에 앉았다 나오면 온몸에서 허브향이 근질거리듯이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었던 버릇 때문인지, 무림의 정도를 걷는 자의 발걸음치고는 아직 하체의 단련이 덜 된 듯했다.
그래서인가? 룡씨 가문을 초정하여 무공을 익히는 대신 촛불의 타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젖는 몽상가적 시인의 풍모를 그리워했다.
"결국 무림대국의 태왕이 문제예요. 문제의 근원은 거기 있어. 청와방 방주들 이거 소통이 뭔지를 몰라. 나봐. 트위터, 페이스북, 노래 잘해 판 만들어, 나 정치무림 안 하면 '나가수'에서 나오래. 나가면 최소 삼 주는 버텨, 이거 왜 이래? 지금 반성하고 죽치고 앉아 제2의 6·29선언 해야 되는겨. 알아?
이번에도 봐. 선거도 명분 없어, 소통은 불통이야, 선거 전에서는 뭐가 먼저인지 분간도 못해. 이래 가지고 무슨 선거야. 에이구, 일찌감치 보따리 싸고 집에 가서 노래 연습이나 더 해 가지고 '미사리' 나가? 솔로이스트 해보는 거야. 환골탈태해. 뭐, 알고 보면 이긴 비무 대회? 이런 제길."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분명 극과 극이지만, 삶의 본능은 죽음의 선택에 의해 생의 연속성과 원초성의 무게를 갖는다. 경술사가 지휘하는 경도된 경제 무림의 선택이 95%의 백성을 외면하고, 5%의 백성들의 더 나은 세상으로 나머지 95%를 살려보려던 '무지무통'이었다면, 그 불꽃은 결코 순결한 불꽃이 아니라 심지의 정면을 벗어난 파랗고 노란 불꽃이었다.
이 정부가 선택한 고위무림정국의 공직자들 모두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이중국적, 탈세, 위장전입, 병력면제로 인한 자기들만의 공존공생, 자기들만의 리그였기에 비록 도덕성이 어느 정도 상실된 시민 무림에도 이 나라의 근간들인 젊은 무림생도들은 기꺼이 희망제작창의 그늘을 그리워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듯이 '비도덕, 비정도 무림인들이 덜 비도덕적인 시민 무림에게 묻은 겨'를 나무라는 작태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최대도방의 안방을 초토화 시켰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듯 눈을 감고 촛불의 불꽃 속에서 몽상의 언덕을 오르던 근혜여랑위는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뜨고 바라본 최초의 하늘에 원초적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한 마리의 부나비가 하늘을 날다 선회하는 광경처럼 운명의 곡선이 바람의 기류를 타고 낙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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